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계은행 경험 이야기
홍콩에서 매년말 국가별 Head_Meeting을 끝내고 와인으로 한해를 자축할 때의 상상도
이 글은 나의 외국계은행 경험시리즈 1편의 POSCO에서 BTC(도이치 은행)로 이직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외국계은행인 HSBC은행 생활 이야기이다.
나는 1달간의 도이치은행 금융상품 설계팀에서 OJT를 성공적으로 귀국 후 많은 대기업과의 금융위험 관련 거래를 성사시켰고, 특히 홍콩의 구조화 desk와 공동으로 두산중공업의 3년 이상이 소요되는 조선 관련 장기외환 위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장기상품에 주력도 하고, 공기업의 채권발행 시 이자율을 절감하는 아이디어를 담은 구조화채권을 발행하도록 하여 한국철도시설공사, 가스공사등이 더 낮은 금리로 KRW (원화) 채권을 발행하게 하는 등 도이치에서 정착을 하고 있었다. 다만 Original 도이치은행 출신이 아니다 보니 보너스나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불공정이 높아지고 있었고, 그런 사소한 내용이 자존심 싸움이 되는 등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BTC출신들은 저를 포함해서 두 명만이 남아있었고, 남은 두 명도 2003년에 모두 영국계 은행으로 이직을 했다.
저의 이직은 우연히 도이치은행에서 HSBC로 영전을 한 후배가, HSBC 아시아 최고 Head가 한국방문을 해서 시장상황을 들어 보고 싶다고 저를 초청을 해 주었는데, 1:1 미팅에서 그는 솔직히 HSBC는 세계적으로 Top 5에 드는 은행인데, 서울에서만 영업실적이 부진하다고 하면서 만일 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으며 나라면 철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은행의 성패는 조직에 얼마나 우수한 영업능력과 금융상품을 이해력을 가진 sales staff들이 있느냐에 달려있지 bank name은 그다음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나라면 3년 내에 서울에서 HSBC가 3위 내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다음 날 나에게 더 인상된 급여, 최소 보장 보너스금액, SM5 차량제공, 골프회원권, 상무로의 승진을 골자로 하는 Offer Letter를 보내주었고, HSBC에는 증권과 은행의 수장이 모두 BTC출신이라 나는 편안하면서도 든든한 마음으로 HSBC로 이동을 했다.
저는 그렇게 HSBC의 head of Sales로 영전을 하였고, 기대반 걱정반으로 업무파악을 시작했다. 그중 발견한 내용은 HSBC는 다른 운행들과는 달리 거대한 은행조직을 이용한 다국적 기업들과의 영업에 너무 집중을 하고 있었고, 이런 사업은 전세계적인 은행조직이 주도하는 사업이다 보니, 저라는 개인이 영업기반을 확장시킬 아무런 능력 없었고, 또 이런 영업은 도이치은행등 영업분야의 선진은행에서는 이미 수익울이나 부가가치가 적어서 포기한 사업 내용이었다. 그래서 저는 도이치은행도 대기업 빛 금융기관 영업(은행, 증권, 연기금, 정통부, 보험 등)의 새로운 시장개척을 선언하고, HSBC의 기존조직이 주도하는 사업에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그러나 경쟁은향에는 이미 익숙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시간만 나면 홍콩을 방문해서 상품개발팀과 회의를 하며 한국비즈니스의 중요성과 잠재력에 대해 강조를 했다.
금융기관은 한국은행, 삼성생명, 농협, 국민연금이라는 4대 공룡이 있기 때문에 이들 조직과의 영업은 필수적이고 따라서 이들 조직이 원하는 투자수익률을 증대시킬 상품들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새로운 먹거리 개척이라는 모토에도 불구하고 HSBC는 위험을 너무 멀리하는 너무 보수적인 은행 시스템으로, 금융기관들이 원하는 수준의 멋진 상품도, 경쟁력 있는 가격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제가 도이치은행에서 스카우트를 해온 우수한 후배(나중에 서울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Sales로 이름을 날림)는 그 해에 수익이 0이라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고, 본인도 야욕을 가지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질서와의 갈등과 저항을 붕괴시키는 과정 중에서 생긴 많은 적(?)들이 생겼고, 제가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저의 새로운 시동에 대한 반발이 점증하고 있었는데, 홍콩본부에서는 그 문제는 사람을 잘못 뽑은 것이 아니라 서울의 자금부문을 회기적으로 지원하기에는 홍콩의 Desk가 너무 약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홍콩에서도 소위 마켓에서 최고의 용병들을 채용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당시의 아시아 최고 head는 여자였는데, 똑똑함과 당참으로 은행 내에서 매우 유명한 분이었는데 호주에서 MBA를 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 그녀가 제가 박사를 한 Macquarie 대학교 MBA출신이었다는 것이고, 당시 HSBC에는 그녀 말고도 Macquarie 대학교 출신인 Head들도 많았다. 참고로 가장 최근의 호주 MBA 순위를 보면 Macquarie 대학교는 호주/뉴질랜드 지역 5위에 Rank 되어 있다.
