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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리 Nov 23. 2024

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1) - 세이노

세이노 선생님과 일방적인 만담, 스토킹은 안함. 재미로 글씀.




p. 47


왜 큰 부자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가난하였던 과거를 갖고 있을까? 어째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사람들보다는 하류층에서 태어나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일까?



(* 그 만큼 힘들었던 계기와 동기와 그 경험과 눈물, 모멸감, 돈이 없을 때 사람이 어디까지 밑바닥일 수 있는지를 경험해봤기에 얼마나 낮은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진다. 9등급이 1등급 되는 것과 2등급이 1등급 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수능 등급과 비교할 건 아니였지만, 세상은 수능 등급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돈으로 돌아가는 게 더 많기에 아마 9등급이 1등급 되는 비율보다 가난하였던 과거를 가진 자가 부자가 된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님 말구요. 뿡.)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 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 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되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날리는 실패를 당하게 되어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가' 재출발을 할 줄 안다. 



(* 정확하다. 나도 그렇다. 여유있지 않은 생활을 해봤기에 좋은 아파트에 살아봤어도, 다시 원룸생활을 한 다해도, 그 좁은 곳에서도 나는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에 낮았던 사람이 많이 가지게 되어서 고꾸라지는 것과 많은 걸 가졌던 삶만 살았던 사람이 고꾸라질 땐 그 타격감이 다르다. 회복탄력성이 다르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고꾸라지고 실패해서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과, 나이들고 처음 실패해본 사람이 겪는 타격은 다르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성공경험보다는 실패경험을 많이 겪고 그 실패에 머무르는게 아니라 다시 성공으로 바꿔버리는 작업을 많이 해둬야 나이들어서 풍파를 겪어도 고꾸라지지 않는다. 비슷한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예 : 나는 내 인생에 첫 일탈을 꼽자면 대학교 자퇴였다. 내 인생에 자퇴는 생각지 않았지만 첫 자퇴전 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뚜렷한 플랜 비는 없지만 생각없이 자퇴한 건 아니었다. 자퇴하기 전 여름방학 내내 나는 머리를 굴려도 답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지만 선택지는 자퇴 하나라고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를 자퇴하고는 관련된 책을 싹다 버렸다. 몇 권 냅두긴 했지만 그건 지도 부교수님 수업 책만 버리지 않았었다. 그 부교수님이 진정한 교수님이었기에 그 외 과목은 싹다 갖다 버렸고, 나중에 살만해지니까 그 과탑했던 친구에게 다시 연락했을 때 "소연아 자퇴 그거 쉬운거 아니야. 다들 전과하고, 그냥 저냥 다니는 데 군대갔다가 복학 안 한 남자애들 몇 빼고는 다들 그랬던 것 같기도 해." 그랬다. 나는 연애도 그랬다. 헤어지자고 말하기 까지 수도 없이 고민을 하고 기회를 주고 나도 맞췄다. 20대 땐 모든 선택이 처음이었기에 선택을 내리기 전에는 나도 마음고생을 무진장한다. 하지만 누군가 인생의 선택 중에서 잘한 거 몇 가지 꼽으라면 첫 대학교를 자퇴했던 일이다.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나은 길로 갔다. 내 지도교수는 "니가 자퇴해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계단 비상구에서 자퇴서 사인받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학교 홈페이지가서 검색하면 나올 법도 한데 굳이 그 면상떼기를 보기는 싫다. 부교수님은 여전히 카톡에 계시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된 사람, 되지 않았던 사람, 어깃장을 둔 사람 리스트를 다 분류해둔다. FP 지만, 감사한 사람 따로 그렇지 않았던 사람 정리 정돈은 마음으로 해둔다. 물론 두 번째 대학을 가기 까지 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또 어찌 저찌 한다. 인생은 참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계획을 해도 어그러지는게 태반이고, 계획을 하지 않았는데 잘 풀리는 일들도 태반이다.)



(* 그래서 자퇴의 경험이 퇴사의 경험으로 가나? 첫 퇴사 고민 때 마음고생을 꽤나 했지만 또 그 퇴사의 경험이 더 나은 경험으로 채워줄지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다. 그래서 또 배팅을 했나보다. 수습은 내가 해야하는거지만 내리사랑을 받은 나는 아마 주변 사람들이 같이 수습을 했나보다. 굳이 나로 인한 수습들을 얘기하지 않지만 들려오는 얘기로는 팀장님들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팀장님들만 힘들었던 건 아니다. 나도 힘들었다. 당신 때문에 힘들었어요. 서로 말하지 않는게 예의긴 한데 다 똑같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대나무숲을 찾듯이 <무한도전-대나무숲 편> 이 있다. 보면 재밌다. 보셔라. 아마 5년, 10년 근무자들은 이런 이벤트를 해도 재밌을 것 같다. 어찌 사람들끼리 모여다니는 직장에 불만없는 놈이 싸이코다. 불만 없이 일하는 놈이 싸이코다. 솔직하게 얘기하고 말하는게 나중에 뒷탈이 없다. 앞에서 말하는게 좋지 뒤에서 말하는게 해결책이 전혀 되지 않는다. 



