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46

: 예술 비평

by 유영

예술 비평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혹은 병행하면서 숙고해야 하는 것은 타인의 예술 자체의 분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는 윤리를 도덕과 다르게 이해하는데, 도덕은 하나의 정합적 법칙으로서 관계에 외재적으로 존재하는 틀이고 규범이다. 이에 반하여 윤리는 관계에 내재적인 책임 즉 responsabilité에 있다. 우리는 이 프랑스어’responsabilité‘ 의미가 동사 ‘repondre’ 즉 응답(repondre)할 수 있는 가능성(-abilité)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임은 ‘들려오는 것’, ‘보여지는 것’, ´피부로 느껴지는 것’등이 나에게 하나의 존재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할 때 그것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것이다.


비평을 가장 넓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타인의 예술 작품에 대한 글 또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면 여기서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는 예술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자신의 존재를 감각을 통하여 나에게 드러낼 때 어떻게 적절하게 이 문제에 응답할 수 있는지, 혹은 비평이 이러한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또한 비평을 "타인의 예술 작품에 대한 글 또는 말로"정의할 때, 하나의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은 '타인(예술가)의 표현'이지 '타인'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평가가 관계하는 만남의 대상은 표현의 사실(le fait d'expressions)이지 예술가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누구에 응답하는가'라는 질문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또 이 예술 표현은 언어라는 표현과는 다른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우리가 다른 언어를 번역할 때에 있어서 완전하게 동일한 뉘앙스를 가질 수 없는 것 보다도 더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이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듯 보인다.


이 문제를 정리-심화하자면 예술 비평의 행위에 선행되는 자세(attitude), 달리말하자면 예술 비평의 윤리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연구하는 것에 귀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타인의 예술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 여기서의 문제는 응답에 대한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응답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연구의 초석과 같이 보이지만 연구의 종점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2) 타인의 예술을 만나는 것은 *예술가의 행위의 사실*과 만나는 것이지 *예술가*를 만나는 것도 *예술가의 행위*와 만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사실'은 프랑스어로 *fait*를 의미한다. 이 fait는 'faire'즉, '행하다', '만들다', '수행하다'의 결과, 즉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퍼포먼스로서의 예술을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행위가 특히 예술가의 신체와 관계할 때 행위는 고유한 신체의 감각적 체험(expérience véçue)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신체의 주체가 아닌 이상 그 신체의 행위를 감각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술가의 행위를 감상하는 행위는 그 행위의 체험바깥에서 그 체험이 수행하는(faire) 사실(fait)을 감각하는 것이다. 이 사실(fait)은 넓은 의미에서의 'Image'를 지시한다.(이 이미지를 나는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된 일체의 사실(fait)로 이해한다).


3) 사실(fait)을 감각하는 것은 '이미지'를 통해서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이미지'의 작용은 두 개의 상반된 작용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2)에서 말한 외부(여기에서는 예술가)로부터 만들어진(faire) 사실(fait), 즉 예술가의 faire가 fait이 되는 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실(fait)을 인식하는 우리의 인지작용이다. 2)에서 나는 이미지를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된'이라고 '이미지'의 의미를 한정하였는데 이미지는 사실(fait)을 수용(réception)하는 주체의 행위와도 만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만들어낸 혹은 수행한 예술은 '어떤' 사실(fait)의 '이미지'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 이미지는 두 작용, 즉 예술가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사실(fait)과 수용자의 감각적 판단행위의 사이에 위치한다. 정리하자면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사실이 수용자가 감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형태(forme)로 주어진 것(donné)이 예술작품의 '이미지'이다. 즉 비평가가 접근가능한 것은 이 '이미지'로 한정된다.


4) 예술작품에 대한 응답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때 예술작품이 수행되거나 만들어진 사실(fait)은 비평이 사용하는 도구인 '언어(즉 말 또는 글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규칙)'와 근본적으로 다르거나 초과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사실(fait)은 문자나 발화된 음성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그것이 문자나 발화된 음성으로 수행된 것일지라도 그 자체의 언어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이 예술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와 ‘초과’에 있다(과거의 예술에서 이 초과를 지칭하는 것은 ‘아름다움’ 일 것이다).


5) 그러므로 연구를 위한 가정적 결론은 타자의 예술작품을 말과 글로서 비평하는 행위는 먼저 이 다름과 차이를 조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평은 타인의 예술에 대한 말의 공백을 충실하게 발견함으로써 그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불가능성을 조명해야 한다. 이 비평은 따라서 공백을 둘러싼 글로써 예술작품으로 향하는 하나의 문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즉 문은 공백을 정의하지 않으면서 접근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공백이 하나의 '열림'이 되게 한다. 예술에 대한 비평은 그러므로 이 '문'에 대한 말과 글의 건축술이다.


6)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응답을 해야 한다'라는 명령에 종속되지 않는다. 가능성의 문제는 응답이 거부될 수 있음도 내포한다. 따라서 비평은 이 '응답의 거부'로서, 이 거부에 대한 말 또는 글로서 수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