https://www.topuniversities.com/mba-rankings/oce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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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덕분에 둘째 해부터는 금융기관과의 첫 거래도 시작을 하면서 기존에 기업에서 100%를 벌던 수익구조도 다변화하고, 특히 다국적기업에만 주로 의존하던 기업부문 비즈니스도 POSCO, 삼성, LG 등 주요 그룹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박정수의 새로운 군단은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인재들도 높은 급여를 주면서 채용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는 본인보다도 높은 급여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고 채용을 한 케이스도 있는데, 이 사실을 나중에 안 홍콩의 헤드들은 다시 저의 급여를 이 들보다 더 높게 책정해 주는 등 서울은 이제 오랜 악순환의 굴레를 무너뜨리고, 점차 선순환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특히 아시아 head인 그녀가 서울 출장을 온다고 하기에 1시간만 나와 면담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출국 당일까지 아무 소식이 없던, 그녀가 점심시간 1시간을 비웠으니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서울시장의 잠재력, 경쟁사들의 마케팅 지원 대비 열악한 HSBC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를 벌테니, 영업에 필요한 에쿠스등 차량 밍 기사, 남들이 선망하는 서울 top10의 법인 골프회원권 등을 요구했다.
홍콩으로부터 서울의 영업지원책에 대한 아무런 feedback 이 없이 한 달가량이 지나갔는데, 총무과장님이 저를 보자 전무님, 차는 뭘로 살까요?라고 갑작스러운 질문을 해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에쿠스, 기사, 골프장 등 전무님이 고르시는 데로 사주라고 홍콩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고 했다. 저는 40대 중반인 제가 에쿠스를 타기에는 너무 사치스럽고, 남들이 보기에 적당하지만 가격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오피러스 3.5를 선택했고 젊은 기사를 채용했다. 그리고 골프장은 짐에서 1시간대에 전근이 가능하고 주말 2회 Booking이 보장되는 남양주 소재 “Vision Hills 법인회원권을 구매했다. 이것이 HSBC가 경쟁사와의 동일한 선상에서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고, 만일 “경쟁사와의 전투에서 밀린다면 이것은 저의 팀들이 무력한 것이다는 결론으로 귀결이 되는 것이었다. 비전힐스는 당시 4억 6천만 원에 구입했는데, 현재는 약 16억 정도라고 한다. 이로 인해 타 부서에서도 차와 골프회원권을 교체하는 등 HSBC에 우군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비전힐스 덕분에 월화수목 금금금이 되었는 주말에도 하루를 쉴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허리도 아파 고생을 했고, 체력을 키운다고 점심시간에 빌딩옆 4성급 호텔에서 헬스를 하다가 아킬레스근이 파열이 되기도 하는 도 했다. 코치와 130kg 역기를 들고 앉았다 일어나는 묘기를 부리다가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운동복 반바지가 찢어지는 상황으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그 주 주말에 골프를 치면서, 3홀째인가 드라이브를 치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뻥한 느낌과 함께 눈에는 각종 별빛이 나타나면서 나는 쓰러지면서 오른 허벅지에 고통을 느꼈는데, 골프장에서는 가끔 벌에 물려서 그럴 수 있다면서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킬레스건 상단이 파열되었다고 깁스(독일어로 gips, 석고, 영어로는 (plaster)라고 합니다.)를 해 주었고, 월요일에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치료를 하라고 하셨다. 멀쩡하게 골프를 간다고 나간 남편이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돌아왔으니 집사람과 두 딸은 얼마나 놀랬을까? 참 기억이 생생하다. 국가대표주치의가 운영한다는 재활병원에서, 외충격파 치료 등 고통스러운 치료를 하는 고생도 경험하면서 나의 외국은행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업이 잘되어 가면서, 리모델딩을 아파트라 동급 대비 가격이 너무 쌌던 방배동 아파트로 전세를 옮기고, 고객들도 집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매분기마다 영업목표를 달하면 deal room 원을 집에 초청을 해서 와인파티를 했는데, 다들 여유 있는 출신이다 보니 와인 한두 병은 사 왔기 때문에 집사람과 나는 음식만 준비하면서 부담 없는 자축행사를 했고, 덕분에 동료 간 우애도 강화되는 등, 외국계의 악행인 급여를 더 받는다는 이유 하나로, 타행으로 이동하는 관행은, 나의 경우 5년 생활 중 2명만 이직하는 등 나는 인사관리에도 성공을 하였다. 