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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May 11. 2022

면접에서 웃겨 봄

나를 무(미)치게 하는 사람

구청 알바 계약이 종료되고, 구직활동에 다시 뛰어든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채용공고들을 보면서 온 맘과 정성을 다해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가장 맘에 들었던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번엔 정규직의 꿈을 꼭 이루리라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아직 2월인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제법 따뜻한 바람이 섞여 있다. 봄이 오려나? 예감이 좋다. 회사에 도착했다. 담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로 들어가니 면접관이 한 분 계셨다.


  면접이 시작되고 여러 질문들에 차분히 대답을 해나갔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면접을 마치려는지 면접관인 부사장님이 마무리 멘트를 시전 하신다.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면 안 된다. 노호혼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고 바른 자세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일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웬 중년의 여자분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그 여자분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면서 부사장님을 향해 걸어갔다.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가 부사장님이 보던 서류들을 거의 빼앗듯이 가져가더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직 까지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었다. 옆에 있던 부사장님은 멋쩍은 듯 나에게 면접을 좀 더 진행하겠다며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여자분을 가리켜 이 회사의 사장님이시자 자신의 아내라고 말했다. 그렇다. 둘은 부부이면서 사장, 부사장으로 함께 경영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면접 초반에 자기네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라고 그렇게나 강조를 하더니만 진짜 ‘가족 회사’였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사장님 등장 이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면접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사장님은 역시 사장님. 날카로움이 달랐다. 어찌나 매서운지 대답할 때 사장님의 눈을 마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야속할 만큼 나의 약점들만 집요하게 찾아내더니 질문을 해댔다.


  부사장님과의 면접을 한바탕 마치고 나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사장님과 면접이 다시 시작되자, 나의 페이스는 점점 꼬여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날카로운 질문들만 받으니 버벅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사장님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과 다시 시작된 면접이 벌써 두 시간째. 역대 최장시간 면접이다. 집단면접도 아니고 한 명을 두고 무슨 면접을 이리도 오래 보는지.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고 말하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라도 날 뽑아주겠지 싶었다. 정신없는 질문공세가 끝나고 면접 마지막 질문이라면서 사장님은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나를 웃겨보세요.

-네….??



  웃겨보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지금 환청을 듣는 건가?? 내가 쾌활하지 않은 것 같다며 웃겨보란다.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원한단다. 개그맨 시험도 아니고, 자기를 웃겨보라니. 황당하고 예상치 못한 마지막 질문에 내 멘탈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 사장님은 ’영혼 탈곡기’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 넘은 거지. ‘이거 완전 갑질이잖아!!!’라고 목소리 높여 ‘속’으로 외치면서 ’겉’으로는 이주일 성대모사를 하기 시작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콩나물을 무쳤다.


  콩나물을 무치는 것인지, 내가 미치는 것인지 헷갈릴 때쯤 사장님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나름 사장님의 연배를 고려해 이주일로 공략한 것이었는데 대성공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슈퍼스타 K TOP10'감이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으로 향한다.


  띠링띠링 핸드폰이 울린다. 오늘 면접 본 곳에서 준 연락이었다. 결과는 ’불합격’. 두 시간 동안 면접을 두 번이나 봤고 웃겨달래서 웃겨주려고 콩나물까지 무쳤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가족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늦은 저녁 한층 더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봄은 무슨… 신세를 한탄하며 집으로 들어선다. 오늘 저녁 반찬이 콩나물 무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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