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매월당 김시습을 기리며

by 윤슬

언제였던가요?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날, 그날을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꺼내보려 합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우연’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 방 책꽂이 한 틈에서 세월의 두께만큼 먼지를 옷처럼 입고 계셨습니다. 아직 신혼살림인데 무슨 먼지가 그리 많겠습니까마는 선생님께서는 1493년 강을 건너 1995년 여름 7월 건너 8월 사이에 저와 첫 대면을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황색 바탕의 관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관복의 흉배에는 강물이 넘실대는 사이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습니다. 한쪽 절벽 위에는 대나무가 푸르게 서 있었고, 한 마리의 학이 단정하게 서서 맞은편 바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맞은편 바위에는 사슴 한 마리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고, 소나무 위엔 두 마리의 학이 부리를 맞댄 채 서 있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강 건너편으로는 ‘일월오봉도’에서나 볼 수 있는 산봉우리와 붉은 해가 두둥실 떠 있었고, 강물은 햇살을 품은 채 말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습니다. 그 방 안엔 저 혼자 있었습니다. 저는 폭이 넓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배는 불룩 솟아서 아기가 꿈틀대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채로 서 있었습니다. 배가 눌릴까 봐 몸에 끼는 옷은 입지 못했고, 화장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겐 부끄러움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었습니다. 가슴엔 찬바람이 불고 머릿속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무례하게 방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칙칙한 바람과 어두운 구름이 저를 질식시켜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참담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살던 방은 단칸방이었습니다. 슬래브 집에 완전한 2층도 아닌 1.5층이었습니다. 둘이 살기엔 그럭저럭 넓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왼쪽으로는 수도꼭지가 있었습니다. 그 수도꼭지 밑으로는 빨간색 함지박과 노란색 양은 대야가 나란히 앉아 있고, 한편엔 세숫비누며 빨랫비누가 거품을 몸에 두른 채 놓여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싱크대가 있고 가스레인지 위엔 아침에 먹고 남은 된장국 냄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옆에선 냉장고가 하얀 입김을 뿜어 올리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희 자그마한 집은 60촉짜리 알전구를 켜지 않아도 훤했습니다. 전주 인후동에서 노송동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집들이 저희 신혼방을 흘끔할끔 엿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싫었습니다. 자신들도 간밤에 내린 비에 젖어 옴짝달싹 못하고 거센 바람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잔뜩 주눅 들어 숨죽이고 있으면서 가난한 저희를 향해 히죽히죽 웃는 것 같아 어쩐지 미웠습니다.


무서운 밤들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길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두런거림 사이사이로 저희 방 텔레비전에서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under the sea'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리고, 저희 방 담벼락에 기대어 키스를 하는 어린 연인들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사이사이엔 아기가 엄마의 배를 차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어느 만큼 지난 후, 12시가 가까워지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많은 발자국 소리 가운데 그 소리만이 저를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기고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을 꺼내 놓을 때쯤이면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갸름한 얼굴, 크지 않은 체구에 와이셔츠 95를 입는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밤 시간이 익어갔습니다.


밤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길가엔 라면박스 같은 것들이 온갖 잡동사니들과 뒤엉켜 나뒹굴고, 길가의 가로수가 휘청거리고 간판이 떨어질까 두렵던 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결엔 듯 들려오던 소리가 저희 집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았지만 무서워서 차마 나가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야 알았습니다. 저희의 가난을 겨우 막아주고 서 있던 ‘함석’ 가림막이 태풍에 맥없이 날아가버린 것을.....


홀로 남겨진 시간, 저는 선생님과 함께 기린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운동장에 있는 그네 위에서 선생님과 더불어 같은 시간을 보내려 했습니다. 선생님의 옛 이야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는 그날 오후, 그리고 일주일 후, 저는 아주 오랫동안 선생님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에서야 선생님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뱃속에서 뛰놀던 아기가 스물한 살이 되고 나서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선생님의 관복 속 흉배에 수놓아진 선생님의 숨결을.......


지금, 2022년 3월 저는 빛바랜 관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멀지 않은 날에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생님의 방랑길, 관서와 관동 그리고 호남 유람길 위에서 남기신 한시들과 금오산 은둔 이후 쓰셨 던 『금오신화』를 정리해 보리라 다짐합니다. 누구나 읽기 쉬운,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한국 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에세이 평론집'을 완성하리라 다짐합니다.

저희 부부의 책꽂이에서 손짓해 부르시고 애틋한 눈길로 함께해주신 지난 날들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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