나는 이렇게 HSBC서울법인을 국내 선두그룹으로 육성을 시켰고, HSHC아시아 내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법인으로 인식이 되면서 저는 매주 아시아 법인장 회의에서 칭찬을 받는 인물 중의 한 명이 되었고, 이런 시너지로 모든 홍콩의 desk들이 한국과 비즈니스 기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해서 같이 좀 장사를 하자는 방문객도 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나의 하루는 바빴고, 머리는 복잡했으며, 내부/외부의 미팅은 늘어나고, 저녁에 만나는 고객수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술도 좋아해서 사람을 만나는 모임에도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버티기는 했지만, 체력적인 한계도 있고, 결국 POSCO 동기들 대비 급여는 더 많이 받지만, 이 돈들은 다 나중에 쓸 병원비를 먼저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다. 그리고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서, 나이가 더 먹기 전에 은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저는 2008년 초에 사의를 표시했습니다. 박사학위라는 당초의 꿈을 시작한다는 계획에 의한 결정이기도 했고, 급기야 저의 전임자인 boss가 갑작스럽게 뇌암에 걸려 휴직을 했고, 이에 저의 가족들도 아빠도 이제부터 쉬어야 한다고 강요를 해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연말까지 다니는 것으로 하고, 대신 회사는 작년에 받던 보너스는 추가로 주기로 했다.
9월에는 먼저 가족들은 시드니에 입국을 시키고 홀로 귀국을 해서 3개월 정도 기러기생활을 했다. 이때 홀로 돌아오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별도로 기록하고자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2008년 12월에 아쉽게도 나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준 외국은행 근무를 마치고, 나와 마지막까지 HSBC 성공스토리의 주공공이 되어준 2명의 임원들과 싱가포르에서 하루를 보내고, 눈물의 작별을 한 후, 나는 다시 시드니로 향해서 크리스마스는 시드니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사표를 낸 결정적인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제가 급하게 퇴직을 선언하자, 저를 이해 일을 하는 팀장들이 대표님은 모아놓은 것이라고는 아파트 한 채와 현금 정도인데, 해외에서 10년 후 귀국을 하면 나이도 있고 해서 재취업도 어려울 것이고 결국은 거지가 될 것이 뻔한데, 사표를 반려하라는 주장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잘 안다는 용한 점집에 가서, 그분이 가라면 가시고, 마라면 다시 일하시라면서 그들 몇 명과 같이 북악 스카이웨이 인근 절을 찾았는데, 결론이, “이분은 사주에 황금을 깔고 앉아 있기 때문에 유학을 가셔도 된다”라고 결론을 말해주었다” 그 후, 다행히도 후배들은 저를 보내주었다.
저는 그 이후 하루하루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그런 생활을 했고, 주식으로 받은 보너스가치의 하락, 호주달러의 폭등 등 악영향을 경험하며, 한국에 귀국을 해서는 그간 가입한 예금, 보험, 펀드 등을 모두 해약하고, 아파트 담보대출로 아이들 2년간 더 유학비용을 지원하는 등 현재까지 이렇다 할 재산증식은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 채가 있는 여의도 아파트가 선방을 하고 있고, 제가 원하던 100세까지 연구할 주제를 매일 연구하며 배위장대신에 두뇌를 만족시키는 위대한 과업을 하고 있어, 이것이 그때 그 스님이 말씀한 방석 밑에 황금을 깔고 앉아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책상과 의자와 사귀면서, 하루에 8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여기서 미래에 황금이 생길 것이라는 예시가 되었으면 한다. 돈은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 지식이 쌓여가는 나의 학문의 세계가 이 세상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은 저의 후임인 영국계 친구가 HSBC에 대해 소개한 인터뷰를 한 기사이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09102007452128722
그리고 다른 저를 도와 같이 일을 했던 다른 직원이 인터뷰한 내용도 찾았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1109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