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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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동파육 시가 된 고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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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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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시가 된 고기
1.
가마솥 깊은 곳
在大铁锅的深处
zài dàtiěguō de shēn chù
해석 및 평론:
시의 첫 구절은 요리의 공간이자 시간의 용광로인 '가마솥'을 중심에 놓는다.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라 시와 역사, 감정이 익어가는 '심연'이다. 중국식 전통 요리의 상징인 가마솥은 여기서 시간의 깊이와 정성의 무게를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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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서히 익어가는
慢慢地炖煮着
màn màn de dùn zhǔ zhe
해석 및 평론:
시간은 이 시에서 결정적이다. 빠르게 조리되는 음식이 아니라 '서서히' 익어간다는 것은 인내, 기다림, 그리고 삶의 축적을 의미한다. 시는 여기서 느림의 미학을 동파육에 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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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처럼 살결은 부드러워지고
如夜色般 肉质逐渐变得柔嫩
rúyèsè bān ròu zhìzhú jiàn biàn de róu nèn
해석 및 평론:
밤과 살결의 비교는 관능적이고도 고요하다. 익어가는 고기의 변화는 밤이 내리는 감각과 닮았다. 시인은 식감을 단순한 미각적 묘사로 그치지 않고, 밤이라는 감정의 층위로 격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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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름 속엔 기다림이 녹는다
在油脂中 蕴藏着等待的溶解
zài yóu zhī zhōng yùn cáng zhe děng dài de róng jiě
해석 및 평론:
기름이라는 것은 맛을 담는 그릇이자 시간의 용해이다. 이 문장은 음식에 대한 묘사인 동시에 인생의 은유로 기능한다. 기다림이 ‘녹는’ 것은, 시간이 주는 보상을 암시한다. 고기를 끓이는 일은 결국 삶을 곱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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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동파 <소식> 시인이 남긴
苏东坡,留下诗句的诗人
sū dōng pō, liúxiàshījù de shī rén
해석 및 평론:
시는 역사와 인물을 불러낸다. 동파육을 만든 이로 전해지는 ‘소동파’를 단순한 요리사가 아닌, 시를 남긴 존재로 강조한다. 동파육은 그래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학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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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 줄 시처럼
如同一行诗句般
rú tóng yī háng shījù bān
해석 및 평론: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한 줄의 시. 동파육은 그처럼 깊은 감정을 농축한 ‘한 줄’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함축된 세월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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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짭조름한 간장 향에 진한 세월이 배어난다
在咸香酱油的气息中 渗透着浓浓的岁月
zài xián xiāng jiàng yóu de qìxī zhōng shèn tòu zhe nóng nóng de suìyuè
해석 및 평론:
간장의 향은 시간의 냄새다. 짠맛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그 속에 배어든 삶과 역사, 고통과 애정을 품고 있다. 시인은 간장의 향에서 세월을 끌어올리는 놀라운 미각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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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강을 따라 흘러든 바람이
沿着长江吹来的风
yán zhe cháng jiāng chuī lái de fēng
해석 및 평론:
장강, 즉 장대한 역사와 문명의 흐름이 음식과 연결된다. 동파육은 단지 지방 요리가 아니라, 장강 유역의 문화적 향기와 시간의 바람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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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돼지고기 위를 다정히 어루만지고
温柔地抚过猪肉表面
wēn róu de fǔguòzhū ròu biǎo miàn
해석 및 평론:
시인은 요리 과정을 사람 간의 애정행위처럼 묘사한다. 바람이 고기를 쓰다듬는다는 상상은 이 시가 단순한 미식의 묘사를 넘어선 감성의 절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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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강과 술, 팔각 하나씩 얹혀
依次加入姜、酒与八角
yīcìjiārù jiāng, jiǔyǔbā jiǎo
해석 및 평론:
향신료와 재료 하나하나는 기억과 정성의 조각들이다. 시인은 요리를 ‘창작’처럼 접근한다.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감정의 퍼즐 조각처럼 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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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움이 소스처럼 졸아든다
思念像酱汁一样慢慢浓缩
sī niàn xiàng jiàng zhīyī yàng màn màn nóng suō
해석 및 평론:
최고의 문장이자 이 시의 핵심이다. 소스는 재료의 혼합물이 아니라, 그리움의 정수로 졸아든다. ‘졸다’는 요리의 과정이면서, 마음의 압축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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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먹는 것이 아니라 시는 입안에서 흩어진다
不是在吃,而是诗在嘴中绽放
bùshì zài chī, ér shìshī zài zuǐ zhōng zhàn fàng
해석 및 평론:
이 구절에서 음식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입안에 퍼지는 것은 맛이 아니라 ‘시’다. 이 시는 결국 동파육을 매개로 ‘미각의 시적 체험’을 선언한다. 음식의 예술화이자 시의 입속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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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 점, 또 한 점
一块接着一块
yī kuài jiē zhe yī kuài
해석 및 평론: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추억이 되살아난다. 점점이 먹는 동작은 의식이며, 기억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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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기억 속 고향이 혀끝에 핀다
记忆中的故乡在舌尖上绽放
jìyì zhōng de gù xiāng zài shé jiān shàng zhàn fàng
해석 및 평론:
혀끝에 피는 것은 단지 맛이 아니라 고향이다. 미각이 감각과 감정을 동시에 깨우는 순간이다. 향수의 결정체가 바로 이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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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건 고기가 아니라 역사였고,
那不是肉,而是历史
nàbúshì ròu, ér shìlìshǐ
해석 및 평론:
이 문장은 선언이다. 음식은 결국 이야기다. 누적된 시간과 장소, 사람의 기억이 응축된 것. 동파육은 요리인 동시에 한 지역과 인물의 역사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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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랑이었고,
是爱
shì ài
해석 및 평론:
음식은 애정의 표현이다. 사랑으로 고기가 완성되듯, 사랑이 없이는 시도 없다. 이 문장은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음식과 사랑의 등가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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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 시인의 눈물 같은 맛이었다
是如诗人泪水般的味道
shìrúshī rén lèi shuǐ bān de wèi dào
해석 및 평론:
시의 클라이맥스. 눈물과 맛이 만나는 순간, 이 시는 음식에 가장 고귀한 감정을 부여한다. ‘시인의 눈물’은 그 어떤 화려한 향신료보다 더 깊은 감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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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평론
배선희 시인의 「동파육 시가 된 고기」는 단순한 음식의 시적 묘사를 넘어, 요리와 문학, 역사와 사랑, 기억과 감각을 정교하게 버무려낸 시이다.
소동파라는 인물을 통해 음식이 문학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며, 입 속의 맛을 시의 문장으로 확장시킨다.
음식은 이 시에서 감각을 넘어선 감정의 기호이며, 삶의 증언이다.
이 시는 한 그릇의 고기조차도 철학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입과 눈, 혀와 마음, 역사의 풍경이 모두 조화롭게 어우러진 **‘미각의 시적 혁명’**이라 평가할 수 있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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