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 대고려연방 (34)

자유통행 2

by 맥도강 Mar 19. 2025

민 대통령이 미리 준비해 간 서류봉투를 정 위원장에게 전달하면서 저 멀리서 영상을 찍고 있던 내외신기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조만간 중국을 방문하여 시 주석을 만날 계획입니다,

시일은 촉박합니다만 그때까지 우리 측의 제안에 대한 판단을 해주신다면 중국 방문길에 큰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우리 대통령님을 대단히 신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좋습니다,

민족의 번영과 우리 인민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업이라면 마다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위원장님”

정 위원장이 보란 듯이 활짝 웃으며 컬컬하게 말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받아버리면 됩니다!

코쟁이든 땟놈이든 쪽발이든 까짓것 얼마든지 오라 하십시오!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을 다시 한번 더 보여줄 테니까 말입니다!”


TV모니터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중일 지도부의 반응은 신기하게도 비슷했다.

통일한반도의 위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세계 8위의 한국 경제력과 정교하게 완성된 핵보유국 북한과의 결합은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세 나라는 통일 한반도의 도래를 막을 수 있는 필승의 카드 한 장을 아껴두고 있어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TV모니터를 지켜봤다.     


판문점 평화의 집 1층 로비에서는 남북한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남북정상회담 기념 평화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극히 짧았음에도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축하공연들이 풍성하게 이어졌다.

지금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가야금과 대금 4중주의 조화 속에서 남북의 두 여가수가 ‘나의 살던 고향은’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열창하고 있다.


석양이 붉게 타오를 때쯤 드디어 남북의 두 정상이 나란히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사전에 그렇게 합의를 한 듯 정 위원장이 먼저 마이크 앞에 섰다.

십일 년 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세기의 정상회담을 하면서부터 정 위원장은 이미 국제적인 지도자로 부상되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의 두 정상이 기쁜 마음으로 합의한 것들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모두 두 가지인데 먼저 개성공단에 관한 건입니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모든 출입인과 통관물품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전면적인 입출경을 허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시설의 설치와 사용도 24시간 제한 없이 전면 보장하겠고…”


정 위원장의 발표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의 발표만으로도 내외신 기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정 위원장이 만면의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놀라고 그러십니까!

지금 발표하려는 두 번째의 합의사항을 들으시면 놀라서 뒤로 자빠지겠습니다!

기자 선생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이제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정 위원장의 재치 있는 입담에 좌중은 폭소가 터져 나왔지만 정 위원장의 바로 옆자리에 서있던 민 대통령은 다음순간 의식적으로 표정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은 육지와 바다 하늘길을 망라하여 모든 방면에서의 전면적인 자유왕래조치를 상호 합의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성공단의 활성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내외신 기자들뿐만 아니라 TV를 통하여 이 방송을 지켜보던 지구촌의 모든 이들이 함께 흥분하는 순간이었다.

장내는 또다시 카메라 플래시 터트리는 소리와 고함치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때 당돌하게도 맨 앞줄에 앉아있던 독일출신의 젊은 여기자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아직 질문시간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정 위원장을 향하여 큰 소리로 질문했다.

“한반도의 통일을 합의하신 겁니까?”

질문소리가 너무도 또렷하여 1층 기자실은 물론이고 방송을 지켜보던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이었다.

몹시도 당황한 척 두 눈을 번쩍 뜨는 쇼맨쉽으로 대응하던 정 위원장이 해맑게 웃으면서 민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러자 민 대통령도 밝은 표정으로 화답하면서 침착하게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통일로 나아가는 첫걸음 정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도로와 철도부터 시행하고 바닷길과 하늘 길은 준비가 되는대로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도로와 철도는 이미 남북 간에 연결된 구간들이 있습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간단한 입출경 신고를 마치게 되면 최장 180일까지 남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한번 터져버린 질문공세는 이젠 기자들의 질의응답시간이 되고 말았다.

“EU처럼 국경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것입니까?”

“언제부터 시행합니까?”

정 위원장은 이런 식의 혼란스러운 기자회견은 적응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민 대통령은 일상적인 경험자답게 능수능란하게 대응했다.

“남북한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출경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탑재된 모바일 여권을 제시한 후 입출경을 확인하는 스탬프만 받게 되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시점에서 남북한이 내어놓은 이 파격적인 조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초대박이었다.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쉼 없이 쏟아졌다.

“외국인도 간소화 절차로 북한여행이 가능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외국인도 남과 북에서 체류하는 기간의 범위 안에서 최장 180일 동안 구분 없이 가능합니다”

“방문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까?”

“네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유학이나 취업 등 장기체류도 가능합니까?”

“현재 남북한이 적용하고 있는 규정보다도 훨씬 완화된 형태의 장기체류 규정을 남북한 당국이 구체적으로 협의해서 조만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때 조용히 취재에 임하고 있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한국특파원 기자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남과 북은 이제 이 간소화 여행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서로를 다른 나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민 대통령이 옆자리의 정 위원장을 바라보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 대통령은 지금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정 위원장은 평소의 거침없는 성격답게 시원하게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종국적으로 북과 남은 곧 합해져야 할 통일의 대상이지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의 여행자유화 조치는 그 대장정의 첫발을 땐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머지않아서 손전화기에 출입국일자를 찍는 번잡스러움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맨 뒷줄에 앉아 있던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이탈리아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고 대통령이 지목했다.

“이 여행조치는 1989년 11월 10일부터 동독이 시행하기로 했던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와 매우 흡사합니다,

혹시 그 당시 동독이 시행하려던 행정조치를 벤치마킹한 것입니까?”

민 대통령이 이 이탈리아 기자를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보더니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잘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독은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를 시행도 해보기 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한 독일은 이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남북한은 독일의 통일과정을 교훈 삼아서 미래의 통일시점이 다소간 지연되더라도 안정 속에서 통일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 첫 조치로서 남북한 국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선택했습니다,

팔십여 년간의 분단체제로 형성된 이질적인 감정은 결코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부대끼면서 점진적으로 동질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번조치는 남북통일의 연착륙을 시도하는 대단히 중요한 조치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뉴욕타임스의 서울특파원도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큰 키에 금발의 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묶은 중년의 여기자였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시점입니다,

과연 위험한 북한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한국인들이 있을까요?

오히려 대량의 탈북사태가 발생하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1월 9일 밤의 대혼란이 재현되지 않을까요?

불편하시겠지만 정 위원장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대고려연방 (33)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