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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Jul 13. 2021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2

세브린느 포스터


1971년 프랑스 영화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 루이스 부뉴엘 감독

원제 'belle de jour'는 '아름다운 오후'라는 뜻으로 영화 속 주인공 세브린느가 몸을 팔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메꽃(낮에만 피고 해가 지면 지기 때문에)이라는 뜻도 있고, 낮에만 일하는 창녀라는 뜻도 있다.



- 패션과 스타일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세브린느가 입고 나오는 옷, 머리 스타일, 장신구 등 구경할 것이 많다. 차가운 얼굴을 가진 까뜨린느 드뇌브와 그가 입은 세련된 착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클래식 영화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 하고 싶다. 나는 고전 영화 특유의 필름 질감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 당시 시대를 반영한 옷 스타일과 실내 인테리어, 지금과는 다른 거리의 풍경, 소품 장식 등등을 구경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데 '세브린느' 역시 충분히 그러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 독특한 주제

 이 영화는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내용 스포)

 남편과 마차를 타고 가던 세브린느는 창녀라 불리며 마부들에게 숲 속으로 끌려가 채찍으로 맞는 상상을 한다. 세브린느는 아주 지적이고 우아한 여성이지만 남편 피엘과의 결혼 생활이 즐겁지 않다. 이 후 세브린느는 남편 몰래 몸을 팔기 시작하고 지루한 일상생활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러다 만난 남자 건달 한 명이 세브린느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세브린느는 이를 거절하지만 건달은 나중에 집까지 찾아온 뒤 세브린느의 남편을 총으로 쏜다. 남편은 불구가 되고 세브린느는 진실이 밝혀졌을까봐 조바심을 낸다. 갑자기 휠체어에 앉아있던 남편이 일어나고 창밖에서는 마차의 방울 소리가 들리며 영화가 끝난다. 


 그러니까 알고보니 사실 영화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전부 세브린느의 상상이었던 것이다. 내 생각에 '세브린느'와 같은 영화가 나온 배경에는 아마 프랑스의 당시 사회 배경과도 관련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68혁명이 끝나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면서 여성의 인권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세브린느'도 억압되어 있는 여성의 욕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축을 같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성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쉬쉬되는 분위기가 크고, 지금도 여전히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영화를 보아도 뻔하다는 생각보다는 꽤나 파격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뜻밖의 발견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배우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세브린느의 남편 역을 맡은 '장 소렐Jean Sorel'이라는 배우다. 보통 프랑스 영화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가 거의 잘 안 나오기 때문에 평소 프랑스 영화를 볼 때 남자 배우 얼굴에는 기대를 아예 안하고 보는 편이다. 근데 의외로 기대를 안 하다가 이렇게 미남 배우를 만나니 놀랍고 반가(?)웠다. 알랭 들롱 말고 프랑스에 잘생긴 배우가 있나 했었는데 미남 배우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세브린느'에서 남편 피엘 역을 맡았다.
젊은 장 소렐



- 내용의 근본적 문제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다루는 것은 좋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는 잘 없기 때문에 언제나 환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어딘가 마음이 찝찝한 구석이 있다. 

 왜 세브린느는 '창녀'가 되고 싶어 하는가? 영화 속 세브린느는 순종적인 위치에서 성적인 모욕을 당하며 오직 남성의 판타지 속 여성이 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왜 하필 감독은 세브린느의 성적 욕망이 사회의 가장 바닥 계급인 성매수자 여성으로 발현되도록 했을까? 주체적 창녀, 그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숨겨진 욕망이란 말인가? 시대 상으로 보면 파격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여전히 남성 감독 혹은 가부장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혹은 이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규율이 엄격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억압을 분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강간 판타지를 꿈꾸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세브린느 역시 부유한 상류층의 여성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지위를 가진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현숙함, 지적임, 고상함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억압들은 세브린느에게도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브린느의 판타지가 뒤틀리고 저급한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가끔 미디어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여성이 성적인 욕망 외에도 다른 다양한 욕망(권력, 성취, 경제적 독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다. 나는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겠다. 영화 자체가 성적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긴 하지만 세브린느가 가지고 있는 고뇌나 왜 그렇게 행동을 하게 되는건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한다. 영화의 결말을 보고 관객은 무엇을 느껴야 하는걸까? 

 결말에서 세브린느는 마차에 앉아 있을 뿐, 자신이 꿈꾸는 일(그것이 비록 창녀가 되는 일이더라도)을 행하지도 못한다. 솔직히 차라리 완전히 타락한 세브린느를 그렸더라면 더 납득 가능한 결말이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욕망에 따라 굴복하는 세브린느에게 파멸이 닥치는 것을 보면서 같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응당한 대가를 받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장면을 통해 모든 것이 세브린느의 상상이라는 거이 밝혀지면서 관객은 꿈에서 깨어나듯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고, 그 때까지 자신이 세브린느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허무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허무는 물론 황당함도 느끼며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과 메세지를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론 '세브린느'라는 영화 자체가 미장센은 훌륭하더라도 크게 평가받지 못할 뿐더러 명작이 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총 평점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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