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듣고 있던 목소리
간호사에게는 유독 손길이 많이 가는 환자가 있다. 중학생 백혈병 환자였던 준호가 그랬다.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전신의 혈관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주사 바늘을 꽂을 곳을 찾는 일은 늘 고통스러운 숨바꼭질 같았다. 겁 많은 사춘기 소년이었던 준호는 늘 나를 찾았다. "박 선생님이 놔주셔야 덜 아파요." 그 떨리는 한마디에 나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르며 가장 아프지 않은 길을 찾아 바늘을 밀어 넣곤 했다.
준호 곁에는 늘 엄마가 있었고, 그 곁엔 유치원생이던 어린 남동생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병동은 그 가족에게 차가운 치료실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치열하게 사랑을 나누던 거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뒤로한 채, 또다시 밀려드는 다른 환자들을 돌보며 분주한 일상 속으로 준호를 묻어두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어느 오후였다.
주사 카트를 밀며 병동 복도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 세웠다.
"박 선생님... 저, 준호 엄마예요."
고개를 돌리자 50대 중반의 여성이 서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준호를 간병하던 그 단단한 눈매는 그대로였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준호와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반가움보다 먼저 앞선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과 먹먹함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키가 18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늠름한 대학생 청년이 서 있었다.
"선생님, 이 아이 기억나세요? 그때 그 꼬마, 준호 동생이에요."
병동 복도를 뛰어다니던 그 작은 꼬마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외과 병동에 입원하셔서 병문안을 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보았다고 했다. "진짜 박 선생님이 계시네요. 정말 반가워요." 그녀는 환하게 웃었지만, 나는 차마 그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지만, 누구도 '준호'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것은 금기라기보다 일종의 예의였다. 준호라는 이름을 내뱉는 순간, 우리가 겨우 덮어둔 슬픔의 둑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훌쩍 커버린 동생의 어깨 위에도, 엄마의 깊어진 눈가에도, 그리고 나의 떨리는 손끝에도 준호는 여전히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늠름하게 자란 둘째를 보며 대견함과 동시에, '준호도 살아 있었다면 저렇게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준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대화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구나. 정말 고맙다."
내가 동생에게 건넨 말은 사실 하늘에 있는 준호에게 전하는 안부이기도 했다. 준호 엄마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다시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이토록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자라나며, 남겨진 이들은 서로의 얼굴에서 떠난 이의 흔적을 발견하며 위로를 얻는다. 오늘 오후의 만남은 나에게 다시금 알려주었다. 내가 놓았던 그 수많은 주사 바늘과 지새웠던 밤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비록 준호는 곁에 없지만, 준호가 남긴 사랑은 동생의 큰 키만큼이나 단단하게 자라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늘에 있는 준호도, 지금 이 땅의 준호들도 모두 평안하기를. 나는 다시 주사 카트를 밀며 환자들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