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성공한 부모는 자신의 사회적, 문화적, 학력적, 지식/언어적 자본을 대물림 하려는 본능이겠다. 반면에, 이를 소유하지 못한, 또는 이로 인해 벽을 느낀 부모는 자녀를 일찍부터 벽 너머의 그들과 삶의 패턴을 동기화시키려는 희망이겠지.
위에서 언급한 자본을 성공적으로 '수혈'받은 아이들은 그 혜택을 빠르면 20대, 본격적으로는 30대에 사회활동이 왕성할 때부터 누리기 시작한다. '수혈'받았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저 환경을 못 견뎌내는 사람도 있거든.
더 길게 설명할 것 없이, 링크드인을 검색해 보자. 네트워크가 매우 큰 자산이 되는 호주 법조계에서는 출신 사립학교를 링크드인에 명시하는 사람이 꽤 많다. 심지어 출신 대학은 적지 않고 사립학교만 적는 사람도 봤다.
학교는 부모에게도 중요한 네트워킹 장소다. 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배정된 반의 타 학부모들과 십여 년 동안 긴밀하게 교류하게 된다. 함께 파티도 하고, 경진대회 참여하고, 서로 초대하면서 친분을 쌓는다.
이 네트워크를 기점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회와 혜택이 이후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대학 졸업 후 인턴십 품앗이, 이후 소셜 네트워킹, 직장 내/외 스폰서십(한국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스폰서십이 아닌, 밀고 끌어주는 관계) 등 결코 일반 사회에서 노출되지 않는 거미줄.
사석에서, 술자리가 깊어지면 꼭 등장하는 당시 시절의 각종 경험담들. 이 대화에서 지분을 가지려면 경험해야만 아는 은어들이 있다. 나는 한국 공립 출신이라 이럴 때 소외감 느끼지만, 뭐 어쩔 수 있나.
현 대학 교육시스템을 대차게 까대는 주커버그는 필립 엑시터 졸업생. 샘 알트만도 존 버로우 스쿨 출신. 뭔가 양질의 교육을 위해 보냈다기보다 (이런 천재들을 가르칠 선생들이 지구에 얼마나 되겠나) 온갖 사회적 자본을 꾹꾹 담아주기 위해 보내지 않았을까.
들어간다 하여 무조건 혜택만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아이가 저런 환경 특유의 인간군상이 득실거리는 사자굴에서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야 하는 스트레스와 어려움도 크다.
부모들이 모를까?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보낸다'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며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쟁취하라는 부모의 욕망도 섞여 있지 않을까.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모두 돈이 많은가? 그 명제 또한 참이 아니더라. 생각보다 호주에서도 없는 살림에 '빚투'를 감행하며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꽤 있다. 웃프지만, 주식 or 부동산 투자 같지 않나.
사람의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