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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04. 2024

나의 공방일지 2

 이런 일은 자주는 아니었지만 계속되었어. 그러니 일하다가 나에게 팩, 하고 고함을 지른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입술이 새파래서 지르는 어니스트의 폭언. 내가 나이가 많든 많지 않든 그게 따질 계제가 아니었어. 나는 고용인의 피고용인이었을 뿐이야. 그런 권리가 고용인에게 있다고 법적으로 판단할 리 만무하지만 늘상 세상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하루에 사람이 죽는 수보다 더 많이 듣겠지. 처음에는 황당했어. 이런 상황이나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어. 나는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니거든. 그런 인간은 그냥 나서 제 몸 때깔 나게만 사는 데 신경 쓰다가 생을 마감한 것이 분명했거든. 그러나 나는 어니스트가 지랄, 이제부터는 지랄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 싶어, 아는 사람들은 그건 욕이니까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넌지시 충고하겠지만, 을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눈도 딱 감고 스스로를 위로했어.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야.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개나발을 불어도. 

  노자도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그랬어. 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아니하다. 하늘과 땅은 인간이나 나무나 동물을 보살피거나 애처로워 돌보아주지 않는다. 하느님이 있거나 어머니 같은 자연도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은 여기 있어야 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나는, 내가 주체가 되고, 늘 주체는 주체하기가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여기 있어야 한다고. 큰애가 학교 졸업만 하면 다른 곳에 일해도 되는 거야. 어떤 꼴을 당해도, 어떤 수모를 당해도 참아야지.

  그래서 요 며칠 시비를 걸어도 아주 온순한 표정으로 참아냈어. 혼자 바트를 닦고 있을 때 와서 그랬을 거야. 바트를 닦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시고 어려운 일이야. 그것들을 냉장고에서 빼내 모아 놓으면 도대체가 빠지지 않거든. 그 안에 부패한 음식물이 그대로 있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깨끗이 하는 것은 뒷전이고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을 둬. 바트가 녹이 슬어도 안 닦고 쓰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게 왜? 사람들은 그럴 거야. 사람들 다 그러는 거 아니냐.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고. 뭐 녹이 슨 그릇을 쓴다고 뭐 병에 걸린대? 죽는데? 아마 이런 말을 하겠지.

  - 저기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 데 이런 걸 닦고 있어요.

  - 아, 물 좀 뿌려놓는다고.

  나는 곱게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지. 사실 냉장고 배달을 갈 때 이것들은 꼭 필요한 것이었어. 미리 닦아두지 않으면 부랴부랴 닦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조금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미리 준비해 두는 게 맞는 거야, 바보야. 일머리도 없는 바보야. 속으로 이런 욕을 하기는 했어. 어니스트는 쓰레기장에 자루를 버리고 곧 돌아서 갔어. 가만 보니, 그는 과장과 함께 진열대의 접시를 정리하는 중이었어. 팔리지 않는 플라스틱 그릇이나 깨진 그릇을 버리러 온 것이었어. 사실 내가 뭔들 내 마음대로 하겠어. 나에게는 어떤 일을 먼저하고 나중에 할 힘이나 능력도 없었어. 값비싼 냉장고나 세척기를 먼저 닦고, 값싼 것은 나중에 닦아야 하는 줄도 몰랐지. 바트를 언젠가는 내가 닦아야 하고, 냉장고를 팔 때 같이 나가야 하는 물건임에도 그랬지. 너무 주먹구구식이야. 손으로만 장부를 쓰고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었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 지금까지 회사 생활도 안 해 봤나, 체계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어.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주로 현금 거래를 한다는 거지. 

  하긴 금수저가, 금수저라고 부르기도 그렇지만, 그들이 회사에 다녀본 적이 있을 리 없었어. 어니스트는 결혼하기 전에는 제대로 알바나 했는지 싶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알기 어렵고. 부장의 말을 들어 보면,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와 척질 정도로 사이가 나빴어. 그러다 결혼하면서 아버지 부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것도 고작 2년 전 일이었어. 그러면 작은아들은 뭐 하고 있어요, 라고 부장에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어. 즈그 아부지하고 싸우고 한동안 안 나와. 해외여행을 갔는지 모르지.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나올 거야. 애들은 어디 다른 데 가서 일 못해. 아예 그런 성질머리 가지고 일하기도 힘들 것이고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 자, 배달 가자! 김기사!

  이층 싱크대가 있는 곳에서 혼자 일하는 과장이 입구에서 나를 불렀어. 김 기사, 라고 부르니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차츰 적응이 됐어. 여기서는 다들 성에 기사를 붙여서 부르는구나 싶었지. 나는 과장이 있는 트럭을 향해 달려갔어. 나와 과장이 한 조였고 박기사와 부장이 한 조였어. 미리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박기사는 주로 수리하는 부장과 같이 잘 다녔어. 냉장고 콤프도 갈고, 가스도 넣고. 냉장고 문짝을 바꾸어 주기도 하고. 과장은 철거해 온 스테인리스 작업대나 싱크대를 닦거나 배달했어. 혼자 가도 될 곳은 혼자 갔지만 둘이 가야 할 곳은 둘이 가고.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주문했을 때는 트럭 두 대가 같이 움직였어. 주로 개업을 앞둔 집이었어. 아침부터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짐을 싣고 밧줄을 메고 있다면 그런 때였어. 밧줄을 매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냥 반대편으로 밧줄을 던지는 것부터 요령이 있어야 했어. 중간에 냉장고의 어느 부분에 밧줄을 걸칠지는 그다음이고.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그는 밧줄 매는 것부터 잔소리를 들어야 했어. 너무 세게 당기다가 냉장고나 싱크대 상부가 찌그러지기도 하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능숙해졌어. 뭐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야. 철거할 때도 그렇지만, 네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만 알아도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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