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움'과 '위하여 사는 삶'만이 실재한다(최종회)

by 전영칠


경쟁은 환상이다 26화(최종회)

에필로그: '나 다움'과 '위하여 사는 삶'만이 실재한다



자녀에게 "남보다 잘해라" 대신 "너답게 살아라"라고 말하기


대한민국의 아침은 전쟁터와 같다.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의 등 뒤로 부모들의 간절한 염원이 투사된다. 그 염원의 핵심은 대개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마라." 혹은 "어디 가서 기죽지 마라." 이 말은 "남보다 더 잘해라"라는 주문이다. 우리는 이 주문이 아이를 보호하고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 주문은 아이의 영혼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기도 하다.


경쟁이 생존의 본능이라 믿는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매니저'를 자처한다. 성적표의 숫자와 상장의 개수는 아이의 가치를 증명하는 지표가 되고, 옆집 아이와의 비교는 훈육의 일상적인 도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경쟁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상대적인 우위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상태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신기루와 같다. 타인을 이기는 것에만 몰입한 아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한다.


"남보다 잘해라"라는 말은 아이에게 끝없는 결핍을 심어준다. 1등을 해도 불안하다. 언제 이 자리를 뺏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2등은 분노하고, 그 이하는 좌절한다. 이 구조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박탈당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가 아니라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외부의 기준에 맞춘 삶은 풍선껌과 같다. 처음에는 단맛이 나고 커지는 즐거움이 있지만, 곧 단물이 빠지고 지치게 된다. 타인과의 비교를 동력으로 삼는 아이는 스스로의 엔진을 갖지 못한다. 부모가 뒤에서 밀어주거나 타인이라는 장애물이 있어야만 달릴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성공한 자녀의 모습이 아니다.


많은 부모가 "너답게 살아라"라는 말을 위험하게 느낀다. 아이가 제멋대로 살거나 나태해질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너 다움'은 방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기질, 재능, 가치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책임감 있게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아이마다 타고난 결이 있다. 어떤 아이는 정적인 탐구에서 빛을 발하고, 어떤 아이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수만 가지의 색깔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의 '성적'이라는 잣대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은 폭력이다.

"너답게 살아라"라는 말은 아이에게 "네가 가진 고유한 색깔을 두려워하지 말고 드러내라"라는 용기를 주는 말이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 과거에는 남들이 가는 길을 더 빨리 가는 것이 경쟁력이었으나, 지금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오직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그것이 블루오션의 길이다. 아이의 '너 다움'을 지켜주는 것은 가장 강력한 미래 대비 전략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너답게 살아라"라고 말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모의 불안에 있다. 부모 스스로가 경쟁이라는 환상에 깊이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평범해질까 봐, 혹은 주류에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아이의 목을 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식물을 키울 때 우리가 하는 일은 햇빛을 조절하고 물을 주는 것뿐이다. 장미에게 국화가 되라고 강요하거나, 왜 옆집 나무보다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아이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나 대리 만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아이는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우주다.


부모가 먼저 경쟁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아이의 작은 변화와 고유한 특성에 경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이번에 몇 점이니?"가 아니라 "너는 그 문제를 풀 때 어떤 기분이 들었니?"라고 물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물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배운 아이는 실패했을 때 쉽게 무너진다.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승리에 두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다움'을 중심에 둔 아이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선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가 시도했다는 사실'과 '내가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회복탄력성이다.

"너답게 살아라"라는 말은 아이에게 심리적 안전기지를 제공한다. 세상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든, 네가 어떤 성취를 이루든 부모는 너의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믿음을 준다. 이 단단한 자기 신뢰를 가진 아이는 타인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각자의 '다움'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지금까지 <경쟁은 환상이다> 시리즈를 통해서 아래의 사항을 펼쳤다.



1. 나만의 개성을 찾아 개성을 완성하기

2. 성과지상주의에서 존재지상주의로 살기

3. 경쟁이 가져온 OECD 자살률 1위 대한민국

4. 비교는 불행이다

5. 경쟁은 혐오의 다른 말

6. 예술가는 경쟁으로 남 모르는 상처를 안고 산다

7. 투쟁이 아니다, 협력이다

8. 적자생존은 공생공존이다

9. 개성 : 모두가 1등이다

10. '나다움'이 블루오션이다

11. 독립운동가의 삶을 잊지 말자

12. 이타의 기업가도 성공한다

13. K-컬처는 경쟁력 아닌 공감력이다

14. 한민족의 원형인 홍익사상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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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환상이다.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달릴 때만 성립하는 일시적인 착각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광활한 대지를 탐험하는 여정이다.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렇게 말해주자.