아, 물론 앞에서 말할 때 언어, 비언어적 표현 중요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필터링 없이 말하다간 목 날라간다. 남녀 연인 사이, 부부 사이에도 각자의 갈등은 서로 풀어야하는데 마마보이 마마걸들 마냥 쪼르르 지 친부모에게 일러바치고,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그런다고 갈등 상대자가 너의 마음을 알까? 어차피 바뀌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인데 그 상대방 앞전에 얘기할 용기는 없고 뒤에서 떠들어대는 착한 척이 아니라 용기가 없는 치졸한 회피유형이다. 손절 쳤으면 그냥 거기까지 인 것이다. 



또 누구는 그런다. 부부는 칼로 물베기? 근데 진짜 칼로 찔러서 살인까지 가는게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만이 아니겠지. 내가 사회적 기업에 한 달가량 근무했을 때 같이 근무한 주임은 나랑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내가 퇴사하는 날 같이 대리님, 대리님 남편, 주임님과 과메기를 먹었다. 과메기 맞나? 홍어였나? 내가 이렇게 맞나? 할 때는 굳이 내 인생에 중요치 않아서 머릿속에 저장을 안하는 것이다. 아무튼 네 명이서 쌍용동인가 그 쪽동네에서 맛있게 먹었는데 약간 취기가 있었고, 같은 아파트 사는 주임님과 대리 불러서 내렸다. 술도 깰겸 어쩌다 아파트단지를 같이 걸었다. 



이온음료를 사주셨고, 같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부부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봤자 자정이 넘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나는 부부싸움 하는 소리, 사람이 투신하는 상황, 아파트 난간에 매달리는 상황, 베란다에서 목맴시도 실패한 사람, 번개탄은 아직 못봤고, 머그컵으로 자해해서 뼈가 다 드러나는 상황, 알코올의존으로 갑자기 배를 할복하기 위해 주방가서 칼을 빼들고 찌르려는 상황. 길거리에 배회하다가 차에 치이려고 뛰어드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게 실패되서 병원에 앉아 나와 상담했던 모든 내담자들을 겪어온 나로서는 부부싸움소리? 그냥 경쾌한 소리정도다. 그러니까. 별로 무섭지도, 호들갑도 안 떤다는 소리고. 그냥 또 아 상황 복잡해지겠네. 



경찰 오려나? 어디 관할오려나. 아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싸가지 없는 견찰은 같이 일하기 복잡한데. 뭐 이런 짱구를 굴린다. 아무튼 나는 대수롭지 않고 술이나 깰려고 이온음료를 마시니까. 그 남자 주임님은 "저렇게 무섭게 싸우고 그러는데 괜찮냐고" 그랬나? 우리 부모님 부부싸움도 맨발에 유리 박히면서 사방팔방 옆집에 도와달라고 문 두드렸던 유년시절이 있었던 나였던 터라 "저건 일도 아닌데요?" 그랬나? 아무튼 그랬다. 



 주임님 저 치과가기 전에 횡단보도에서 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치과에 늦어가지고 뛰어가느라 인사를 못했고, 에어팟을 서로 꽂고 있어서 인사하기도 뭐하고 그랬습니다. 보시면 반갑게 인사해도 괜찮습니다. 순례길은 잘 다녀오셨는지 후기 궁금합니다. 저 마흔살 되서 산티아고 가야되거든요. 장비 좀 빌려주신다면 감사할 듯 싶네요. 주임님 술취해서 놀이터 방방 탔던 기억 여전히 있습니다. 잊어달라고 하셨지만 안 잊혀짐 ^_ㅠ)




(* 결론은 고꾸라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정신과 메뉴얼이 계속 탑재된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은 어디든 있구나를 알게된다는 것이다. 또 쥐들은 자기가 도망갈 구멍은 만들어놓고 도망간다고 그랬나? 그래서 퇴사 전에 꼭 상사들이 너 다른 이직할 곳은 구해놓고 퇴사하는 거냐고 늘 단골 질문들 처럼 물어보셨는데 나는 쥐새끼가 아니라서 그런 구멍은 만들어 놓지 않았었다. 닭대가리라 그냥 아침에 꼬기오 울기나 할 줄 알지 부지런만 하지 그런 약아빠진 생각은 왜 못할까? 그치만 꽤나 충동적일땐 충동적인 나라는 사람은 이직 할 곳 구해두면 남은 기간 일을 아예 손 땔까봐. 그냥 안 구했다. 실은 귀찮아서 이직할 곳은 퇴사하고 구하는 편이다. 내가 처음으로 환승이직할 때는 천안에서 화성으로 넘어갈 때였는데 그땐 새로운 직장이 날 안 받아준다해도 기존 직장은 때려칠 생각이었다. 두 번째 천안에서 시흥 갈 때는 압박이 좀 있었다. 안 구해지면 다른 사람이 뽑힐 수 있다는 그런 간잽이에 넘어갔다. 나도 절박하기도 했다. 이 나이 먹고 직장 이나 공백이 길면 면접할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싶어서다. 근데 이제 나이먹고 내숭 떨면서 그럴싸한 말 주변으로 포장하는 짓은 못할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편해져버린 나는 대체 어디까지 고쳐야 할까? 그냥 내 블로그고 인스타고, 브런치고 보라고 나는 이런 사람인데, 어떤 일을 맡기고, 어떤 스타일로 일을 했으면 좋겠는지. 

