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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중증외상센터' 정주행을 추천하는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포일러 리뷰

by 천세곡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증외상센터’(이하 중외센)는 참 오랜만에 만나는 웰메이드 의학 드라마였다. 이번 정권에서 발발된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여전한 상황 가운데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씁쓸하면서도 무척 의미 있게 다가왔다.


‘중외센’은 총 8부작으로 넷플릭스에 전 회차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의학물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첫회를 보고 나니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회당 러닝 타임이 한 시간을 넘지 않으며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질질 끌거나 쓸데없는 떡밥 투척도 없다. 진도 빼기 무척 수월했다.


관련 댓글들을 찾아보니 나와 같이 호평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재미와 몰입감이 상당해 한번에 정주행 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의드 특성상 어려운 의학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리드미컬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를 이어간다. 덕분에 마침 긴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을 지루함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먼저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다는 점이다.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몇 년 전 중증 외상 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러 활약을 해주었던 ‘이국종 교수’를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실제로 원작이 웹소설(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인데 작가가 이국종 교수의 활동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심지어 빌런 역할까지 캐릭터를 탄탄하게 구성해 낸다. 캐릭터 서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주인공 백강혁은 비교적 유명하지 않은 무한대학교 출신의 외상 전문 외과의다. 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외 내전 지역을 누비며 생명을 걸고 메딕으로 활약해 왔다. 그러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보건복지부 강명희 장관의 스카우트로 일류대학이라 할 수 있는 한국대학교 중증외상팀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번째, 드라마 초반의 흐름을 주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할애해 준 덕에 이야기가 아주 탄탄하게 전개된다. 덕분에 후반부 꽤 빠른 템포로 전개됨에도 시청자 입장에서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별로 무리가 없었다. 웹소설이 원작이고 웹툰으로 제작된 뒤,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 보아도 큰 재미와 탄탄한 스토리는 이미 보장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주인공 백강혁 교수(이하 백교수, 주지훈 배우)가 보여주는 신념과 행보다. 모든 병원마다 저런 의사 한 명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한 마디로 사기캐다. 신기에 가까운 의술, 환자의 생명과 관련되서는 아무리 높은 지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굽히는 법이 없다. 모든 상황에서 그의 최우선 순위는 오직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백교수는 외국의 내전 지역에서 총탄을 피해 가며 목숨 걸고 많은 생명들을 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가 가진 의술은 일반 병원에서 실력을 닦아온 일반 의사들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신속하고 단호한 판단력으로 오직 살리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낙후된 시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오면서 다양한 케이스의 임상을 쌓아왔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탁월하다 못해 어지간한 교수급 전문의가 보기에도 감탄할 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거침없는 실력과 판단력으로 부임 첫날부터 그는 위급 환자를 살려낸다. 돈이나 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백교수는 오직 환자를 살리는데만 진심이다. 대부분의 동료 의사나 간부급들이 당연히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하기에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환자보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백교수는 그들과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된다.


백교수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실력 그리고 츤데레 적인 매력으로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리더십을 발휘해 어벤저스급 팀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수석 입학한 다른 과 레지던트를 펠로우로 합류시키고, 까칠하지만 중증센터에서 가장 오래 버틴 간호사 역시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조용히 이들을 지켜보던 비교적 과묵한 마취과 선생도 백교수의 탁월함에 감명받아 그와 함께 하게 된다.


백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적마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특히 백교수를 내쫓아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펼쳤던 외과 과장 한유림 교수를 자신의 편을 너머 아예 팬 수준으로 매료시켰다. 한유림 교수의 딸이 사고로 인해 중증 외상 센터로 왔는데 심각한 상태에 있는 그녀를 백교수가 살려냈기 때문이다. 이에 감동한 한교수는 백교수의 편이 되고 의사로서도 점점 그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의사다운 의사의 모습으로.


드라마 속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는 의료진의 헌신과 열악한 장비의 대비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대사로도 등장하는 내용인데 중증 외상은 불특정 다수 어느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당장 내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나의 소중한 가족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실려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숱한 의학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유독 이번 중외센이 더 와닿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히 모티브가 된 이국종 교수 활약 덕에 현재는 대부분의 권역에 중증 외상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력 부족, 예산 제한, 시스템 열악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상태라고 한다. 냉정하게 완성 단계가 아닌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점들이 다 해결되지 않았기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


백교수는 혼자서 영웅적인 면모를 가지고 위기 상황에서 하드캐리하는 먼치킨과 같다. 그렇지만 영웅심 소위 뽕에 취해 살아가지 않는다. 의사가 되고자 했던 첫 마음, 자신 안에 새겨진 사명감을 부여잡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이 동료와 후배 그리고 적대적이었던 사람마저 자기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킨 거라 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냈다.


이번 구정 연휴가 참 길다. 오가는 귀성길 혹은 여행길에 큰 사건 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증 외상센터가 붐비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혹시 긴 연휴 집에서 쉬고 있다면 이 드라마의 정주행을 강력히 추천한다. 단언컨대 아마 한번 시작하면 필자와 마찬가지로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중환자가 살아날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현실 의료체계에 대한 중요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무나도 혼란한 지금의 우리나라는 선명한 상흔 투성이다. 중증 외상을 입은 사회와 다름없다. 백교수와 같은 사명감 가득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때다. 어서 신속히 상처가 봉합되어 정말 중요한 것들에 힘을 쏟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긴 연휴를 잘 보내고 각자의 자리를 더 굳건히 지키는 우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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