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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Nov 27. 2024

깔딱수84화

별에서 온 아이

저에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습니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윤이가 오늘도 센터에 과자를 가져왔다. 초콜릿쿠키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와서는 선생님 2명이랑 같이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봉지 개수를 보아하니 오늘은 넉넉한 보다. 남은 과자를 사무실에 나온 다른 선생님도 나눠주러 사무실까지 들어온다. 윤이는 우리 센터에서 리틀 산타로 통한다. 아이들은 윤이가 주는 과자를 잘도 받아먹는다. 물론 선생님이 챙겨주는 간식도 잘 먹는다. 그래도 윤이가 가져오는 간식은 애들 입맛에 맞는지 더 좋아할 때가 있다.


"범아, 이건 뭐야?"

센터 장난꾸러기 범이가 봉지를 흔들며 들어온다. 편의점 봉지에 딸기우유가 3개 들어있다.

"선생님이랑 애들 주려고 사 왔어요."

센터 오기 전 킥복싱을 다녀오는데 그 건물 1층에 편의점이 있다. 그 편의점에서 뭔가를 사고 싶은 범이다. 그러다 용돈이 생겼는지 애들 준다고 우유를 사서 온 것이다. 문제는 애들은 많은데 개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범이가 가진 용돈으로는 3개밖에는 살 수가 없었나 보다. 범이도 윤이 형아처럼 선생님도 챙기고 싶고, 친구도 챙기고 싶고, 자기도 먹고 싶었나 보다.


공부하기 전에 나눠주고 싶은데 공부가 끝나면 먹자고 한 선생님이 밉다. 자기가 가져온 우유를 어서 먹이고픈 마음에 심통을 부린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사정없이 쾅쾅 치면서 글씨를 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다른 아이들 수업에 방해되니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그래도 범이는 멈추지 않고 책상을 두드린다. 조용히 타이르던 나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범이 너 나와!"

범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긴장했다. 친구랑 장난쳤던 다른 아이가 놀라서 바른 자세로 공부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버럭 화살이 자기에게도 올까 봐 순간 의젓한 척을 한다. 문제는 범이의 심통이 끝이 안 나고 토라지기까지 한 것이다. 삐쳐서 선생님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웅크리고 있다.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소용없다.

 

이럴 땐 엄마 찬스다. 범이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면서 무서워한다. 놀이치료 선생님도 범이가 말을 안 들으면 엄마 찬스를 쓴다고 한다. 전화기를 들기만 하면 범이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제자리에 앉는다. 엄마가 자기의 난장을 보는 것, 아는 것이 싫은 아이다. 엄마한테 한창 칭찬받고 싶은 나이인 어린애인 것이다. 그런데 '제제'처럼 돌아서면 까먹고 장난을 쳐서 어른들이 여간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다.


"딸기우유 먹을 사람?"

겨우 진정하고 수업을 마치고 나와서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소리친다. 그것도 한 명을 구한단다. 센터 선생님을 가장 먼저 드리고 나왔단다. 이럴 때 보면 이쁜 녀석이다. 남은 두 개 중에서 자기 것 하나 빼면 하나 남았다. 아인이는 우유를 못 먹는다. 아인이 제외. 현이 누나랑 윤이 형아는 자기들은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럼 남은 건 빈이. 딸기우유의 주인은 빈이에게 돌아갔다. 빈이가 고맙다며 바로 뜯어서 마신다.


수업 마치고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데려다준다. 집이 먼 아이들이라 특별 서비스다. 아이들은 차에서 수다를 맛나게 떤다. 때론 머리가 흔들릴 때가 있다. 조용히 가자고 해도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때가 많다. 공부도 끝났겠다 친구들이랑 게임도 공유하면서 집에 가는 길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바뀌는 노을 색이 이쁘다는 빈이 말에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날이 어두워지니 가로등 켜지는 길을 따라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쓸쓸하다는 시인 같은 말을 한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다 어록이다.

 

맨 마지막에 윤이가 남았다.

"선생님, 저요 딸기우유 좋아해요."

"그럼 마시고 싶다고 하지 그랬어."

"그럼 다른 사람이 못 먹는 거잖아요. 마시고 싶었는데 동생들 마시라고 저는 우유 싫다고 한 거예요."

"윤아 다음엔 그러지 마. 어린애답게 나도 마시겠다고 해도 돼."

"엄마가 이런 상황에서는 양보하는 게 맞는 거래요."

순간 하도 따스해서 부끄러웠다. 악다구니 쓰는 어른이라 부끄러웠고, 너도 마시겠다고 의견을 똑똑히 말하라고 하는 얌체 같은 어른이라 더 부끄러웠다. 윤이는 아이들 머릿수를 세어서 넉넉하게 챙겨 오는 아량을 가졌는데 나는 딸기우유를 마시려면 3명 안에 들기 위해 손을 번쩍 들라고 했으니. 얼굴이 화끈거리게 민망했다. 미숙한 어른을 아이는 다독였다. 나 혼자 부끄러워 이쁜 말을 해준 윤이에게 고맙다고 했다. 윤이는 어른이 고맙다고 한 이유를 모르는 눈치다.


마음 착하고 행동은 더더욱 이쁜 윤이가 사랑스럽다.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오늘도 난 아이들에게 또 한수를 배웠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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