동해에서 속초까지 두 시간이나 걸리는 줄 몰랐지 뭐람
여행 2일 차
칠형제곰치국 - 해랑전망대 -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 묵호등대 - 무릉별유천지 - 속초 출발 - 옥계 휴게소 - 속초 도착 - 속초해변(속초 아이 대관람차) - 속초중앙시장 - 숙소 도착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바빴던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일찌감치 여섯 시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일곱 시부터는 말똥 한 정신으로 휴대폰을 하고 있던 나는 여덟 시 반쯤 남자 친구를 깨우고 어제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해 보지 못했던 오션뷰를 감상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라고 해서 숙소를 예약한 것도 있기 때문에 비록 짧은 베란다에 촘촘히 방충망까지 있어 모두가 생각하는 오션뷰는 아니었지만 시원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로 만족했다.
원래는 아침을 먹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여행에는 최대한 삼시세끼 꽉꽉 눌러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아홉 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나와서 계획보다는 늦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아래층의 사람들은 더 이른 시간에 나갔는지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청소가 한창이었다. 우리도 서울러서 아침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차로 짧게 이동해서 전날 찾은 식당 근처에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하고 나오는데 우리가 가려고 했던 해랑전망대가 보였다. 운이 좋게 가려고 했던 곳 근처로 식당을 찾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주차한 차를 이동시키지 않고 걸어서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지 빈 식당에 창가 자리에 앉았다. 곰치국과 성게비빔밥을 주문한 뒤 창가에서 보이는 바다와 전망대를 구경했다. 아침을 원래 먹지 않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을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식당에 앉아서 주문을 하자마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주문한 음식은 밑반찬이 나오면서 곧이어 나왔다. 메인 음식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밑반찬으로 나왔던 젓갈(다시마에 싸서 먹으라고 점원분께서 알려주셔서 먹었는데 너무나 맛있었다.)과 톳 무침 등 맛있는 게 다양하게 나와서 한 번씩 더 리필해 먹었다. 그리고 메인 음식이 나왔는데 곰치가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첫 비주얼은 생선이 들어간 김치찌개 같았다. 남자 친구가 일일이 가시를 발라서 얹어준 곰치는 먹자마자 입에서 녹았다. 국물은 김치찌개에 해물이 들어간 듯한 맛이었고 거기에 말캉한 식감의 곰치는 아침 식사로 부담스럽지 않게 끊임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맛이었다. 더군다나 칼칼한 곰치국에 성게가 듬뿍 들어간 비빔밥은 매콤함을 중화시켜주는 고소한 맛이었다. 성게가 많이 들어갔음에도 전혀 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 더 시킬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다 먹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언제 배고팠냐는 듯이 부른 배를 안고 식당을 나섰다. 차에서 간단하게 물을 챙긴 뒤 곧바로 해랑전망대로 향했다. 해랑전망대는 주차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고 계단과 통로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남녀노소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중간중간 그물망처럼 되어 있는 길과 유리로 되어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에 살짝 무서웠지만 그런 나를 놀리는 남자 친구 덕분에 더욱 오기가 생겨 그쪽으로만 다녔다. 발아래 바로 바다가 보였고 드러난 바위에서 파도가 철썩거렸다. 전망대에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고 싶었다. 원래는 전망대에서 바로 유천지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좀 더 바쁘게 움직이자고 남자 친구를 설득(이라고 쓰고 강요)해 스카이밸리로 이동했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전망대 바로 맞은편에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다. 경사가 꽤 있었고 길이도 좀 있었다. 올라가자마자 매표소가 있었고 우리는 액티비티를 이용하지 않고 입장만 할 거였기 때문에 입장권 두 개를 구매했다. 액티비티는 총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이언트 슬라이드라고 하는 높이 30미터의 스카이밸리에서 타는 미끄럼틀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줄 하나에 자전거를 매단 채로 타는 스카이사이클이었다. 물론 둘 다 우리는 애초에 생각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본 스카이밸리는 해랑전망대가 까마득히 아래에 보일만큼 높았다. 발아래는 바다 대신 땅이었고 바람이 더 많이 불어 전망대보다 다리의 흔들림이 더 느껴졌지만 전망대보다 더 멀리의 바다가 보였고 아래에서 느끼지 못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전망대와 동일하게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는 곳이 있었으며 이미 그곳은 포토존이었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줄을 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남자 친구에게 저기서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웬걸 전망대에서 그렇게 놀려대던 사람이 무섭다면서 가기 싫다고 발을 동동 굴리는 게 뭔가 싶었다. 애기가 따로 없어 어르고 달래고 겁쟁이냐고 뭐라고도 해보고 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그제야 옆에 와서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을 찍고 난 이후에도 다리가 흔들거린다느니 호들갑을 떨길래 겁쟁이라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피드에 사진을 올리면서 못을 박아버렸다. 아기 같아.
