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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Feb 09. 2024

0. 여행을 떠나는 이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학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여행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뉴욕으로, 시카고로 떠난다고 하는 말을 종종 전해주었지만,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대신에 그 시간 동안 집에서 누워서 휴식을 취할 생각에 신이 났었다.


    친구들이 전해주는 다양한 여행 장소들은 다 나름의 이유대로 멋지고 근사해 보였지만, 막연하게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그저 살다 보면 언젠가 갈 일이 있겠지, 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굳이 안락한 침대에서 내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진 않았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먹을거리들과 맛집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안락한 침대에 누워 왼손에는 배달음식, 오른손에는 웹툰을 들고 노닥거리는 옵션의 파괴력을 이기지는 못했다. 원래 모르는 맛보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아직 깨우치지 못했던 여행의 즐거움보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방구석의 안락함이 더 강했던 것이다. 물론 대학생활을 로스앤젤레스에서 했던 것도 한몫했겠다. 어린 시절부터 추위와 한기에 약했던 나는, 그저 따듯하고 할 것 많은 로스앤젤레스를 떠나서 사서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처음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본격적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곧 최소 5년간의 피, 땀, 눈물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그제야 많이들 간다는 그 유럽여행, 나도 한 번 가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안일하고 해이한 생각으로 다녀왔던 30여 일간의 유럽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내게 주었으며, 박사과정의 초반부를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스트레스에 절여져서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여행을 반추하는 것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내곤 했던 나는, 곧이어 힘들 때마다 또다시 어디론가 여행을 감으로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어 하곤 했다. 그런 습관이 들은 지 이제 어언 6,7년 즈음된 것 같은데, 지금은 스스로한테 다시 물어보고 싶다.


    과연 힘듦을 여행으로 푸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회피하는 건 아닌가? 그냥 나는 도피에 중독된 것이 아닌가 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에서 도피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가뜩이나 모두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굳이 모든 문제들을 직면해야만 할까? 박사과정을 견디며 뼈저리게 배운 것은,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기름칠을 해 주고 숨통을 틔워 줘야 고장 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평생 일하게 될 텐데, 나라는 객체를 앞으로도 꾸준히 일하게 하려면 나 자신 또한 나를 어르고 달래주면서 더 열심히 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지속되었던 여행으로의 도피생활 중에 배운 것이 없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행 장소는 해안 마을이나 섬인데, 끝도 모르고 전천후로 뻗어나가고 있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결코 풍족한 인프라가 있는 곳들은 아니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배어 있는 여유와 행복 같은 것들을 보면, 내가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는 것만 정답이 아니구나. 행복의 형태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이란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 수 있으며, 결국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여행은 내게 내려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챕터에서는, 주로 카리브해의 섬들 (Carribean Islands) 을 다녀온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카리브해에는 대략 46여 개의 섬이 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가기 수월한 곳들은 아니라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 대부분인데,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섬들은 여타 유명한 장소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아름답고 생소한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16부작 드라마보다 2시간 30분짜리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렬하고 함축적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짧은 일정을 정해놓고 다녀오는 여행에서 나 역시 인생에 관한 다양한 교훈을 배웠다.


    이런 경험들이 내 삶을 정해주는 토대가 되어, 내가 더 단단하게 자랄 수 있다면, 이런 도피생활을 어느 정도 계속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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