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마지막 가족사진 속에는 아직 젊은 부모님과 어린 우리가 있다. 먼 옛날이 되어버렸지만 부모님이 카메라로 우리의 일상을 남기던 때도 있었다. 더이상 함께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등지를 나들이가는 일이 없어지고 낡은 카메라의 쓰임이 없어진 뒤로, 사진첩에 새로운 사진들이 입혀지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그걸 꺼내보며 기억을 떠올리는 게 내 작은 즐거움이었다. 카메라로 사진찍힌 어린 시절은 짧았지만 그럼에도 한번 기록되었던 순간들은 그렇지 않은 순간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르곤 했다. 씁쓸한 기분이 올라오곤 했지만 퍽 소중한 순간이었다. 특히 어린 나와 동생이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몇몇 사진들은 따로 빼내어 내방 서랍에 보관해두곤 했다. 한없이 마음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종종 그 사진들을 함께 꺼내봤다.
떠올려보면 내가 어릴 때부터 어린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언니였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동생이 태어나자 나는 갑작스럽게 의젓한 언니가 되야만 했고, 특히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런 언니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동생에게 내 물건을 양보하지 않아서, 동생과 잘 놀아주지 못하고 울려서 등등, 나로서는 억울한 일 투성이였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놀아달라고 다가오는 동생이 귀찮고 때로 원망의 대상도 되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투닥거리고 나서도 어김없이 다시 나를 향해 기어와서 옆자리를 차지하는 해맑은 동생이, 어쩌면 유일하게 나를 기다려주고 찾아주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나날이 내마음 속에 스며든 것인지 모르겠다. 언제나 사랑과 인정에 고파하는 우리였기에 부족한 사랑을 담뿍 나눌 수 있는 것도 서로였다.
나는 동생을 많이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한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농담도 있듯이 귀여움에는 어떤 힘이 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던 사람들도 짤뚱한 강아지가 종종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살며시 웃게 된다. 동생은 이제 훌쩍 커서 나보다도 키가 큰 어른이 된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내 미간을 펴주는 귀여운 존재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동생이 내가 머리를 빗겨 묶어주던 앞니가 빠진 어린 아이로 형상화되어있는 듯하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동생과 내가 꾸밈없는 어린 아이였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다.
명절이 되면 간만에 사촌 언니, 오빠들이 놀러온 외갓집에 가기 위해 일찍부터 동생의 머리를 열심히 매만지곤 했다. 양갈래로 땋아 돌돌 말아올리고 똑딱핀으로 곳곳을 장식했다.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옷을 잔뜩 껴입히고 나면 동생은 부푼 공처럼 더욱 동그래졌다. 그런 동생을 끌어안으면 푹신거리는 촉감에 기분이 좋았다. 눈이 온 다음날 얼어붙은 길을 둘이서 아무리 조심스레 걸어도 옷의 무게탓인지 뒤뚱거리던 동생은 미끄러지고 엎어지기 일쑤였다. 칭얼대는 동생을 달래며 공중전화 부스가 보일 때마다 잠시 들어가 노닥거리곤 했다. 그렇게 느릿느릿 손을 잡고 걸어갔던 그때의 행복이 항상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