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드세요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다. 황보름 작가의 <매일 읽겠습니다>다. 조금 전에는 부엌 의자에 앉아 문형배 작가의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있었다. 내일 의령 도서관에 가서는 대니얼 임머바르의 <미국, 제국의 연대기>를 지정석처럼 생각하는 소파에 앉아 읽을 테다. 베란다 작업실에는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 속에 책갈피가 꽂혀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대학 공부를 위해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한다. 강의를 들을 때는 하루에 몇 과목을 정해서 시간표대로 들으면 어떨지 생각도 하지만 되지 않는다. 꼭 한 과목 강의를 모조리 다 들어야 다음 강의를 시작할 수 있다.
의령 전시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진주 문산도, 망경동도 우리 동네도 그릴 곳이 넘치지만, 그리려고 생각한 사진도 많지만 그리지 못한다. 그저 의령만 그리고 있다. 오늘 진주 문산을 산책했지만 그리고 싶은 골목은 사진첩에 저장만 해 놓는다.
해보지 않은 작업이지만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 본점(?)이 있어 얼굴 한 번 (직접) 본 적 없는 모임이지만 9기, 12기 두 번을 함께 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개인적으로 써야 할 것도, 다른 모임에 제출하기 위해 써야 할 글도 쓰지 못한다.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과제를 하면서도 글을 써도 되련만 잘되지 않는다.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 목욕탕 가서 이를 닦지 않고 나온 것 같은, 깨끗해진 것 같긴 한데 어디 한 군데가 찝찝한-입 빼고 깨끗해진- 느낌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제대로 하려는 야욕이나 계획이 아님에도 무언가 끝이 나야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마도 이것도 저것도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리라. 다 할 수 없다면 무엇이든 하나라도 끝내보겠다는 작은 욕심이거나. 그럼에도 책을 읽을 때는 반대에 가까우니 이건 또 무슨 연유일까. 아무래도 글을 읽는다는 건 유희에 가까운가 보다. 성과를 내고 잘했거나 못했거나가 드러날 작업 앞에서는 누구에게든 보인다는 면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게 비록 나에게만 보이는 것일지라도 신경이 쓰이는 것같다.
해야 할 일과 독서라. 그렇다면 그림도 글도 그냥 취미는 아니라는 말인가. 그것도 그렇네.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없다. 나의 독서 습관을 보자면 시작한 책을 끝내지 않을 때도 많다. 한 번에 한 권만 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는 욕심이 나지 않는다. 한 권을 끝까지 보는 것이 욕심이라면 말이다.
한 권을 잘근잘근 씹어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다짐 같은 것도 없다. 간단한 독서 기록도 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는 무슨 내용이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리라.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게 보이지 않는, 영양가 없는 독서라고 폄훼하기 좋은 방식의 독서를 하면서도 이 또한 바꿀 생각이 그다지 없다.
그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지극한 행복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머리에 전혀 남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몸 어딘가에 태어나고 사라지는 세포처럼 내 속에 어딘가를 스쳐 가며 흔적을 남겼을 거고, 남길 거라고 믿고 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문장마저도 나의 신경 세포 하나를 건드려 그것으로 활성화된 두뇌 어딘가는 조금 부풀어 오르리라 나 좋을 대로 생각하곤 한다.
다독을 하지도 않지만, 기록하고 기억하며 내 것으로 소화하려는 노력마저 없지만 그럼에도 독서가 즐거울 수 있는 건 그렇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서이다. 잘 읽고 싶다는 노력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부엌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거실에서 읽으려고 소파 위에 올려둔 책이 있음에도 화장대에서 읽던 책을 부엌으로 가져가며 읽고 소파에서 읽던 책을 화장대로 옮겨놓는 제멋대로 원칙도 없는 독서지만 그렇기에 더 즐길 수 있다.
오늘 한 줄의 문장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면, 느낀 점이 있다면 그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책 한 권을 읽은 만큼의 가치가 있다. 그것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않았음에도 돈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는, 죄책감에 빠지지 않는 나의 독서 방식이다. 가끔은 프롤로그만으로 그만 배가 불러버리는 나만의 책 식사다. 슬로 푸드가 몸에 이롭듯 천천히 읽은 책이 더욱 잘게 분해되어 내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천천히 음미하며 한 권을 깊이 들이마셔도 좋으련만 나는 그만 이렇게 또 즐길 것 같다. 문장 하나에 흔들려 깊이 감동하거나(그래서 그 책을 다 읽을 시간 동안만큼을 읽지는 않고 있거나), 프롤로그에 감탄하며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것들이 연쇄적으로 마음을 강타해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내 글을 쓰느라 독서가 늦춰지는 식으로 말이다.
추천할 만하지도 않고, 자랑할 만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방법이지만 소파에 누워 글을 읽다가 작가의 말에 수다스럽게 대꾸해 본다. 당신은 그렇게 읽으시는군요. 저는 이렇게 읽는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생각도 다르지만, 우리는 어깨동무한 독서 동지네요.라고 말이다.
시간이 많이 되었다. 수다 그만 떨고 이제 자야겠다. 작가님도 잘 자요.
오늘 오랜만에 문산에 손님이 왔습니다. 안내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곳 소개도 하고 안 가본 곳도 가보았습니다. 산책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릴 곳이 또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