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여배우의 고백

영화도 찍었다니까요

by 노사임당

아침에 눈 뜨며 처음 하는 행동이 오늘의 나를 이루는 정체성이라고 했던가.




요즘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건 휴대전화를 잡는 거다. 그렇다면 나를 표현하는 한마디는 휴대전화와 연동된 자. 줄여서 '휴대자'. 박완서 작가는 잠들기 전과 눈뜨자마자 책을 잡는다고 했는데 역시는 역시다. 나와는 세기(?)가 다르다. 1900년대에 태어났으나 밀레니얼 이후에도 살아있는 자와 아닌. 태어난 세기가 다르다는 말로만 구분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참 다르다.


어쩔 수 있나. 태생은 같은 20세기였으나 이런, 작가가 되고 싶은 공갈빵 무늬목 작가는 아침부터 전화기를 켜고는 인스타를 확인한다. 나중에 백 년 정도 후에 내가 남겨둔 돈이 복리에 복리로 몇천만 원이 되면 그때 자비로 내 후손이 낼 책을 위해서 홍보나 할 겸 개설한 인스타를, 책도 안 낸 주제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본말이 전도된 채로 눈을 휴대전화 속으로 떨어뜨린다. 인스타를 하기 위해 책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그렇게 의미도 없이 둘러보는데 관심도 없는 드라마 예고편이 뜬다. 왜 이런 게 뜨는 거야란 생각은 하면서도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네.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도 하는 데다 궁금증마저 유발한다. 여자와 남자, 몸이 바뀌었구나. 내가 책을 위해 인스타를 개설했는데 인스타를 열심히 할 명분을 얻기 위해 책이라도 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이 드라마 제목이라도 보자며 더 두고 본다.


여자 주인공에서 남자주인공으로 화면 전환. 그러다 배경 역보다는 큰 역을 맡은 어떤 남자 배우를 비춘다. 어라? 배우가 눈에 익다. 나의 비루한 자아에 하나 내세울 점이라면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것이다.(몰라보기가 어려운 개성있는 얼굴인데 뭐람..) 저 배우는 며칠 전 나와 함께 영화를 찍은 그, 한상조 배우다. 이야, 그새 새 배역? 대단하네.




며칠 전, 아는 감독이 돈도 없고 열정페이 하겠다는 이도 없는 세태를 슬퍼하며 도움 요청을 한 적이 있다.


말이 그렇지 본인마저 열정페이와 다름없는 지원금으로 영화를 찍으니, 누구에게 열정을 구하리오. 무릇 누군가의 열정을 페이로 써먹으려면 본인의 유명세나 권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 유명하지도 않은 감독의 영화에 열정까지 갈아 넣으며 경력을 쌓은들 어디에 줄 긋기용으로도 차마 초라하여 슬퍼질 수 있을 터.


그러니 열정 페이보다는 재미 페이를 온 데다 뿌리고 다니는 나에게 이런 연락이 왔던 거다. "영화 찍는데 엑스트라 출연 가능?" 톡이었다. 작년에 온갖 수업을 들으며 마수가 지하 세계에 뻗치듯 은근히 여러 방면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던 때였다. 지나가다 아는 사람이라며 고개 까딱일 정도로 얼굴만 아는 사람일망정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났던 것. 사람을 가느다랗고도 아슬아슬하게 알게 되었던 연유로 감독이라는 직업인까지 '그냥 아는 사람'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겨우 알게 된 감독이 겨우 찍는 영화에 무료 출연하여 달라는 데 가지 않을 도리가 있나. 무료 수업도 들었고, 피자도 얻어먹었는데. 그놈의 공짜에 나는 고만 꼼짝없이 걸려들고야 말았던 거다. (말이 그렇지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영화에 출연한 얘기를 글로 쓴다면 한 꼭지의 에세이는 얻을 수 있으니 영 돈 쓰고 시간 쓰고 살림도 안 하고…. 하는 주부 근심은 덜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다. 뭐, 그렇게 젤 게 많더냐. 그냥 남는 시간에 하면 되지. 문제는 기름값 들고 방 닦을 시간에 집을 떠나야 한다는 데 있었지만, 이틀 고민하고 톡을 날렸다.


"가겠소."


둘째에게 학교에 가라는 소리를 해놓고 나는 나대로 마산으로 출발하였던 날이다.


-여배우의 독백은 다음 편에 계속-

아니..... 에이아이에게 사진을 주면서 일러스트처럼 바꿔서 그려줘...라고 했는데. 이보슈, AI양반. 도대체 어디가 그림 같은 거요? (출연하면서 영화 속에 책이나 홍보하려고 살림문학을 들고 갔었습니다^^)

닮지도 않았는데 맘에 들지도 않는다.ㅋㅋㅋㅋ

왼쪽 한상조 배우, 가운데 감독(지인 감독은 아님), 오른쪽 나로 추정되는 사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