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안빈낙도 천석고황은 선택인가 도피인가(3)

윤선도가 품은 16, 17세기 시가문학을 중심으로

by 윤슬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유용한 가치인가. ‘봉문필호(蓬門筆戶) 빙호추월(氷壺秋月)’에 상응하는 가치인가. 따져 묻는다면 시대를 아우르는 화두가 될 수 있을까. 돈, 명예, 배경도 없는 집안이나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 인재로 발탁될 기회가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이룰 수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면 개천에서 용이 날 필요가 있었을까. 가난하고 한미해서 찾아오는 이조차 드문 곳에 얼음 채울 병에 담길 가을 달처럼 훌륭한 인품과 덕성을 지닌 청렴결백한 인재가 용이 될 수 있다면 안빈낙도 천석고황은 선택인가 도피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었을까. 역사는 시간 속에서 흐르기를 멈추지 않았고, 과학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우주로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기어코 16~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묻는 것은 퇴보인가 진보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는 절망한다. 고산 선생이 그러했듯이.... 그래도 그래도 끝까지 가 보아야 하는 까닭은 내가 ‘어른’이고 싶기 때문이다. 고산 선생이 그러했듯이.......


부슬부슬 옥가루 같은 눈 내리고 날은 저무는데

동이 술 나누며 글을 논하다 돌아갈 생각 사라졌네.

아이 불러 상자 들어 아름다운 시편을 꺼내는데

종이 위의 옥구슬이 여러 시축에 가득하였네.


선생은 주남 같은 벗 장자호와 더불어 글을 논하고 시를 짓는 장면들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열다섯 젊은 청춘들이 옥가루처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 늦게까지 마주 앉아 옥구슬 같은 글자들을 꿰어 보석을 이루던 날들을 이렇게 회고한다.


단산(丹山)의 빼어난 봉새가 구름 하늘에서 춤추고

창해의 뭇 용들이 두각을 겨루는 듯

회계 (回溪)에서 날개를 늘어뜨린 것 끝내 무슨 일인가

비로소 조정의 그물이 성글다는 것 믿을 만하네.


단산은 신선들이 거주하던 곳을 말한다. 이곳의 빼어난 봉과 푸른 바다의 용이 춤추고 두각을 겨룬다는 것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불철주야 열공해서 과거장에 나온 이들을 이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봉과 용은 장자호를 이름일 텐데 그가 회계에서 날개를 늘어뜨렸다 했다. 이 말은 후한의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와 싸워서 처음에는 졌다가 나중에는 이긴 것에 대해 ‘처음에 회계에 날개를 늘어뜨렸으나 마침내 민지에서 날개를 떨쳤으니 아침에 잃었다가 저녁에 되찾았다 이를 만하다.’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결국 서른이 되던 해 ‘병진소’에서 간언했듯이 이이첨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임금이 친견하는 과장에서조차 부정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졌음이 고산 20세 무렵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장자호 같은 뛰어난 인재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력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여산(廬山)에서 공이를 갈던 것 나와 같은데

황관(黃冠) 쓴 두 사람에 산색(山色)이 비치네.

나와 그의 글 읽는 소리 섞여 석감 앞에 퍼지고

뻐꾹새와 두견새는 남북에서 울어대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소년 시절 글 읽기를 하던 도중에 버려두고 떠났는데, 길에서 어떤 노파가 쇠로 된 공이를 갈아 침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돌아왔다 한다. 조선의 두 영재는 흰 눈 소리 없이 쌓이는 겨울밤, 뻐꾹새 두견새 울어대는 봄날 아침, 초록이 지쳐 비가 되어 내리는 여름날 오후, 얼음조각 닮은 달빛 청아한 가을밤, 풀벌레 소리 잦아들 무렵까지 글 읽는 모습, 그대로 산빛이 되고 말았다는데.


맑은 새벽 주렴 걷고 호연함을 생각하고

고요히 앉아 함께 우산(牛山)의 나무를 논한다네.

때로 높은 산굴에 오르니 가슴속 상쾌한데

다시금 샘물 바라보며 쉼 없음을 지켜본다오.


하루아침에 발길을 돌려 진세로 들어간다면

소매 나란히 하고 거듭 놀 기회 어찌 얻게 되리.

지금 또 두 곳으로 나뉘게 된다면

이별의 회포 견디기 어려워 길이 슬프리라.


공부, 왜 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임진년의 7년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가족의 맥없는 죽음을 앞에 둔 채 기근과 질병으로 쓰러져가고, 기술자들은 적국으로 끌려가 오랜 세월 익어온 지혜와 숨결마저 맥이 끊어질 위기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은 권력 분탕질이나 하고 있던 시절, 동문수학 지기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라고 말해야 한다. 꿈속에서 만나고 꿈속에서 헤어지는 벗의 얼굴 앞에서 베어져 나가는 우산의 나무들을 슬퍼함은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고민하지 않는 슬픈 나라의 자화상이다.


[글쓴이 주] 고산 선생의 ‘차운하여 장자호에게 답하다’는 이형대 이상원 이성호 박종우 선생님들의 번역본 [고산유고]집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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