스카이밸리를 구경하고 바로 이어진 묵호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꽤 길었기 때문에 한참 계단을 올라갔어야 했다. 더군다나 소용돌이처럼 이어진 계단에 어느 정도 왔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아 언제 도착하지 하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겨우겨우 올라간 등대는 위험을 방지에 작은 창을 제외하고는 통유리로 덮여있었다. 덕분에 햇빛을 그대로 받고 통풍은 되지 않아 오히려 계단보다 더 덥고 사우나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인증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와봤다는 게 중요하지 뭐.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건 계단으로 내려왔다. 더워서 죽어가는 남자 친구에게 물을 주면서 내려오고 나니 아침에 배부르게 먹었던 게 쑥 소화가 된 느낌이었다. 이제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릉별유천지를 향했다.
차로 20분을 달려 무릉별유천지에 도착했다. 액티비티를 하는 곳으로 알고만 있어 도착해서 매표소 근처에 안내판을 살펴보는데 크게 체험시설과 부대시설 두 가지로 나눠 안내하고 있었다. 체험시설은 총 네 개였는데 스카이 글라이더,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루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이렇게 네 개였다. 여기서 우리는 알파인코스터를 타기로 했다. 다른 체험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스카이 글라이더랑 오프로드루지는 중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저걸 목표로 온 사람들은 꽤나 아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와 알파인코스터 티켓 두장을 구매한 뒤 아직 점검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다는 매표 직원의 얘기에 부대시설 먼저 구경을 한 뒤 다시 내려와서 타기로 하고 무릉별열차에 탑승했다.
사실 무릉별열차는 무릉별유천지 곳곳을 안내하고 이동시키기 위한 버스이다. 라벤더 정원과 쇄석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동하는 기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쇄석장을 지나고 라벤더 정원을 지나 거인의 휴식(지금은 공사 중이라 존재만 했던)을 지나 오프로드루지 입장하는 곳에 내렸다. 여기서 두미르 전망대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이 날씨에 더 이상 걷기 싫었던 우리는 호수가 보이는 전망에 만족하며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겼다. 다시 내려오는 버스를 타고 쇄석장에 내렸다. 쇄석장은 복합 문화공간이었는데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을 제외한 1,2,4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1,2층을 가볍게 구경하고 4층에 카페로 올라갔는데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간 카페에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시멘트 아이스크림 홍보 포스터를 보고 홀린 듯 카페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시멘트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호수와 라벤더 정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흑임자로 만든 시멘트 아이스크림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품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담은 종이컵에는 쌍용 시멘트가 적혀있었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스푼은 삽 모양이었다. 사실 삽 모양 스푼을 가져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지금만 좋고 막상 가져가면 애물단지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알파인코스터를 타러 이동했다. 알파인코스터 설명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자면 '총길이 1.5km, 최대 속도 40km/h 레일 위를 달리는 놀이기구. 우리나라 최초로 앞뒤 카트 간 안전센서와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 장착으로 재미와 안정성을 갖춘 체험시설.'이라는 액티비티 체험시설이다. 말 그대로 나 혼자 타는 롤러코스터 같은 개념인데 중간에 너무 빠르다 싶으면 브레이크도 잡을 수 있는 그런 좋은 기능이 있는 롤러코스터였다. 우리 앞에는 두 커플이 있었는데 두 커플 다 같이 탄다고 해서 그럼 재미없지 않나 싶은 생각에 애초에 전혀 그럴 생각이 없던 나와 남자 친구는 앞선 두 커플과 다르게 각자 카트에 탑승했다. 오르막은 자동이었기 때문에 잠시 경치를 즐겼다.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앞서서 간 커플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음,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절대 카트가 레일을 벗어날 일이 없으니 풀 액셀로 밟아도 괜찮다는 안내 직원의 말을 상기하며 내리막길이 시작되자마자 손잡이를 끝까지 밀었다. 응, 나한테는 브레이크란 없어. 최대 속도 40km/h 하지만 체감 속도 100km/h를 느끼면서 짧은 스릴을 끝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난 속도전에 아쉬움을 느끼며 뒤이어 내려오는 남자 친구와 함께 나오면서 서로의 용감함을 서로에게 자랑했다. 어쨌든 둘 다 브레이크 따윈 없었던 걸로.
드디어 동해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속초로 가는 길이 아직 멀고도 험하지만 오늘 오전부터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속초에 도착하면 맛있는 먹으러 시장에 가자고 다짐하며 속초로 이동했다. 중간에 옥계 휴게소에서 바다가 예쁘다는 글을 보고 잠시 들렸지만 아쉽게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오래 보지 못한 채로 다시 차에 올랐다. 대략 두 시간 정도 걸려 속초에 입성하게 되었고 곧바로 속초 해변으로 향했다.
