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를 맺는다.
가장 처음 부모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피할 수 없이 주어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내가 선택해 맺는 관계도 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고부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
한 번의 실수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친구 사이는 멀어지면 그만이지만, 고부 관계는 다르다.
내가 선택한 인연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얽힌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깝지만 어색하고, 가족이지만 낯선 그 묘한 거리감 속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결혼 전, 시어머니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정답은 없다’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정말 그랬다. 예측 불가한 순간들 속에서
나는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 작은 선택들이 지금의 관계를 만들었다.
시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땐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갔다.
지쳐서 친정엄마께 하소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아픈 시아버지 잘 모셔야지.”
당신도 나를 보고 싶으셨을 텐데 말이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매주 시댁에 갔다.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정엄마의 건강이 나빠졌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한 달에 한 번 친정에 가기로 했지만,
시어머니는 도리어 “그럼 2주에 한 번씩 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도리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르며 상황이 달라졌다.
입시를 앞둔 아이들, 일로 가득한 주말,
그 안에서 겨우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는데
시어머니의 부름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얼마전 벌초로 2주 연속 시댁에 간 뒤
셋째 주엔 쉬고 싶어 방문을 미뤘다.
“밥 해놓고 기다리는데 왜 안 오냐”는 전화가 왔다.
결국 반찬이라도 가지러 오라는 말씀에 알겠다고 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통화로 사정을 전해도 “월요일이라도 오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날 이후, 언제 가야 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명절이 지나고 돌아온 일요일 아침, 남편에게 물었다.
“오늘 시댁 갈 거야?”
남편은 “모르겠다”는 말로 피했다.
잠시 후 어머님의 전화가 울렸다.
“오고 있지?”
아직 출발도 못 한 나는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나 빼고 아이들만 데리고 다녀와.”
남편이 떠난 뒤, 마음속에 질문이 가득 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의 잘못일까.
답답한 마음에 예전에 AI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고부 관계는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맞는 말 같지만, AI는 우리 남편을 모른다.
이런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싸운다.
나는 쏟아내듯 속을 털어놓고,
남편은 조용히 듣기만 한다.
그의 마음이 편치 않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그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관계가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 기대되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사이로 남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말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이 중간에서 조율하는 것이겠지만…
오늘도 그 고민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가장 현명한 답을 찾기 위한
이 모험은,
아마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