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한 번째 겨울 4

스무 살의 봄봄

by 그런 날

나의 어머니 옥선과 아버지 황우열은 한 마을에 살았다. 한 마을의 반경이 꽤나 넓었으므로 거리상 가까운 이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재를 두 개 넘어 어느 골짜기에 사는 누구라고 하면 다 알던 시절이었으므로 한 마을이라는 표현이 맞다.


옥선은 열여덟 살부터 그의 존재를 의식했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그가 지나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조금 성가신 마음이 든다' 정도로 정리되는 그 어떤 마음이 생겼다. 말하자면 그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임에도 그들이 사는 세상에선 '내외'가 존재했다.


옥선이 열아홉 살이 되자 여기저기서 중신이 들어왔다. 신랑감들은 소유한 논마지기를 내세우거나, 읍내에 기반을 잡았음을, 또는 신식 기술로 먹고사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 말하자면 가난한 수하리에서도 으뜸으로 가난한 집안의 청년이었다.

그나마 땅이 있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집안의 딸이었던 옥선과 달리 그는 조실부모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님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소작으로 겨우 살아가는 처지였다. 옥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날도 선은 알 수 없이 마음이 답답했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때 그가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아침상을 치우던 옥선이 제일 먼저 그를 발견하였다.

그는 사랑방으로 들어가서 옥선의 아버지께 절을 하고 딸과 혼인하고 싶다고 하였다.

중매인을 보내는 것이 법도에 맞았지만 그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옥선에게 자꾸만 혼처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그를 조급하게 하였고 용기를 내야만 했다.


조금만 생각을 해 보아도 그 혼인은 허락을 하면 안 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떤 점이 그녀의 부모를 설득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가 돌아간 후 옥선의 아버지는 가겠냐고 물었고 옥선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옥선의 나이 20살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옥선은 연지를 찍고 가마를 타고 재를 두 개 넘어 시집을 갔다.

일생에 단 하루 귀한 대접을 받는 날이었다.

그러나 고귀한 신부가 된 마법 같은 그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되자 혹독한 현실이 그녀 앞에 놓였다.




아흔한 살의 어머니는 갓 시집간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집이 금방 허물어질 것 같더라. 그래 귀신 같은 집은 첨 봤다. 콧구멍만한 방이 셋 있는데 식구는 얼매나 많은지 큰 아재비 내외에 딸린 자식이 다섯 명인데 다 큰 자식부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쟁이까지... 아이고야.. 그래도 새 살림이라고 뒷방을 따로 주는데 둘이 앉아만 있어도 방이 다 차더라. 게다가 맞동서는 얼마나 무서운지 호랭이 같았어. 쌀은 구경도 못하고 끼니마다 맞동서가 보리쌀 한 됫박씩 퍼주는 걸로 아홉 명이 먹어야 하는 기라. 기가 차서... 그래도 친정에서 밥은 실컷 먹고살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 한 됫박으로 배에 기별을 보낼라믄 산에 가서 나물을 많이 해오는 수밖에 없었어. 나물을 한 광주리 해다가 보리쌀 한 되랑 같이 끓여서 죽을 해야 그나마 연명을 할 수 있었다니. 재미가 다 뭐나. 신랑하고 말도 몇 마디 못 해봤어. 일은 고되지 맞동서는 무섭지 방이라고는 마구간 같지. 종일 배가 고픈 생각밖에 안 들고... 요새 애들이야 똑똑해서 그런 집으로는 시집을 안가겠지만서도 그때 나는 느 아버지가 내 아니면 어디로도 장가를 못 갈 걸 알았던 기라. 그래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그토록 가난하고 큰 형님 부부의 눈칫밥을 먹으며 더부살이를 하던 나의 아버지가 신부를 맞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떤 어리석고 순진한 처녀가 그의 눈길에 마음이 흔들려 무모한 결정을 내려준 것은 말하자면 그 시절의 낭만일 수도 있겠다.






혼인한 지 몇 달 후 황우열은 집을 떠나 산판 노동자가 되었다.

돈을 벌어 분가를 해야 했다.

산판 노동은 온 힘을 다 끄집어내서 해야 할 만큼 힘겨운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몇 달 동안 혹독하게 일을 해서 삼십리 밖의 솔봉 마을에 허름한 문간방을 얻을 수 있었다.

옥수수 서 말과 솥과 이불과 그릇 두어 개 수저 두 벌을 가지고 셋방에 들어설 때 주인집 노파는 딱한 듯이 혀를 차며 없어도 이렇게 없이 사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들은 한 데 있는 아궁이에 벽을 세워 부엌을 만들고 방에 자리도 새로 깔았다.

형님 집의 뒷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옹색한 공간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비로소 그들만의 보금자리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다정하게 먹을 것을 나누었다.

그리고 아궁이 앞에 나란히 앉아 불을 때며 따뜻한 불의 온기가 전해질 때 평온하고 아늑했다.


몇 달 후 첫 아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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