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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09. 2024

나의 공방일지 3

 처음에는 과장이 운전했어. 나는 부산 지리를 거의 몰랐거든. 태어나 자란 곳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지리를 몰랐지만. 학교를 다닌 적도, 직장 생활을 한 적도 없었으니까. 하긴 학창 시절 가출했을 때 부산에 온 적이 있기는 했어. 부산에 가면 먹고 살길이 있다고들 하던 때였으니까. 그때 비하면 부산은 그때의 영광을 잃었지. 집만 하나 가지고 있어도 세 내주고 지금의 건물주처럼 살던 때였으니까. 거기에다 가까운 곳에 일자리가 있으니 날이면 날마다 살림이 불어났어. 부산의 그때가 그리운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다시 과거를 되돌릴 수 없을까 싶을 거야. 

  내가 부산 지리를 익히기 전까지는 과장은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어. 열두 살 차이가 나는 과장의 말에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하는 수 없었어. 나이가 아니라 우리는 몸을 쓰는 노동자로 살고 있을 뿐이었어. 행동하는 노동자인 셈이지.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에 비하면 얼마나 나은가. 나중에 또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몸으로 하는 일은 정신을 아주 편안하게 해 준다. 이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그런 뜻으로 하는 것은 아니야. 아주 사소한 근심이나 상처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잊힌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니까. 

  과장의 생김새나 평소의 언행은 점잖은 편이었어. 눈은 크고 코도 오뚝해서 남자가 보기에도 잘 생겨 보였고. 말투도 거칠지 않고, 이런 말은 구식에 속하겠지만 배운 티가 났어. 내게도 존댓말을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그런데 운전대만 잡으면 매우 난폭하게 운전했는데 전혀 그답지 않아 보였어. 

  나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부산 지리를 거의 몰랐어. 대로를 달리는 것을 뺀다면 말이지. 어느 길을 택해서 거제도를 가야 하는지, 화명동을 가야 하는지도 몰랐지. 수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어. 

  드라이버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본인 입으로 말할 정도니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어. 그런 과장이 MK주방에서 몇 년이나 일했다니 나로서는 존경스러웠어. 이등병이 병장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세척하는 거야 요령을 알고 열심히 문지른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트럭에 탁자나 의자를 싣는 것을 보면 그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만했어. 과장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보여주는 팔다리 근육을 보면 꼭 휘트니스 센터에 다닌 것 같았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어. 염색해서 머리는 검었고. 그것 때문인지 요즘 노인들은 대접을 못 받지. 오히려 젊어 보이고 싶어 한달까. 아무튼 육십 오세라는 숫자의 나이. 내가 저 나이가 되면 과연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보는 사람마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과장이 운전하겠다는 말에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예의가 아니었어.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로 돌아올 때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지. 가는 길을 기억해 두었다가 오기란 어렵지 않았으니까. 내비게이션을 찍어 가면 되지 않으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군사용 GPS도 아니고. 또 자가용이 아니라 영업용 트럭을 몰고 급히 가야 하니까. 부산은 다른 곳과 달리,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목적지에 닿는 게 아니었어. 자신도 모르게 좌회전 차선에 들어가 꼼짝도 못 하고 붙들려 있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어느 곳에서 어느 차선으로 달려야 빨리 갈 수 있을지도 알고 있었어야 했어.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 들수록 적응할 게 너무 많아.

  같이 일하는 박기사는 어떤 쪽이었는가 하면, 180센티미터가 거대한 체구로 인해 다리가 불편했어. 관절염이 온 게 분명할 거야. 박기사는 무거운 들어야 할 때 뒷걸음질을 치지 못했어. 그래서 나나 과장은 스스로 뒷걸음질 위치에 늘 있었어. 그게 미안했는지 박기사는 늘 운전대에 앉는 쪽을 택하고 있었어. 둘이 탈 때나 셋이 탈 때나 늘 본인이 운전을 택했어. 

  최악의 경우는, 길을 모르는 내가 부장과 함께 가는 일을 나가는 경우였어. 늘 술에 취해 있었던 부장은 혼자 수리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운전대를 잡지 않았어. 그런데 그는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무뚝뚝했어. 무엇이든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을까. 식상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어. 전전긍긍했지. 부장은 이리, 저리! 말로 하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미리 여유 있게 알려주지도 않았어. 그러면서 부장과 같이 가는 것을 겁내게 되었는데 같이 트럭을 타게 되는 일이 안 생기기를 바랐지. 가능하면 박기사가 모시고 나가기를 바랐어. 돌아올 때는 시끄럽다고 아예 내비게이션을 켜지 못하게 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부장은 술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어. 부장이 막걸리를 옆에서 마시면 한 잔씩 얻어 마시기도 했어. 글쎄, 나를 어찌하려고 그런가? 나쁜 마음도 들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어. 음주운전? 그건 아니야. 몇 잔 마신 것은 아니야. 한 잔 얻어 마신 거야. 딱 한 잔! 

  어느 날 배달을 가는 동안 나는 과장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어. 아침 8시에 출근하는데 매일 밤 12시 넘어 잠든다고 했거든. 과장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부인이 요리사여서 일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자기 일을 하는 듯했어. 일이 끝나면 서면에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6시 전에 출발하려고 매우 서두르는 모양새였어. 이를 챙겨주는 것은 주로 박기사였고. 철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어서 가라고 배려해주기도 했으니까. 그걸 두고 부장은 춤을 배우러 다니는 게 분명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럴듯했어. 

  - 바람난 거야. 서면에 춤추는 학원에 다니는 게 맞아. 

  그러고 보니 수상하기는 했어. 과장은 아침 출근 시간에 늘 전철역 앞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어. 점심시간에도 그랬거든. 그래, 

  - 여자가 있는 거야. 분명해. 

  부장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어. 그럴 리 없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랐지만 믿고 싶지 않았어. 과장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처럼 잘생긴 남자이고 예의가 바르기는 했지. 여자에게는 친절하고. 그러나 그의 인품으로 보았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니었어. 혹시 플라토닉 러브가 아닐까. 현실을 지지하고 있는 가정이 있고, 한번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쉽게 발을 뺄 수 없는 제도. 그것과 달리 사람의 감정이란 봄바람처럼 흔들리지. 미세한 향의 차이도 아주 크게 느끼기도 하고. 이런 것이라면 가능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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