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2

해옹(海翁) 윤선도의 인생 2막을 찾아서

by 윤슬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나’,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무심한 삶을 너무도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세상 밖에서 악수를 나누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달려온 사나이 도연명은 “귀한 자와 천한 자,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 모두가 아귀다툼을 하면서 삶을 아끼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미혹(迷惑) 된 짓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말을 걸어 보았답니다.


사실 도연명 그가 41세에 귀향한 후에도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답니다. 본래 가진 것이 없는 삶에 갑작스레 가질 것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대다수 민중의 아픈 깨달음 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자신을 숨기고 적당히 타협할 줄 몰랐던 그 사나이는 억척스럽게 바보스러웠으니까요.


그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종이나 붓을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큰아들 서(舒)는 열여섯 살인데 게으르기 짝이 없고, 작은아들 선(宣))은 열다섯이 되어 가는데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옹과 단은 함께 열세 살인데 여섯과 일곱도 분간 못하고, 통이란 놈은 아홉 살이 다 되어 가는데 배와 밤만 찾고 있다고 스스로 한탄을 합니다. 사실 듣고 있는 저 역시 갑갑하고 답답해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데 가르칠 수 없는 도연명 자신은 어떨까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49세 무렵이었다지요. 육체와 그림자, 정신이 함께 앉았는데, 육체가 그림자에게 (形贈影) 말을 건넸답니다.


“어이, 오류선생, 허무하지 않은가? 하늘과 땅은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고 산과 강 역시 변하는 일이 없지 않나. 풀과 나무도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꽃을 피우고 시들게 하는데 사람은 가장 신령스럽고 지혜롭다면서도 이것들만 못하네. 자네 한 생을 살다가 어느덧 속절없이 사라져 가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인데, 다만 평생에 쓰던 물건만 남길 따름인데 허무하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시게나. 신선 될 재주 없는 바에야 술이 생기거든 구차히 사양하는 일 없도록 하시게나.”


바보 도연명에게, 슬픈 천명을 지닌 시인 도연명에게 육체의 일갈은 그럴듯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그림자가 육체에게 (影答形) 말을 건넸답니다.


“오류선생, 삶을 지키는 일조차 서툴러서 괴롭네. 곤륜산 화산 같은 신선 사는 곳이야 길조차 끊어져 갈 수 없으니 안타깝지만 말일세, 그대와 함께 한 이래로 슬픔과 기쁨을 달리해 본 적이 없네. 응달에 쉴 적에 잠시 떨어진 듯하여도 햇볕에만 나오면 끝내 떨어지지 않았지. 그러나 함께 있는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 컴컴한 속으로 때가 오면 함께 없어질 것이야. 몸이 죽으면 이름조차 없어지는 것 생각하면 가슴속이 뜨거워지지만 착한 일을 하면 그 은택이 후세에까지 끼친다는데 허무하다고 말 것인가? 술 한 잔으로 날리고 말 양이면 자네의 그림자로 살아온 세월조차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 아닌가. 나는 싫으네. 살아 온 족적은 자네 몫이 아니 된다 하여도 사는 동안 정성을 다해 살아야 하네. 그것이 자네에 대한, 나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는가.”


이 말을 듣고 있던 정신이 정리하듯 말을 건넵니다.


“사람이 하늘 · 사람 · 땅의 삼재 가운데 끼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이네. 자네들과 다른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나면서부터 하나로 의지해왔지. 삼황(三皇)은 위대한 성인이지만, 팽조(彭祖)가 오래도록 살았다 하지만 영원히 살려다 죽고 말았네.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 죽을 것인데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굳이 따질 필요 있겠는가. 술, 그래 술에 취하면 잊을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재촉하는 것일 뿐이네. 그러니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지 마시게. 그저 운명에 맡기어 되어가는대로 살아감이 옳을 것이네 세상의 위대한 변화 속에 물결치는 대로 따르면서 기뻐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사시게나. 거스를 수 없음이라면 따르는 것이 순리라네. 나도 자네를 거스르지 않았네.”


지치도록 숨 가쁘게 살아가는 오늘, 나의 삶 마흔 끝자락에 도연명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들으며 세상 밖에서 이름을 남긴 사나이 도연명을 기려봅니다. 전설처럼....


* 위의 글 1편과 2편은 김학주 님께서 엮으신 책 ‘도연명’을 참고로 하여 썼고, 나름 각색을 하여 적어 보았습니다. 김학주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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