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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필요한 건 unlearning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by 지니샘

귀멸의 칼날이 영화로 나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랑은 상관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볼 생각도 없었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액션이 가미된 만화 영화를 그것도 회차가 아주 많은 만화 영화를 봐야 되나 라는 생각에 보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는 만화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언젠가 아이언맨 하나 보지 않았던 내가 어벤져스 영화를 처음으로 보고 집에 와서 마블 시리즈를 주행하던 그 때의 나처럼 귀멸의 칼날을 보러 갔다. 워낙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 하기도 했어서 “아 나도 이거 봤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 줄 참이었다. 영화관에서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일본어에 반가워 하며 귀멸의 칼날을 시청 했다.


만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애니 제작자들은 시청 대상을 전 연령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싸우고 싸워서 주인공이 이기는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 속에 이 만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나를 삼켜버렸다. 놀랐다는 나의 감정을 인지하기도 전에, 빨려들어가듯 몰입해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을 마주 하고 소통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영화 속 세계와 내가 배우고 있는 책이, 겹쳐오는 수업 시간 중 교수님의 목소리와 끊이지 않고 돌아가는 내 머리 속 사유가 얽히고설켜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지점들을 만들어 냈다. 재밌었다. 영화를 보면서 기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거의 처음이었다. 철학에 취한 척 하는 내가 만들어낸 허세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놓지 못했다.


이번 극장판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자는 강하고 싶다는 열망과 투지가 가득했다. “나는 강해져야 해” 누구나 사실 한 번쯤 자신에게 되뇌이는 말이 아닌가. 힘이, 말빨이, 체력이 세지고 싶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약한 무언가를 찾고 비교하며 안심한다. 강약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위계적 서열을 만들어내 군림하고 싶어하기도 할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강한 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신념은 언제나 대비되는 약함을 인지하고 있을테니까. 그렇게 강렬하게 강한 자신을 추구하는 아카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살기나 투지를 가진 누군가가 자신에게 접근하면 기운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촉이다. 싸움에서 적의 동태를 느낄 수 있다는건 엄청난 베네핏이지 않은가? 빠르게 대응하고 내 공격을 그릴 수 있으니까. 이에 아카자와 싸우는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며 생각 속에 빠져든다. 강해지는 이 녀석을 어떻게 무찌르면 좋을까, 아카자가 했던 말과 단어에 집중하며 지금 쓰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싸움에 꼭 필요한 촉을 발휘하면서까지 강함을 열망하는 아카자를 어떻게 이겨야 할까? 강한 상대보다 내가 더 강해지면 될까? 강해진다는건 뭘까? 주인공과 함께 나도 강해질래 , 강해질래 거리는 아카자 앞에서 강함에 대해 고찰했다. 힘이 세진다는게 강해지는 걸까? 강함의 반대는 약함일까? 강함과 약함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나는 강한가? 나는 어떤 사람을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강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강강약약? 강약약강?그럼 내가 생각할 때 강하다 느껴지는 사람을 지혜롭게 상대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 받아치지 않는 사람, 그와 함께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사람. 자기 힘이 세다고 크게 표명하는 사람 앞에 센 힘을 가져와 받아치는게 아니라 자신의 힘까지도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 강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주인공은 아빠와 함께 있었던 일화를 찾아내며 투지에 반할 수 있는 행동으로 아카자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끝은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나도 소리를 하나 듣게 되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해주신 “우리에게 필요한 건 unlearning 입니다” 라는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비워내기. 아이들을 바라보는 존재가 필요한 교육에서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비워내는거라고! 힘을 주고 잔뜩 욕심을 가지고 눈에 불이 이는 사람의 열정 또한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잊지 말아야 할게 힘을 빼는 것 같다. 힘을 뺀다는 말이 잡고 있던걸 확 놓는게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눈이 보고 있는 방향을, 온도를 다양하게 바꿔보는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나 욕망도 덜어보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힘을 뺀다는 말을 쓰는거지만 힘을 빼는게 어쩌면 힘이 가장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교사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기술이 풀 충전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느끼는지 보기 보다는 전해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지 않을까. 애초에 풀 충전이 되었다는 표현이 잘못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교사가 하는 말,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다 떼고 아이들을 봐야한다는 비워내기가 다시금 중요해진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사회가 채워넣기를 더 중시하기에 극단적으로 비운다라는 표현까지 쓰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결국 내가 본 극장판에서도 결말을 내지 못한 귀멸의 칼날처럼 나도 달려간다. 온갖 사유와 함께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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