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1
오랜만에 써니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 들은 지 일 년은 넘은 것 같다. 만나지 못한 것은 아마 칠 년도 넘었다. 가끔 한 번씩 안부를 물으며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웃어보곤 했다. 전화를 받은 언니는 '아이고 정말 소름 끼쳐. 이게 웬일이야'한다. 언니도 요 며칠 내 생각을 하다 전화를 걸어볼 참이었단다. 10분 후였으면 아마 자기가 전화를 걸었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언가 통하나 보다.
언니는 지금 재활 중이다. 이 주일 전 친구들하고 버스를 타고 일 보러 가던 중 버스가 서기도 전에 일어나 내리려다 넘어지고 말았단다. 미리 서두르는 적이 없는 언니 성격이었는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도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 정신이 없었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단다.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었고... 함께 있던 친구들이 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가서 CT도 찍고 검사도 진행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뇌 속에는 피가 고이지 않았고 겉에만 출혈이 있었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특별히 아픈 데 없어 퇴원해서 집에서 약 먹으면서 치료한 지 일주일 되었다는 언니.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을 전하는 언니 표정이 내 맘 속으로 들어와 목구멍이 따끔거리기도 했다. 아 참 다행이다.
통화 내내 목소리는 밝았고 크게 웃었고 건강해 보였다. 언니는 오히려 나더러 생기 있고 명랑해 좋다고 했지만 그 사고 중에도 건강해 보여 마음을 놓았다. 언니는 그 사고 전날 밤 꿈 이야기를 했다. 수탉 한 마리가 큰 날갯짓을 하며 춤을 추었어. 뻘건 벼슬을 꼿꼿이 세우고 창창하게 날던 닭을 보고 다음 날 복권을 샀지. 5천 원짜리 두 장을. 그리고 다음 날 그런 사고를 당했네... 지금 복권이 무슨 대수야. 수탉은 아마 조상이었을 거란다. 조상이 막아주어 그만하길 다행이라 여기라며 여동생이 나무랐다는 이야기까지. 언니는 말미에 자기는 가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다며 후후하고 웃었다.
돌아보면 써니 언니와의 인연은 참 이상한 데서 시작되었다. 처음 언니와 대면했던 곳은 퀸즈 플러싱의 어느 사우나에서였다. 추운 그 해 겨울, 마음의 추위를 덜어내자고 처음으로 들른 곳. 그곳에서 언니의 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내 몸의 추위를 녹였으며 언니가 읊어주던 시구 한 줄을 들으며 마음의 추위를 녹일 수 있었다. 시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의 연줄은 시작되었다.
십 년도 넘었겠다. 이국에서 다른 사람들의 등을 밀어주며 받은 한 뭉치의 그린 100 달러와 망가진 몸을 안고 언니는 먼저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우리의 끈은 이어져 이제는 고국에서 함께 통화를 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는 우연한 곳에서 시작되어 더러는 잊히고 더러는 끈질기게 연명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나는 '만남은 신의 은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니도 이제는 조금씩 몸을 사려야 하는 나이. 매일 아침 눈 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세끼 챙겨 먹으며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일, 그리고 주어진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일이 잘 사는 일일 것이라 말했다. 그래요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언니보다 더 욕심이 많은가 보다. 왠지 플러싱의 오래된 골목과 초라한 사람들의 모습이 종일 눈앞에 아른거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