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돈(?)
에릭 클랩턴의 My Father's Eyes가 나오고 있다. 소파에 누워 폴 오스터의 1234를 읽던 참이었는데 잠깐이지만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아니면 승무를 바라보아야 할지 망설이게 했다.
내 밤을 책임지는 에릭 클랩턴과 핑크 플로이드. 지금 에릭 클랩턴의 노래가 연이어 나온다. 밤과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기타의 신이면서 노래마저 잘하니 무언가 분명 빠지는 게 있으리라는 생각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수고로운 작업은 진작에 끝난 예술가이니 그저 즐기기만 하면 충분하다. 힘 있는 음성이지만 그럼에도 소곤거리듯 허스키해서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려는 질감의 목소리라 놓치지 않으려 귀를 세우게 된다. 편안하게 부르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는 완벽한데 그걸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으니 더욱 완벽하다. 트로트 식 표현으로 하자면 꺾기도 너무 감미롭고도 어른스러워 그것마저 완벽하다. 마이쭈처럼 첫입에 중독시키는, 하지만 끝맛은 개운치 않은, 잘 만들어진 기획사 제작 가수가 내기 어려운 세월이 만든 노래고 가수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도 노래가 부르고 싶다. 그처럼 쉽고도 편안하게 요들송을 부르듯 쉬이 넘어가며 멋들어지게 노래 한 곡을 뽑고만 싶다. 무대가 그리워지는(?) 노래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폴 오스터, 그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참을 수 없던 눈물을 나는 밤새 흘릴 수밖에 없었다. 20대부터 시작된 사랑은 그를 작가님이나 대문호라는 칭호로 붙이기 전, 존대해야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 마음속 대명사로 존재하게 했다. 나에게는 그저 영원히 <폴 오스터> 그 이름으로만 있을 뿐이다. 뉴욕 3부작으로 시작된 그를 향한 관심과 기대, 질투 어린 시선 또한 무관하여 나에겐 공중 곡예사부터 시작된 폴 오스터식 우주에 부유하는 영원한 먼지로 존재할 뿐이다. 그가 이룩해 놓은 우연이라는 거대한 우주는 땅에 발이 붙어 있지 않아 힘들어했던 20대를 대단한 작가의 어깨에 손을 짚고 살아낼 수 있게 했고, 손에 잡히지도 버릴 수도 없는 젊음이라는 불구덩이를 건널 수 있게 해 준 방염 이불이었다. 블랙홀로 빠져들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을 제공하던 폴 오스터라는 우주에서 살게 해 준 고마운 울타리이자, 애인이다. 시모님과 나이가 같던 그였으니 어느 땐 아버지처럼(공중 곡예사) 어느 땐 삼촌(달의 궁전)처럼 또 어땔 땐 존재한 적도 없는 남동생으로(빵 굽는 타자기) 붙들고 살았었다. 그런 그가 작년에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비보에 침대에 모로 누워 밤새 흐느꼈다. 어리석게도 자주 누군가의 영원불멸을 바라곤 하니까.
그가 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로 다가왔다. 아직 읽지 않은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죽기 전까지 그를 놓아줄 수 없으니 새로운 인연은 천천히 만나는 걸로 하고 싶었다. 비록 읽고 나면 읽었다는 사실마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이야기는 다시 책을 드는 순간 어릴 적 사진첩처럼 고스란히 기억의 테이블로 떠오르니까. 허투루 허겁지겁 읽고 싶지 않아 책을 꽂아만 두었다. 그걸 오늘 몇 장 읽는 중이다. 하나의 문장만으로 접신을 하듯, 새로운 세상으로 순간 이동되는 마법의 순간을 아꼈는데 그렇게 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그 일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그가 없는 세상이 쓸쓸할 뿐이다.
오늘 글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중이었다. 글이란 것이 날 어디로 데려가는지. 잠깐 정신을 놓으면 한데로 몰려 샛강으로 빠져버린다.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기쁨이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으니 나는 지극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맞긴 하다. 그래 오늘의 행복을 노래하려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생각은 다르지만, 젊은 세대에게 빚을 넘기는 행위라며 비난하던 민생 지원금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CU샌드위치도 3,500원 치 사 먹었고 가장 좋아하는 찻집인 문산 폐역을 인테리어 해서 영업 중인 짹짹 커피숍에서 돌체라떼도 지원금으로 사 먹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말하려고 한 건데. 윤석열, 잘못을 더 큰 잘못으로 덮으려 계엄을 하는 바람에 얼마만 한 빚이 생겼는지는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같이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답답하지만 답답하다는 건 시원함을 알고 있으니 하는 소, 그만하고.
여하튼 민생 지원금 없어도 잘 사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 혼자(생각에) 중산층"도 꽤 살림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오늘의 주제가 되어 버렸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사소한 쇼핑, 맛있는 샌드위치-과 사소한 것들이 모여 행복이 유지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 민생 지원금은 행복이고, 나는 오늘 행복 3단 콤보를 맛보았으니. 행복하다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라고 말이다.
의령 도서관에 자주 가려고 수업을 하나 신청했어요. 그림책 쓰기?
거기서 그림책 만들기 중인데. 전시에는 못 올리는 못난이 그림으로 그림책을 하나 만들려고요^^
스티커 인형은 일단 소품으로 얹고(사람 그리기 전까지 임시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음. 꽤 괜찮아요. 진주 그림으로 도시형 스케치 배경을 쓰고 내용을 올리니까 그럴듯합니다^^
앞으로 여기에 재미 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성평등 교육용 동화책이고요. 여자처럼 생긴 남자도 남자처럼 생긴 여자도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지 않도록 공용 화장실(가정집처럼)을 만들면 어떨까?…. 까지 가보는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