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 보이는 그녀도 인생의 명암이 있더라
MBO와 주식 양도 계약 하나 마치고 한숨 돌리는 금요일 밤, 문득 10년 전 뉴욕 하숙집 임대주 아주머니가 깊이 떠올랐다. 쓰고 싶어 미루다가 오늘은 도무지 넘길 수 없어 그녀에 대한 기억을 주절주절 적어본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이란 이런 것일까? 한국에서 응당하다 생각했던 편안한 거주지와 안전한 환경이 뉴욕에서는 돈 좀 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더라.
2013년 당시 내 월세 예산은 $500였고, 그 한도로 셰어룸을 구하려면 뉴욕 5개 자치구 중 철창 없는 집이 드문 퀸즈나 브루클린 항구 근처 혹은 브롱스 쪽으로 나가야 했다. 당시 미드타운 아파트 셰어가 월 $2000였으니.
한 번은 브루클린에 딱 맞는 예산의 월세집을 보러 갔는데, 아파트 정문이 철문으로 되어 있더라. 문을 유심히 보니 구멍이 송송 뚫린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군대 사격판에서나 보던 익숙한 구멍들이었다 (...) 나중에 NYC 범죄 지도에서 확인하니 몇 주 전 그 아파트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던 것. 혼비백산하여 그나마 안전한 주거지를 찾던 중 발견한 곳이 퀸즈 서니사이드/우드사이드 근교에 위치한 이 하숙집이다.
2층의 하숙집은 첫째층과 반지하를 개조해 총 4명 정도의 하숙생을 받았는데, 층에 따라 가격과 대우가 조금씩 달랐다. 맨 아래 반지하는 월세가 $400이었고,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쌀밥을 무료로 주고 아주머니의 저녁요리가 남을 경우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뜻밖의 혜택이 있었다.
하숙집 주인 내외는 Lyn과 James라는 60대 초반의 필리핀 이민자 부부였다. Lyn 아주머니는 어린 시절 반군 아래서 온갖 고생을 다 겪다 뉴욕으로 건너와 살림을 일구었고, 이 부동산이 그녀의 아메리칸 드림의 증거라고 했다. 은퇴한 James 아저씨는 항공 엔지니어로 오래 근무해 전성기엔 돈을 그렇게 잘 벌었다며, 너도 열심히 살면 미국에선 다 알아준다고, 10분마다 그러시더라.
Lyn 아주머니는 매일같이 금목걸이와 금팔찌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거하게 음식을 차려 동네 친구들을 불러 하루를 수다로 보내는게 일상이었다. 처음엔 '필리핀 사람들은 화려하게 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게 편견임을 깊이 깨달았다.
타향살이에서 가장 서러운 순간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무리 북적이는 대도시에 있어도, 마치 황망한 바다에 떠 있는, 그런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이 찾아온다는 거다. 그러나 이 주인 내외 덕에 그런 순간이 몇 없었다 할까.
당시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난 최하계층인 반지하 하숙생이었지만, Lyn은 매번 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혼자 가계부를 정리하시다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다, 수고했다" 아주머니는 내 음식은 저녁에 내지 않고 따로 보관했다며 따뜻한 오븐에서 꺼내 저녁을 차려주었다.
알고 보니 Lyn 아주머니가 매일 친구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자신은 운이 좋아 뉴욕에 집을 사고 세를 주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직 일용직을 전전하며 끼니를 제때 해결 못 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니 자신은 복 받은 만큼 나누는 것이 응당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저녁 가계부를 깨알같이, 꼼꼼히 작성하면서도 주변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베푸는 삶이었다.
내가 화려함으로 오해했던 그녀의 넘치는 온정, 돌이켜보면 참 따스했다. 그 온기로 인해 타향살이로 마음 깊숙이 저미던 외로움이 많이 덜어졌던 것 같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Lyn 아주머니는 하숙생 모두를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뷔페에 데려갔다. 그날 정말 배불리 먹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운전을 자처한 James 아저씨가 식사자리엔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택시에서 Lyn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Lyn, James 아저씨는요?"
Lyn은 아무 말 않고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달빛이 창을 통해 어두운 뒷좌석을 비추는데, 창가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손이 잠깐 파르르 떨렸을까.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따듯한 멀드와인 한잔씩 마시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자르고 수다 삼매경으로 남은 저녁을 보냈다. 한 명, 두 명, 자리에서 일어났고, Lyn은 언제나처럼 홀로 가계부를 꺼내 들고 한 자 한 자 적어내기 시작했다. 식탁엔 우리 둘 뿐이었다.
"James가 예전에 오랫동안 바람을 피웠어. 사우디에 돈 벌러 갔을 때였나. 그때 사우디 국왕 전용기 엔지니어로 일해서 몇억씩 돈을 쉽게 벌던 때였지. 나도 뉴욕에서 사업이 잘 돼서 인생이 이렇게 풀리는구나, 참 세상 꼭대기에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녀의 밝은 웃음이 온데간데없고, 와인으로 홍조를 띠던 얼굴은 어느덧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그년 잡으러 사우디까지 갔어. 호텔방에 쳐들어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 정말 죽고 싶었는데, James가 무릎 꿇고 내게 사정하더라.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우리 아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안 죽고, 이혼도 안 하기로 했어. 그때부터 James는 내 크리스마스 디너에 못 와. 십수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용서 안 했어. James는 이 집에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감사해야 돼. 아마 평생 못 할거 같아."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주머니는 내게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아주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왠지 모르게 참 쓸쓸해 보였다.
두 분,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려나.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