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샘틴 아메리카'가 증명한 두 가지

<디즈니 마블> '캡틴아메리카 4 브레이브 뉴 월드 약스포 후기

by 천세곡

2월 12일 디즈니 마블의 야심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이하 캡아 4)가 개봉했다.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관람할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었다. 최근 마블 영화들 중 재밌었던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갈수록 더 재미없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망뿐이랴.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2019년 이후 5년 동안 총 11개 작품이 개봉되었는데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제외하면 마블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처참한 관객수를 기록해 왔다. 거기에 영화마다 가족주의와 PC주의를 억지로 끼워 넣은 만행은 큰 불호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비판에도 이는 바뀌지 않았었고 기존 코어 팬들 중에서도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몇 시리즈는 OTT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드라마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자사의 OTT서비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기는 했는데 팬심을 이용한 강매로 보인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는 팬들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스토리가 워낙 많은데 보아야 할 건 더 늘어났으니 신규 팬층의 유입은 줄었고, 기존 팬들조차 부담이 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패착은 캐릭터 서사 부여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웅들이 왕창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캐릭터들의 고뇌와 성장을 다뤄낸 개별 영웅들의 시리즈도 재밌었다. 대표적으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의 영화도 어벤져스 못지않게 사랑받았다는 말이다. 각 영화들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뤄 재미를 가중시켜 주었다.


그에 반해 엔드게임 이후 등장한 캐릭터들은 어떤가. 가뜩이나 낯선데, 서사조차 제대로 부여해 주지 않으니 소위 어벤져스를 잇는다는 2세대 영웅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히어로 장르물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게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주인공이 노잼이니 영화 자체가 재밌을 리 만무하다. 1대 어벤져스 멤버들을 그렇게 멋있게 퇴장시켜 놓고, 그 뒤에 나온 캐릭터에 공을 들이지 않았으니 팬들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마블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개봉되었음에도, 인기는 확 식어버렸다. 기존의 코어팬들조차 이탈하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마블의 팬으로서 한 때는 영화의 개봉일만 손꼽아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대책 없이 무너져가는 마블 영화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설레지도, 기다려지지도 않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캡아 4'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캡아 4의 예고편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어쩌면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생긴 것일까. 함께 한참 잊고 살았던 개봉 전 그 설렘의 감정이 내 안에서 조금씩 되살아났다. 예고편이 엄청 잘 뽑힌 건 아니었지만, 액션씬 부분에서 예전 캡틴 아메리카 2: 시빌워(이하 캡아 2)의 느낌이 물씬 낫기 때문이다.


'캡아 2'는 마블 시리즈 중에서도 나의 인생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마블의 입문을 했고, 동시에 입덕을 했다. 정치 스릴러물의 장르 색깔을 가져가면서 액션 또한 기가 막히게 연출한 캡아 2의 밸런스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알려진 대로 캡아 2의 감독은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와 엔드게임을 제작한 '루소 형제'다.


그때의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참지 못하고 개봉일이었던 12일, 무작정 당일 예매를 해버리기에 이르렀다. 마침 가까운 극장에 바로 볼 수 있는 시간대에 빈자리가 있었다. 파워 J형인 내가 이렇게까지 계획에 없던 행동을 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다. 여전히 영화에 대해 기대 반, 우려반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설렘을 안고 극장을 향해 달려갔다.


IMG_9998.jpg



영화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는 내내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번에도 재미없으면 다시는 마블을 안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차였다. 나의 이런 예상은 기우였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니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영화였다.


이번 캡아 4의 핵심 포인트는 ‘자기 증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요소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줄거리를 축약하자면 1대 캡틴이었던 스티브 로저스(이하 스티브)를 잇는 샘 윌슨(이하 샘)이 과연 2대 캡틴 아메리카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 내는 과정이다.


그동안 샘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과 슈퍼솔져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캐릭터명에서 알 수 있듯이 캡틴 아메리카는 극 중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의 포지션이다. 샘은 이전 캡틴인 스티브에게 직접 방패(캡틴의 자리)를 물려받았음에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했었다. 더불어 슈퍼 솔져 혈청을 맞지 않은 그는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기도 했다.


캡아 4에서 샘은 언급한 두 가지 산을 극복하고 2대 캡틴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해 낸다. 흑인으로서 차별받아왔던 이사야(극 중 비밀리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슈퍼솔저)와의 만남을 통해 샘은 자신부터 피부색이 다르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더불어 엔드게임에서 스티브가 샘에게 방패를 물려준 것 자체가 그가 자격이 있음을 뒷받침해준다. 캡아 1편 '퍼스터 어벤져'에서 스티브가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그가 백인이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뛰어난 이타심과 정의감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스티브이기에 샘에게 방패를 준 것이다.



1.JPG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건, 사실 샘에게 큰 약점이다. 대신 와칸다의 기술력으로 극복해 낸다. 버키(윈터솔저)의 배려로 비브라늄 슈트를 받은 샘은 새로운 캡틴으로서 부족함 없는 전투력을 선보인다. 물론, 지상에서 벌이는 육탄전의 파괴력과 긴장감은 기존 스티브의 캡틴이 보여주었던 것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못지않다는 점이다. 이전과 확실히 성장한 샘의 격투기술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일반 사람으로서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을지 추측케 한다.


단순히 슈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슈트가 없을 때도 그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적에게 맞선다. 비브라늄 방패와 업그레이드된 윙 슈트는 훨씬 기동성 있는 전투신을 보여주었다. 특히, 공중전은 미친 연출 그 자체다. 하늘에서 전투기들과 맞서는 그의 액션은 흡사 탑건: 매버릭을 떠오르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혈청의 슈퍼파워가 없음에도, 공중과 지상을 아우르며 사기캐의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샘의 성장 서사에 충실하면서 그가 왜 캡아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완벽히 증명해 낸다. 예고편에도 조금 나오지만 마지막은 샘의 캡아와 레드 헐크의 대결로 마무리된다. 아무리 슈트를 입었다지만 최강 파워 헐크를 샘이 상대나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우리가 아는 녹색 헐크가 폭주했을 때 아이언맨의 헐크 버스터(헐크 대적용 슈트)도 당해내지 못했었다. 샘이 레드 헐크와 벌이는 전투는 이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다. 궁금하다면 지금 예매하러 가길 권한다.


캡아 4는 다 죽어가던 마블 시리즈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CPR을 완벽히 해냈다. 마블을 다시 살려낸 셈이다. 덕분에 다시금 앞으로 개봉하게 될 마블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희망 고문이 아닌 진짜 희망을 안겨주는 영화다. 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가 건재함을 당당하게 증명했다.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딱 이렇게만 계속해준다면 소원이 없을 듯하다. 팬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캐릭터 서사에 공을 들이고 각 인물에 맞는 연출만 뒷받침된다면 한 물 간 마블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1대 캡아가 마블의 첫 전성기를 이뤄내주었던 것처럼, 2대 캡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 역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다시금 전성기를 일으켜 주기를 기대한다. 모든 마블팬들에게 캡아 4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영화다.





*사진출처: 유튜부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예고편 갈무리, 직접 촬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전,란' 제목에 쉼표를 찍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