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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Nov 17. 2022

수능 보는 날 나에게 온 수호천사

삼수생에게 생긴 은사님!

 그날은 내가 세 번째로 수능을 보는 날이었다.


 두살 터울인 내 동생과 같이 수능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중압감으로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억지로 청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멍한 정신으로 무거운 머리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 시절은 해마다 수능 한파가 빠짐 없이 찾아 오던 때였다. 든든히 옷을 겹쳐 입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준 후 내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나는 삼촌과 함께 각각의 수능장을 향해 출발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뒷자석에 앉아 수능장을 향했는데 차가 막혔다. 수능시험장이 집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차 안에서 보니 저 멀리 언덕까지 차가 꽉 막혀있었다. '앗 혹시...설마...'하다가 순간 이대로 차가 막혀 시험장에 못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수능에서도 목표했던 점수를 얻지 못하면 주변에 도저히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늦어서 시험장에 못 들어갔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허무하지만 쉬운 핑계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동동 거리는 삼촌과는 달리 나태하고 도피적인 생각을 하는 나는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차들이 미끄러지며 내가 탄 차도 속도가 올라갔다. '아 시험은 보게 되겠구나...' 내려가던 마음을 다시 붙잡으며 의기를 다졌다. 충분하고도 적당한 시간에 도착을 했고 세 번째 방문하는 학교로 들어갔다. 세 번째 들어와도 낯설고 긴장되는 수능 시험장의 분위기와 공기...


 떨리는 손으로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을 보던 중 10분 남았다는 감독관의 안내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안지 마킹을 잘 못했단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흥분이 되었다. 10분 내에서는 답안지 교환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급한 마음에 뒤쳐나가 감독관에게 빼앗다시피하여 새로운 답안지를 가져왔다. 시간되면 다 못써도 걷어 가겠다는 감독관의 말을 뒤로 하고 떨리는 손을 부여 잡으며 부랴부랴 다시 수험번호와 이름부터 마킹을 시작했다. 뭐 이렇게 마킹할 게 많은지 신상 정보만 넘어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60번까지 있던 문제 중에 이제 갓 20번 정도를 넘어가고 있는 중에 종이 울렸다. 가슴은 목구멍까지 방망이질을 하며 울렁거렸다. 'X됐다. X됐다.'는 내 목소리가 머리속에 들렸다. 뒷자리에서 부터 답안지는 걷혀져 가고 있었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다행이도 하늘이 도우사 그 때 감독관으로 들어오셨던 한 젊은 감독관께서 다른 학생들것 부터 걷으며 시간을 벌어 주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못마친 나를 위해 옆에 오셔서 다 마치면 걷어 갈테니 천천히 하라고까지 해주셨다. 아~~ 정말 그날 나에게 오신 수호천사님이 아닐 수 없었다. 하얀 옷을 입고 계셨던 건가 아니면 후광이 났던 걸까 아무튼 환한 빛이 났던 것 같다.


 그 천사님 덕에 난 무사히 답안지 작성을 마쳤고 그 답안지를 내고 나니 등 뒤로 진땀이 흐르고 맥이 탁 풀리며 그와 함께 긴장감도 날아갔다. 그분이 나의 운을 틔여 주고 간 건지 그 후 남은 과목들도 무사히 시험을 마쳤고 운 좋게도 목표한 성적을 얻어 대학에 진학했다.


 그 분을 찾아 정말 보답이라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만 하고 직접 찾아 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내 인생에 가장 1등 은사님이 아닐 수 없다. 내 인생을 바꿔주신 분이라 확신한다. 지금도 뉴스에서 수능날과 관련된 얘기를 들으면 내가 세 번째 수능을 본 그 날 그 아침의 긴장감과 1교시때 경험 한 흥분감의 진동이 가슴에 느껴진다. 수능은 그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정말이지 인생의 큰 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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