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들은 거의 전멸 수준이었어. 힘없이 앉아 있는 아이, 감기약을 먹은 아이, 엎드려 있는 아이. 시험 기간에는 늘 그랬어. 아이들이나 강사의 얼굴에 힘든 표정이 역력했어. 마치 사막의 생텍쥐페리 같았지. 비행기 있는 곳까지 다시 걸어가야 한다고? 물도 없는데. 이제 더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어.
그 와중에 윤이는 잊지 않고, 어제도 그에게 외쳐댔어. 어쩌면 그렇게 레퍼토리도 바꾸지 않고.
“왜 제 말을 씹어요?”
그는 화낼 수도, 웃을 수도 없었어. 멍하니 윤이를 바라보기만 했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교단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어. 나는 여기 잠시 온 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말이지.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윤이에게 어떤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 구제 불능이 아닐까. 결핍일까. 타고날 때부터 저 애는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야. 우생학이 세상을 망쳤어. 요즘 애들이 잘 쓰는 말로 트라우마일까.
“오늘 학원비 냈는데 돌려주나요?”
윤이의 말에 그는 대꾸할 말이 없었어. 속으로 그는 그랬어. 그래, 내가 을이고 네가 갑이여.
“내가 학원비 받은 적이 없으니 원장님한테 말해봐.”
순간 그는 이 패턴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가 수업 시간에 들어가고, 윤이가 떠들고, 그는 떠들지 말라 말하고. 그다음 윤이가 왜 제 말을 씹느냐고 따지고.
“이제 앞으로 윤이에게는 질문을 허하지 않는다.”
이런 선포가 얼마나 갈까 싶었지만 잠깐은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했어. 윤이는 곧 고통스러운 낯을 보이거든. 그것이 다시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이건 어쩌면 흔히 주워섬기는 윤회나 업보가 아닐까. 애정결핍이 아니라 윤이는 정말 할 말이 있는데 내가 들어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윤이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 할 말이라는 것이 내게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윤이에게는 순간적으로 절실한 문제고.
그런데 막 수업이 시작하려 했을 때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어.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훈이가 저보다 체구가 한참 작은 아이 멱살을 잡고 벽에 쿵쿵 소리가 나게 찧고 있었거든. 그것도 장난스럽게 웃어가며. 서둘러 그는 훈이 어깨를 잡았지.
“뭐 하는 거야?”
“이거 왜 이래요? 장난이에요.”
훈이가 그를 노려보았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 그러나 그는 쫄지 않고 그랬어.
“정신 차리고, 돌아가. 네 자리로.”
훈이는 금방이라도 덤빌 것처럼 보였어. 잠깐이었지만 그를 노려보았고. 그가 어떻게 했느냐고? 그는 못 본 체했어. 그때쯤 다른 아이들이 체구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뒤쪽으로 갔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지. 112순찰차가 왔을지도 모르고.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한 번은 원장에게 손바닥을 맞은 여고생이 신고해서 경찰이 학원으로 들어온 적도 있거든.
수업이 끝난 후 그는 훈이를 복도로 불렀어. 뭐라고 타이르면 될 것 같았거든.
“아까 왜 그런 거야?”
“잠시 이성을 잃었어요.”
“그래, 아까는 잘한 것 같아?”
이 말을 해 놓고 그는 후회했어. 왜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몰랐어. 게다가 이 말은 원장이 아이들을 다잡기 위해 자주 쓰는 말이었어.
“잘 모르겠습니다.”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었어. 장난으로 친구를 벽에 쿵쿵 처박아도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뜻으로 비쳤거든. 그가 기다리던 대답은 이거였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이 훈이 입에서 나오면 그는 앞으로 잘해, 라고 할 작정이었고.
“학교 선생님한테도 이렇게 대답해?”
대답이 어긋난 탓에 약간 화가 난 그가 그랬지.
화가 난 그는 훈이를 노려보며 그랬어. 부러 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어.
“너도 한번 벽에 부딪혀 볼래? 기분이 어떤지?”
다행히 훈이는 말이 없었어. 그를 쳐다보며 살짝 주먹을 쥐었을 뿐이지. 이것을 보자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느껴 견딜 수 없었지만 금방 사회 선생과 원장이 하던 말을 떠올렸어.
“2학년 교실에는 들어가기만 하면 짜증이 나요. 훈이 그놈도 영 못된 놈이에요.”
사회 선생의 말에 원장은 생각할 틈도 없이 벌컥 화를 냈어.
“아니 선생이 좋은 애들만 데리고 수업할려고 했어요? 진짜 선생이 되는 길이 그리 쉬운 줄 알았어요? 그런 놈들은 사정이 없이 패요. 혁이도 그렇고.”
“아, 참나! 공부하는 놈이 한 명도 없어요.”
“애들 말은 뭐 하러 들어줘요. 수업하는 방식이 문제가 있어요. 내 수업 시간에 애들 떠드는 거 봤어요?”
사회 선생과 원장의 대화가 머릿속을 점령하며 용오름처럼 솟아올랐어. 누구도 원장의 말을 무어라 반박하기는 어려웠지. 원장 시간에 아이들은 절대 떠들지 않았거든. 원장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를 드러내며 묻지 않으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는 여기까지 두 사람의 말을 찾아냈지만 정작 이 순간에 위로나 영향을 줄 말이 아님을 깨달았어. 그다음에 이어질 게 있었는데. 어쩌면 이 순간을 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를. 어떤 이미지였나, 단어였나. 그래, 언어였지.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사회 선생 말. 훈이는 어쩌면 싸이코일지 몰랐어. 싸이코 패스라고 했나, 패스라고 했나. 강사가 학생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학생이 듣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훈이는 감정을 지니고 있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어. 그가 느끼기에는. 그러면서 그는 비관적으로 바뀌었어. 참 이상한 애야. 나는 이 애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이길 수 없어. 가르침을 줄 수도 없고. 이 학원도 보통의 학원이라고 할 수 없어. 특수한 학원. 강사들이나 아이들이 한 번씩 주고받는 말처럼.
“학교 선생님은 저한테 이러지 않아요.”
난데없는 말에 그는 다시 흔들렸어. 무어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가도 됩니까? 선배가 기다려서요.”
그런 후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놀란 그는 훈이를 돌려세웠어.
“내가 가라고 해야 가는 거야.”
“갑니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은 생각해 보지 못했지. 그는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어. 그래, 이건 억지야. 인정하고 보내주는 거야. 애를 길들인다고 생각하다니, 참 꿈도 야무지군. 그때였어. 어디선가 나타난 영지가 멍한 그를 흔들어 깨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