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이 봄이 시작되었다.
▣봄이 되면 수많은 꽃들이 지천에 피어난다. 이른 봄,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유채꽃, 개나리, 라일락, 목련, 진달래 등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꽃들이 피고 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꽃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벚꽃이 아닐까 싶다. 전국에서 가장 흥행성 있는 꽃 축제도 벚꽃 축제일 것 같다. 대구수목원에도 벚나무가 꽤 많지만 너무 골고루 분산되어 있어 사진으로 즐기기엔 불만이 많았던지 벚꽃 사진은 아쉽게도 내 폴더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느렁느렁 길게 늘어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수양벚꽃 사진이 있다. 그리고 보통의 벚꽃이 엔딩 할 즈음에 화라락 피는 조금은 특별한 벚꽃이 있다.
수양벚꽃. 수양벚꽃은 벚나무의 한 종류이다. 가지가 아래로 처지며 독특한 모양으로 꽃이 핀다. 우리나라 벚꽃 명소의 수종이 대부분 왕벚나무여서 간혹 만나게 되는 수양벚꽃의 특별함이 더 크게 와닿고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 같다. 꽃말은 우아함 또는 애정이다. 늘어지며 꽃이 피는 모양이 우아해 보이는데서 붙여진 게 아닐까? 봄날 아침 옥탑방 작은 창문 샤랄라 분홍 레이스 커튼이면 어떨까.
산옥매.
만첩홍매. 만첩은 겹꽃을 의미한다. 꽃잎이 겹겹인 홍매.
목련꽃을 보면 늘 단아한 한복이 생각나곤 했다. 특히 붉은색의 진한 꽃빛을 가진 자주목련은 꽃이 피면 그대로 한복 치마가 되었다. 풍성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봄날 아침 잠시 피었다가 봄비에 툭 떨어져 사그라드는 목련은 한복저고리에 눈물을 훔치던 그 시절 여인의 삶 같았다. 너무 애절한 꽃시절이다. 대구수목원에는 목련나무가 꽤 많다. 나는 작은 목련숲이라고 부른다. 백목련이 활짝 필 즈음에 멀리서 보면 그 숲에 환하게 불이 켜진 듯하다.
만첩풀또기.
중국패모.
어느 날 갑자기 툭 나타났다.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동안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중국패모라는 이름도 생소한 이 꽃은 이름을 알기 위해 수많은 키워드를 입력하게 했고 연관 사진들을 수없이 클릭하게 만들었다. 백합과에 속하는 중국패모의 꽃말은 「너무 격렬한 사랑은 당신에게 조금 위험할지도 모릅니다」라고 한다. 꽃말계의 Top Of Top이다. 너무 격렬한 사랑이라니! 조금 위험하다니! 어떻게 사랑해야 격렬하다 할 수 있을까? 어쩌다가 그런 꽃말을 가지게 됐을까? 조금 궁금해져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런다고 이유를 알게 될리는 없겠지만.
해마다 겨울이면 동백앓이를 한다. 수국의 계절에는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섬, 연화도에 가서 며칠을 살고 싶듯 동백의 계절에는 제주에 가서 며칠 동안 하염없이 붉은 동백꽃만 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어서 3월의 아침에 동백꽃이 그리워지면 나는 대구수목원으로 간다. 그리고 키 작은 동백나무 세 그루에도 세상 행복해지는 나를 만난다.
귀룽나무 여린 연둣빛도 내가 좋아하는 봄이다. 숲 속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무 중 하나이다. 예부터 조상들은 귀룽나무 잎이 피기 시작하면 농사일을 시작했고 한다. '상념', '사색'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귀룽나무 푸른 잎 아래 작은 의자만 하나 있다면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사색할 수 있겠다.
진달래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고개를 내민다. 대표적인 봄꽃이다. 요즘에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봄꽃들이 있지만 예전에는 봄꽃 하면 무조건 진달래와 개나리였다. 진달래, 개나리가 피면서 봄이 시작되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김소월의 시라고 해야 할지,, 마야의 노래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진달래꽃을 떠 올리면 자동으로 소환되는 문장이다. 아침 햇살에 투명한 진달래 꽃잎이 예쁘다. 자꾸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 이유다. 진짜 진달래라고 '참꽃'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가짜꽃도 있을 텐데.. 가짜꽃이라는 의미의 '개꽃'이라고 불리는 꽃은 진달래와 흡사한 「철쭉」이다.
곧 튤립의 시간이 올 것이다. 계절을 기다리는 것은, 언젠가 필 꽃을 기다리는 것은, 꽤나 지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우리에게 줄 충만감을 익히 알고 있기에 기다리면 사탕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아이처럼 잘 기다릴 수 있다. 한두 송이 핀 튤립만으로도 이렇게나 행복한데 알록달록 색깔로 가득 찬 튤립 꽃밭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인들 못 기다리랴.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잘 깎아놓은 색연필이 생각났다. 너무 뾰족하지는 않게 깎아서 가지런하게 정리해 둔 색연필통을 보면 괜히 설레는 기분에 마음이 간질 했다. 둥굴레 새싹이다. 이렇게 어린 새싹이었다가 계절이 바뀌면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둥굴레의 핵심인 뿌리가 영근다. 그러고 보면 계절은 참 진실하다. 태풍이나 폭설이나 혹은 폭염처럼 여러 변수들이 있지만 그래도 꽃은 핀다. 그래도 열매는 맺는다. 엄동설한에는 봄이 절대 올 것 같지 않지만 봄이 오지 않는 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조금 늦게 오는 일은 있더라도. 힘이 들면 포기하지 말고 조금 쉬면서 기다리자, 봄이 오길. 봄은 반드시 온다.
-대구수목원은 나의 작은 놀이터.
-어느 해 3월 대구수목원.
봄이 오면 대구수목원은 그야말로 시끌벅적 정신없는 시골 장터가 됩니다.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화개장터처럼 대구수목원에도 없는 꽃 빼고 웬만한 꽃은 다 있답니다. 그렇기에 3월의 대구수목원은 매일매일 가도 질릴 틈이 없었어요. 다음 회차부터 연재될 4월의 대구수목원 역시 매일매일 다른 꽃을 만날 수 있어요. 3월의 꽃이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모호한 시간에서 피어나기에 왠지 갸날프고 여리하고 그리고 블링블링했다면 4월의 꽃은 조금은 단단해지고 조금 더 꽃답다는 느낌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는 꽃들입니다. 내일은 또 무슨 꽃이 피었을까 궁금함에 수목원으로 달려가게 만들죠!
대구수목원 3월의 꽃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대구수목원 4월의 봄을 가득 채울 예쁜 꽃들 열심히 보여드릴게요!! -정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