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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Jun 25. 2023

더하기와 빼기

아직도 버리지 못한 삶의 부스러기

 

 큰 집을 정리하고 작은 집으로 옮겨온 지도 두 해가 넘었다. 이사 오면서 많은 짐을 버리기도 하고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어느새 묵은 짐들이 여기저기를 가로막고 있다. 많이 처분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버려야 하는 것이 책이다. 


 돌아보면, 책을 읽는 일은 어려서부터 소중한 나의 일과였고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시집, 에세이, 고전, 사상집까지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때로는 단서 몇 가닥을 통해 범인을 추적해 가는 아슬아슬한 추리소설에 빠져 밤을 홀딱 새기도 했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철학자들의 사유의 늪에 발을 담가보기도 했다. 손에 책이 들려 있어야 불안하지 않았다. 그 습관은 아직도 유효해 가방 안에는 늘 책 한 권이 들어 있다. 이제는 무거운 것은 싫다며 얇은 시집이나 발췌본 같은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누구를 기다린다거나 할 일 없어 책방에 들르면 책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마음이 편하다. 어떻든 책을 손안에 넣는 날은 행복했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저 책은 모두 내 것, 그래서 늘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비어있던 책장은 또다시 채워져 비좁다고 아우성이다. 최근에는 여행지에 가면 일부러 그 지역 책방을 찾아 그 나라 저자의 책을 사 오는 이상한 취미가 붙었다. 이것은  순전히 책에 대한 나의 허영 때문이다. 지적 허영을 채우려는 욕심. 몇 해 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룸메이트가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라며 할도르 렉서스의 ‘독립적인 민중들’을 추천했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책꽂이에 꽂혀 있다. 언젠가 읽게 되리라 기대해 보지만 저 책도 어쩐지 장식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책들이 내 곁을 떠나갔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책들 중에는 몇 집을 옮겨 다니면서도 살아남은 묵은 책들이 있다. 오래되어 버석거리는 시집, 흙먼지 냄새나는 소설책, 여기저기 밀 줄 쳐진 수상집. 버려도 값나가는 것들이 아닌데 그냥 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나의 젊음과 지난한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 같아 버리지 못했다면 이 또한 소박한 삶에 대한 결례이며 낭비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사는 일은 더하기와 빼기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필요하다며 사들이고 쓸모없다고 버리고. 때로는 모으기보다 버리기가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모 일간지 어느 카피라이터의 말이 생각난다. 10년 만에 이사하면서 냉장고며 텔레비전이며 탁자도 의자도 주전자도 냄비도 버렸다 했다. 그러나 버린다고 버렸는데 결국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게 하나 있다고.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비겁하고 교만한 자신은 버리고 괜찮은 자신만 데려오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다고. 그래서 살아온 대로 살고 있다고.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나, 책도 책이지만 아직까지 과감히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도 아직 나를 버릴 수가 없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끝까지 버릴 수 없는 삶의 여정일 것이다. 더하기와 빼기, 어쩌면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나이 들고 질병으로 고통스러워지면 결국 육신도 버려질 것, 그때까지는 더하기보다는 빼 가면서 조금은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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