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옹(海翁) 윤선도의 인생 2막을 찾아서
적막한 거친 밭 곁에
번성한 꽃이 약한 가지 누르고 있네.
장맛비 그쳐 향기 가벼워라
보리 바람을 띠어 그림자 쓰러졌네.
수레나 말 탄 사람 그 누가 보아주리
벌이나 나비만이 한갓 서로 엿보네.
태어난 땅 천한 것 스스로 부끄럽고
사람들 버려둔 것 그저 한스러워라.
- 최치원 「촉규화」
이 시인은 천재였다. 열두 살에 고국인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하고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또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천재 시인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시인은 변방의 작은 나라 출신의 문객이었을 뿐이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 큰 포부와 꿈을 펼치려 했지만 골품제, 6두품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자 인재계발과 인재육성에 기반을 둔 정치 개혁안 시무 10조를 올리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그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천재 시인은 떠났다. 그가 떠난 곳은 가야산이었고, 그곳은 조선 팔경 중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빼어난 곳이었다. 그곳에 고산 윤선도 선생이 1635년 겨울 초입 무렵에 찾아갔다. 75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찾아 나선 것이다.
가야산 신선 떠난 지 이미 천 년인데
가야산에서 이 신선을 찾으니 웃을 만하네.
시문 지으며 잔 띄운 일 빼어난 행적 아니었으니
이 모두가 인세를 피하는 데 있었음을 알겠네.
한 해 저물 무렵 좋은 경치 이리저리 찾으나
단풍도 없고 꽃도 없어 한스러워라.
온 봉우리 하룻밤에 주옥(珠玉)으로 단장하니
뭇 신선 대접이 후한 줄 이제야 알겠네.
-윤선도 「가야산에 유람하다–2수」
고산(孤山)은 고운(孤雲) 에게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씻을 수 없는 더 큰 상처를 아직 마주하지 않은 사나이 고산에게 이때 이 만남은 차라리 ‘낭만’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이를 질박하고도 공교하게 만들어 내었던가?
자유롭고 분방함은 조화옹에게서 말미암았구나!
해를 곁에 두고 바람에 임하니 구름 골짝 같고
집은 그윽하고 지세는 험하여 바위 가운데 빼어나네.
옥구유에 나는 폭포 향기로운 안개 꿰뚫고
돌단지의 차가운 못 푸르른 하늘 비치네.
십 리의 봉호(蓬壺)는 하늘이 내리신 영토이니
비로소 내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을 줄 알겠네.
-윤선도 「황원잡영-1수」
첫 만남, 첫 순간은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 위대하기까지 하다. 무릉도원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폭풍 같은 시간에 어떻게 떠밀려 왔는지 모르는 사나이에게 이곳의 풍경은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신선의 세계였다. 천 년 전에 신선이 되었다는 이가 처음 도달했던 그곳도 이곳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질박함’, ‘공교함’ 장인의 솜씨가 아니면 탄생하기 어려운 경지의 것이다.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미세한 흔들림조차도 인정할 수 없는 경지, 이미 인간의 것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것을 시인은 조화옹의 것이라고 말한다. 깎아지른 험준한 바위 골짝 사이로 집들이 모여 있고, 눈앞에 펼쳐진 폭포의 위용은 옥으로 빚은 구유에서 날아올라 안개를 꿰뚫는 듯하다 찬탄한다. 보길도 부용동은 선생에게 십 리의 봉호(蓬壺), 하늘이 내려 준 영토가 되는 것이다.
봉래(蓬萊)에 잘못 들어 홀로 신선을 찾는데
물(物)마다 맑고 기이하며 낱낱이 신묘하네.
가파른 절벽에는 천고의 뜻 말없이 담겼고
드넓은 수풀에는 사철 봄이 막히어 둘렀네.
어이 알랴? 오늘 바위 굴 속 나그네가
훗날 그림 속의 사람 되지 않을는지.
속세의 떠드는 소리야 어찌 족히 말하랴만
돌아갈 생각하니 신선들 성낼까 두렵네.
윤선도 「황원잡영- 2수」
하늘이 내려 준 영토, 그 위에 선 시인은 떠올렸다. 천 년 전 가야산을 떠난 신선을 만나겠다고 찾아 나섰던 2년 전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가슴 부푼 꿈을 감아올린다. 단풍도 꽃도 없는 곳에서 신선을 그리는 우생(優生)에게 신선은 하룻밤 사이 주옥으로 단장한 봉우리로 화답해 주었던 그날의 신비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 역시 보길도 부용동의 신선이 되어 찾아드는 나그네를 그린다. 속세의 떠드는 소리는 멀수록 좋고 돌아가면 신선이 성낼까 두려워 그림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하늘의 소리로 받아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