속초 해변에 도착하니 동해에서는 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었다. 지난번 밤에 당일치기로 왔던 속초 해변의 분위기와 정반대였다. 우선 사람이 더 몰리기 전에 대관람차부터 타기 위해 이동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기 때문에 관람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관람차에 오를 수 있었다. 매표하는 공간도 꽤나 신설된 느낌이 강했는데 관람차에 오르자마자 정말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가 아니면 관리가 잘 된 건가 싶을 정도로 내부가 깔끔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양쪽에 한 자리씩 차지한 남자 친구를 놀리려 이쪽저쪽 방향을 왔다 갔다 했더니 역시 반응이 바로 왔다. 겁쟁이.
남자 친구를 놀리면서 내려가는 방향이 되자 아쉬움이 컸다. 다음에 다른 관람차를 타면 또 놀려야지 생각하며 관람차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관람차만 타고 그냥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인파 사이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슬리퍼를 신고 올 걸 생각하다가 샌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이번에도 남자 친구에게 샌들을 맡긴 채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차가운 바닷물이 종아리까지 올라와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잠깐의 물놀이 이후 해변을 빠져나왔다. 시장으로 이동하기 전 아침 식사 이후 아이스크림만 겨우 먹어 배고픈 배를 해변 앞에 노점에서 타코야끼를 하나 사서 먹었다. 물놀이 이후 먹는 다코야끼는 정말 맛있었다.
속초 시장에 입성했다. 역시 사람이 많기로 유명했고 일전에 남자 친구도 친구와 둘이서 오려고 했다가 주차 때문에 포기했던 전적이 있던 만큼 주차부터가 고난도였기 때문에 침착하게 좀 떨어진 곳에 주차장을 찾아 주차했다. 이 주차장도 정말 운이 좋아 두 자리가 있어서 주차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시장 구경을 나섰다.
처음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정도로 그칠 정도였다. 잠시 씨앗호떡과 어묵으로 군것질을 하면서 숨을 돌리고 다시 구경을 나섰을 땐, 이게 구경인지 강제 이동인지 모를 정도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여전히 웨이팅을 한참 넘게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 역시 웨이팅을 하게 되었다. 다른 목적이라면 꼭 저 음식을 먹겠다 보다는 여러 가지를 한 번에 파는 곳에 줄을 서서 한 번에 여러 개를 사서 빨리 나가겠다는 의지로 줄을 섰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줄을 기는 시간이 길지 않은 채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한 곳에서 전병과 튀김, 오징어순대와 아바이 순대를 사서 나온 우리는 인파를 피해 오미자 식혜와 매운 어묵, 그리고 조금 줄을 서서 술빵까지 사서 시장을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어제와 마찬가지로 맥주와 막걸리, 물을 산 뒤 드디어 길고 긴 시장 투어를 마쳤다. 되게 짧게 간략히 요약했지만 시장에 있는 동안 굉장히 오랜만에 사람에게 질리는 시간이었다.
오전부터 바쁜 하루였기 때문에 어제보다 숙소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어제는 숙소에 들어가면서 본 해변가의 포장마차들이 다음에는 한 번 여기로 와보자고 할 만큼 좋아 보였는데 오늘은 숙소 근처 포장마차들이 너무 어지럽고 시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를 정하면서 회사 직원분의 추천을 받은 포장마차도 숙소 근처인 걸 알았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많은 인파에 질릴 대로 질렸기 때문에 얼른 짐을 챙겨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도착해보니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도 역시 에어비엔비로 어제보다 더 저렴하게 예약한 숙소였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들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우와'를 외쳤다. 어제보다 작은 숙소였지만 하얀색 베이스에 파란색을 포인트로 한 숙소는 아담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저렴한 금액 대였지만 꽤나 최근에 리모델링 한 티가 났으며 하자된 부분 없이 굉장히 깨끗했다. 남자 친구와 나 둘 다 어제보다 오늘 숙소가 더 좋다고 할 정도였다. 오늘도 역시 미리 바로 잘 준비를 마친 뒤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세팅했다.
한눈에 봐도 둘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지만 사실 거의 다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때마침 숙소에서 올레티브이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보고 싶었던 '신병'을 틀었다. 남자 친구의 군대 시절과 흡사하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서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어서 음식을 다 먹고 치우면서도 양치를 하는 와중에도 누워서 불을 끈 채로도 밤늦게까지 시청했다. 비록 다 보진 못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즐겁게 시청했다. 제일 바빴고 제일 즐거웠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