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스포일러 리뷰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지난 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이하 아없숲)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이다. 매 회차마다 여러 배우들의 목소리를 빌려 독백의 형식으로 읊어진다. 같은 대사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연출자가 의도를 가지고 특정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음을 뜻한다.
덕분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만, 정작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비슷한 분량을 가지는 다른 드라마들의 경우 초반 2~3편 정도 보고 나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혔다. 그런데 ‘아없숲’은 초반은 물론, 중반을 훌쩍 넘어서까지 아주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편도 아니어서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꽤나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차분하게 나아가는 이야기가 취향인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작품이겠으나 그 반대라면 고구마 같은 전개에 시청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견디고 보다 보면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는 구간에 들어설 수 있다. 6화 이후로 마지막 8화까지는 같은 드라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급속도로 전개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변속 구간이 다소 늦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다.
초반의 느린 진행 속도로 생기게 되는 여백들은 다른 연출 요소들이 채워준다. 흡사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더 가깝다고 느낄 정도로 미장센과 배경음악은 일품이었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두 말할 것 없이 탄탄해서 천천히 가는 만큼 장면 하나하나의 밀도가 매우 높게 다가온다.
김윤석, 윤계상, 이정은 배우의 연기는 촘촘히 얽힌 그물망처럼, 어느 하나 허술한 곳이 없었다. 특히, 유성아 역할을 맡은 고민시 배우의 열연은 어마어마했다.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 속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후반부에서는 거의 혼자 하드캐리 할 정도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렇듯 각종 연출 장치와 연기에 집중해서 본다면 느린 전개가 꼭 단점만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 회차마다 스토리의 무게감과 속도를 더 균형 있게 배분했더라면 더 좋기는 했을 것이다. 거기에 조금 더 자세한 내용 연출이었다면 금상첨화였을 테다.
‘아없숲’은 두 개의 시간대를 교차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먼저 2000년 초반 한적한 강가 근처에 모텔을 인수해 운영하는 부부 구상준(윤계상)과 서은경(류현경)이 살고 있는 시간대다. 그들의 모텔에 묵게 된 연쇄 살인범 지향철(홍기준), 그는 구상준의 배려로 투숙한, 호수 뷰가 멋진 방에서 납치한 피해자를 무참하게 살인했다.
또 다른 시간대는 2021년으로 어느 깊은 숲 속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전영하(김윤석)와 그곳을 찾아온 유성아(고민시)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유성 아는 사이코패스로 그 펜션에서 여러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장소는 다르지만 20여 년의 시간의 텀을 두고 가해자도 피해자도 소름 돋도록 비슷하게 닮은 두 가지의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동떨어진 시간대를 이어주는 인물이 바로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경찰 윤보민이다. 과거 모텔 사건에서는 갓 발령받은 신입 순경이었으나 21년의 펜션 사건에서는 베테랑 파출소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각각의 이야기를 빈번하게 교차하며 다루다 보니 헷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별 다른 설명 없이 시간대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별히 집중해서 보아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관객들로 하여금 추리를 통해 알아가게끔 의도한 것 같지만 박할 정도로 정보를 주지 않기에 흐름을 한 번 놓치면 매우 혼란스러워 감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혹자는 차라리 늘어지는 전개를 없애고 분량을 확 줄여 6부작 이내로 끝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일정 부분 동의 되는 바다. 두 시간대의 서사가 결국 마지막에 함께 만나게 되는데 느렸던 전개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의 개연성은 부족하게 다가왔다. 교차 전개하는 법 대신, 차라리 각기 시간대의 내용들을 별도의 이야기로 다뤄 시즌1과 2로 나눴으면 어땠을까 싶다.
작금의 현실은 모든 것이 짧고 간결하며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는 경향성을 띤다. 사람들은 긴 이야기보다 짧은 이야기를 선호하고, 이는 각종 영상 플랫폼에서 숏폼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이야기를 따라가야 할 필요도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호흡이 느린 만큼 드라마나 영화 속에 담긴 심층 메시지가 관객들의 마음속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지 않겠는가.
2000년의 구상준과 2021년의 전영하는 비슷한 피해자다. 상준은 살인모텔이라는 소문 때문에 모텔이 망하게 된다. 그의 가정은 파탄 났고 아들마저 학폭과 왕따 피해자로 괴롭힘까지 당한다. 영하는 우연히 옆집 펜션 대신 받게 된 손님이 하필 유성 아라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여서 자신은 물론 심지어 딸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단지 피해를 당했다는 결과만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살인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호의를 베풀었다가 탈을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도와줬다는 이유로 살인 사건이라는 끔찍한 일에 엮이고 만 것이다.
굳이 주인공들의 잘못을 말하자면, 자신들이 목격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범행의 정황이나 증거들을 애써 외면했다는 데 있다. 2000년 상준의 아들인 기호가 그러했고, 2021년 영하가 그러했다. 기호야 당시 어린 아이였으니 겁에 질려서 그럴 수 있겠다 치더라도 영하는 자신의 펜션에서 살인의 정황을 발견하고도 묵인하고 넘기려 한 것은 분명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현실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어떠한가? 당장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을까? 굳이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이나 범행을 목격하게 되어 의심할만한 증거들을 발견한다면 망설임 없이 신고할 수 있을까?
각박한 사회 현실은 갈수록 우리로 하여금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해 얽히는 것이 손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 주듯이 남에게 일어난 일은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즉 남을 돕거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결국에는 나를 살리는 길일 수도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면 반드시 쿵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없을까? 우리의 이기심이 숲에 있을법한 사람들의 존재를 애써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이다.
쓰러진 나무로 인해 누군가는 큰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만약 당신에게 그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숲에 들어가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한 이상 이미 '아무도 없는 숲'은 아닌 게다. 아무나, 누구라도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적어도 가슴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면 말이다.
*사진출처: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