"오늘도 고생했어. 남들보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너는 너일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다워. 엄마 아빠는 네가 너다운 길을 찾아가는 그 모든 순간을 응원해."



“당신의 인생은 경쟁하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경쟁은 환상이다>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경쟁’이라는 사회적 문법을 해체해 왔다. 이제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경쟁은 거대한 환상이며, 우리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실재는 오직 '협력(사랑)'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러다 굻어죽는다고?

요즘은 굶어 죽지 않는다. 단군이래 먹을 것이 가장 풍족한 사회다.

우리는 좀 더 용감해야 한다. 경쟁사회이니 경쟁하라. 그러나 우리는 가치서열의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외공은 경쟁이나 내공은 협력(사랑)이다. 나만이 가진 개성으로 예술가, 자영업, 1인기업, 중소기업, 대기업을 꿈꿔야 한다.

가치서열의 1순위가 경쟁인지 협력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OECD자살률 1위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미처 다루지 못한 소재도 있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현재 55만 명이 이른다. 증가율은 해마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모두가 경쟁사회에 상처 입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긋난 삶의 형국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교의 그물에 갇힌다. 누가 더 빨리 걷는지, 누가 더 좋은 대학에 가는지, 누가 더 높은 연봉을 받는지... 끊임없이 옆 사람의 속도를 훔쳐보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 속도전에서 승리해 환호하던 이들이나 패배해 좌절하던 이들이나 결국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는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정말 나답게 살았는가?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는 삶을 살았는가?"



왜 경쟁은 환상인가


경쟁이 환상인 이유는 그것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쫓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쟁의 세계에는 끝이 없다. 하나를 이기면 더 큰 산이 나타나고,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길을 걱정하며 불안에 떤다. 경쟁은 '부족함'이라는 결핍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다.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내가 갖지 못하면 빼앗긴다"라는 공포가 경쟁이라는 허상을 실재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진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들판의 꽃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지 않듯, 밤하늘의 별들이 서로 더 밝게 빛나려 경쟁하지 않듯, 인간 또한 각자 고유한 존재의 이유를 지니고 태어났다. 우리가 경쟁에 매몰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빛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그림자가 된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달리는 동안, 정작 '나 자신'과는 점점 멀어지는 비극이 발생한다. 경쟁은 존재의 풍요로움을 가로막는 가장 정교한 장애물이다.



사랑(협력, 공생)만이 유일한 실재다


경쟁이 분리를 전제로 한다면, 사랑은 연결을 전제로 한다. 내가 너를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기 시작할 때 경쟁의 마법은 풀린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생명이며, 우리가 누군가와 경쟁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한 부분과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다. 아이가 부모의 눈을 바라볼 때, 연인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고통받는 이의 눈물을 닦아줄 때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 실재를 경험한다. 경쟁의 세계에서는 타인이 나의 지옥이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타인이 나의 천국이 된다. 이 연재를 통해 '나답게 살기'를 강조했던 이유도 결국 사랑에 닿기 위해서였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축복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은 경쟁하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인생은 경쟁만 하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인생은 누구를 앞지르기 위해 부여된 시간이 아니다. 인생은 경험하기 위해, 느끼기 위해,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가진 고유한 향기를 세상에 흩뿌리기 위해 주어진 짧고도 눈부신 기회다. 100미터 달리기 트랙 위에서 옆 사람의 발걸음만 보며 달리기에는, 트랙 옆에 핀 들꽃과 머리 위를 지나가는 구름, 그리고 함께 달리는 이의 거친 숨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젊은 시절 그토록 집착했던 승리와 성취들은 유한하다. 오히려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웠던 것은 경쟁에서 이겼던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던 순간, 진리를 깨닫고 가슴 벅찼던 순간,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나 자신을 긍정했던 평온한 오후였다.



연재를 마치며: 환상에서 걸어 나오기


<경쟁은 환상이다> 연재는 여기서 멈추지만, 우리들의 삶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경쟁이라는 배낭은 무겁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이 질문들이 당신의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게 하라. 경쟁의 환상에서 걸어 나와 사랑과 협력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자유를 만날 것이다. 그 자유 안에서 당신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오직 당신만이 피울 수 있는 꽃을 피워낼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부족한 글과 함께해 준 모든 독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당신의 삶이 경쟁의 피로함 대신 사랑의 평온함으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당신은 이미 온전하며, 당신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경쟁은 환상이다> 연재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