면접은 면접자만 면접 당하는게 아니다. 면접관들도 면접자들에게 회사 이미지를 평가 받게 된다. 뽑혔다고 해서 거기에 다 출근하는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들은 일이 잘못되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날리는 실패를 당하게 되어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가' 재출발을 할 줄 안다. 



(* <신의 한 수> 영화에서 패착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람이 인생에서 패착을 한 번도 안 두는 사람이 있을까? 패착을 둔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패착을 어떻게 다시 재활용하고 패착의 수를 줄여나갈 것인지, 그리고 패착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패착이 아니라 잭팟이었던 수들도 있다는 것이다. 패착을 잭팟으로 만들 수도 있고, 뭐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건 개인의 능력이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하루 시간 24시간은 매일같이 받기 싫어도 입금된다는 사실이다.  <인타임> 영화를 아는가? 시간이 곧 생명이었던 영화로 기억한다. 이 영화도 어디 회사를 다니는지 모르는 남자친구 집에서 본 영화다. 나는 한창 회사 일 스트레스로 영화만 틀면 잠들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나는 무슨 잠만 자러 다니는 나그네 같았다. 일어나서는 노트북을 키고 일 해야한다고 그 남자친구 집에서 PPT를 키고, 미리캔버스로 만들었다. 그래도 머리 회전이 안되서 썩은 표정이니까.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자기소개서 백날 수정하는것과 뭐가 다를까 싶다. 



그래도 내가 장염에 걸렸을 때 죽인가? 뭔가? 따뜻한걸 달그락 준비하길래. 전혀 그런걸 준비 할 성격은 아닌 것 처럼 보였는데 "내가 아프다니까 이거 준비해온거야?"라고 하니까 멋적은듯 웃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츤데레 같은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나는 그사람에게 보쌈차림을 해줬다. 태어나서 내가 보쌈 만들어 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다. 나 요리 아무한테나 안 해주는데 보쌈 맛이 꽤나 맛있었나? 자기 집에서 이렇게 한 상차림 먹는거 처음이라고 그랬다. 



나한텐 술 잘 안 마신다고 해놓고, 집에 놀러가니 술병이 있었다. 내 직업이 뭔지 알았더라면 아무리 거짓말을 쳐도 다 스캔이 되는데 그냥 모른척 해준다. 경증인지 중증인지 위기인지 분류하는 정프로는 모른척 고수가 되어버린다. 바보인 척 해줘야 상대가 무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에서나 근무시간에만 정프로 처럼 굴지, 퇴근 이후에는 정소연이라서 일 생각하기 싫으면 그 스위치를 끄는데 직업병이 퇴근후에도 발현되면 꽤나 골치아프다. 온 세상, 길거리 천지에 개입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아니였던 내 성격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내담자들 위기대상자들 좀만 기다려라. 나사 좀 조이고, 같이 조여주려 현장에 복귀하겠지요? 근데 또 어디로 튈지 몰라서 복귀 안 할 수도 있다. 말리지 마라. 내 인생이다.)     



수 없이 많은 부자들이 사업이나 투자에서 실패하거나 홍수나 화재 등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가도 재기에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제로 점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로 점으로 가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여야 하는 미지의 불안한 공포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실패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 보통 가진 자와, 덜 가진자가 실패해서 날라가는 비용을 따지면 더 가진 자들이 타격이 크다. 액수 부터가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의 여부는 DNA 기질이 아니라 실패, 저점에서 얼마나 올라간 경험이 있는가의 차이다. 아까 예로 든 수능 9등급이 1등급을 찍었다면 다시 9등급이 되도 1등급을 찍어본 경험이 있어서 "아, 좀 내가 놀았구나 다시 공부하지 뭐", 근데 2등급만 하던 사람이 9등급이 되어버리면 무슨 인생 나락점 같 것 처럼 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9등급이 1등급 되는 것과, 2등급이 9등급되서 낙심하는 그 세월에 1등급을 다시 할 수 있음에도 자포자기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모든 등급들아. 너넨 이미 최상급이다. 그냥 게으르고 나태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렇다. 세상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결국엔 늘 1등급은 어디에도 있다. 그게 너가 아니란 보장은 그 아무데도 없다. 그러니 졸라 즐겨라.)



(* 두려워말고, 놀고, 고꾸라지고 다시 일어나고 뭐 그렇게 살으라는 의미다.)


(* 자살하지 말라는의미다. 자살하기엔 너가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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