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머리 위에 물음표가 생겼다면, 그리고 어쩌면 주짓수라는 낯선 단어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이제부터 잘 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짓수인으로 삶을 시작한지 16년이된 16살 주짓수인이다.
이 책은 당신에게 스파이더 가드, 델라히바 가드, 오모쁠라타 등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주짓수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쓰지 않았다. 이 책은 주짓수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주짓수라는 도구를 통해 명상을 배운 나처럼 주짓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주짓수가 왜 몸으로 하는 명상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썼다. 그리고 앉아서 눈을 감고 하는 명상이 아닌 왜 주짓수를 통해 명상을 익혀야 하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 되어 있는 주짓수는 안타깝게도 너무 시합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마치 주짓수는 곧 시합인것 처럼...물론 주짓수가 실전성을 증명해오며 발전한 무술인건 사실이다. 지금은 실전싸움을 통해 증명하기 어려운 시대이니 시합을 통해 증명을 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발전된 주짓수 시합의 룰은 실전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타격이 없는 상태에서의 점수따기식 기술들도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지만 주짓수를 무술이 아닌 스포츠로만 바라보기에 발생되는 문제점들도 많다. 스포츠가 나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스포츠를 통해 주짓수가 더욱 대중화되었고 많은 기술발전을 이뤄냈다. 나 또한 주짓수 시합을 즐겨보며 좋아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한명의 팬이다. 그러나 일반 취미로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잘 못 정착된 주짓수 문화 때문에 주짓수를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고 떠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나 또한 16년이라는 주짓수 수련기간 중 12년은 스포츠 주짓수를 수련했고 그것만이 정답인듯 살아왔다. 10년의 주짓수 체육관 운영기간 중 6년은 제자들에게 그러한 방식을 지도했다. 그 과정에서 1년에 한명씩 구급차에 실려나갔다.
팔이 부러지고, 쇄골이 부러지고, 무릎이 돌아가고, 척추가 압박골절이 되었다.
모두 선수가 아닌 취미로 주짓수를 수련하는 제자들이었다. 이 땐 지도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주짓수 자체의 문제로 생각했다. 왜나면 나도 그렇게 주짓수를 배워왔고 나 또한 많이 다쳤었기 때문에 주짓수라는 운동이 원래 그런 부상을 감수하고 해야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실려간 제자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 부터 나는 이미 대역죄인이었다.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오는 부모님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운동 중에 다칠 수도 있다며 이해해주시는 부모님도 있었지만 거액의 보상을 요구하며 들어보지도 못 한 기관에 조사를 맡기는 부모님도 있었다. 나도 애지중지 온 마음을 다해 지도하던 제자가 크게 다쳐 수술하는 모습을 보며 매번 현타가 세게 왔었다. 이 위험한 운동을 사람들에게 권하는 내가 무책임한 사기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짓수의 홍보문구로 많이 볼 수 있는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술'이란 문장을 보면서 "체육관에서도 살아남지 못하는데 무슨 남성을 이겨"라며 회의감 가득한 말을 내뱉기도 했었다. 처음 1년차엔 "재수가 조금 없었던거야 다음부터 더 조심히 시켜야지" 2년차엔 "분명 살살하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세게 하는거야?!" 3년차엔 "도대체 뭐가 문제지...?" 4년차엔 "주짓수는 너무 위험한 운동이야 이런 운동을 안다친다고 하는 관장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5년차엔"이젠 그만할까..." 이 당시에 체육관을 2군데 운영 중이었지만 누구보다 나태한 삶을 살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수업이 항상 오후 11시가 넘어서 끝나니 늦은 밤에 삼겹살과 라면으로 매일 야식을 즐겼고 다음 날 오후 12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체육관 출근 시간전까지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간산히 몸을 일으켜 출근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당시엔 그 어떤 지도 철학도 방향도 없이 그냥 하루를 어떻게든 넘기기 위해 수업을 했다. 그렇다고 대충 시간 떼우기식 수업을 한건 아니었다. 이때도 조금씩이지만 수업을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확실히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다. 다만 운영자 입장에서 체육관 운영을 위한 그 어떠한 공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름 체육관이 괜찮게 벌이가 되었다는데 신기하다. 한껏 인생을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던 나에게 크나큰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바로 전세계를 뒤흔든 무자비한 코로나 판데믹이 온 것이다. 정부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월세도 내지 못하는 돈을 지원해주며 운영을 금지시켰다. '곧 끝나겠지' 라는 희망을 비웃듯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속 되었다. 살아남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사업장에 '임대문의'라고 쓰여진 백기를 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지원금'이라는 달콤한 이름표를 붙인 대출빚을 붙잡고 생명줄에 피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판데믹 종결선언을 하고 몇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있다.
그 동안 나는 뭘 했을까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코로나 전쟁터에서 자영업자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준 쿠팡에서 하루살이의 삶을 살았다. 다행히 사람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그 동안 나태했던 나는 코로나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렸다.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 자기계발,마음공부,명상공부를 했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아마존,네이버,쇼피 등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마윈의 위대함을 실감하기도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이커머스가 대박을 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주짓수 화이트벨트가 문디알 블랙벨트 부분에 참가한 것 처럼 세상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정말 많다. 주짓수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화이트벨트 때부터 함께 운동해온 친한 관장님의 권유로
'*그레이시 주짓수'를 접하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주짓수인들처럼 그레이시 주짓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레이시 주짓수는 스파링을 안한데","스파링도 안하고 블루벨트를 준데","헤너 그레이시는 주짓수인이 아닌 비즈니스맨이야" 등 그동안 운동하며 들어왔던 그레이시 주짓수에 대한 부정적인 색안경을 사실인냥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접해보니 전혀 달랐다. 주짓수 입문자를 위해 너무나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만들어놓은 초급자과정부터 여성전문 호신술 과정, 아이들을 위한 학교폭력예방 교육과정, 군인,경찰 등 특수한 직업을 위한 체포술까지 그동안 주짓수는 곧 시합이라고만 알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지도자교육을 시작했고 1년의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 지도자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왔다. 체육관도 그레이시 주짓수 스타일로 완전히 바꾸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3년이 넘는 시간동안 크게 다친 제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변화와 결과를 공유하고자 유튜브 '주짓수백신' 채널을 만들었다. 그레이시 주짓수에 대한 부정적인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게 공격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뀐듯 하다. 그렇게 그레이시 주짓수의 지도자로 체육관을 잘 운영하던 나는 10년간 운영하던 체육관을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왔다.
2023년 여름 많은 고민을 안고 오랜만에 강원도 양양으로 향했다. 서핑을 취미로 하고 있는 나는 3년동안 거의 매주 인천에서 양양을 오고갈 정도로 미쳐있었다. 하지만 코로나에 기둥이 심하게 무너진 체육관을 다시 바로 세우고자 서핑을 많이 내려놓았었다. 큰맘먹고 떠난 양양에서 삶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강원도 양양 설악해변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텐트를 설치하고 한창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빗물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금새 빗줄기가 쏟아붙기 시작했다. 서핑은 물 안에서 하기 때문에 비가 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나와 지인들은 서둘러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텐트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 샤워를 위해 서핑샵으로 몇 걸음 걸어가던 중 "쾅!!!!" 하는 온몸이 경직되고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났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북한이 폭탄이라도 쏜줄 알았다. 그때 서핑샵에 있던 사람들이 해변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번개가 해변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구급차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실고 갔다. 그 중 한명이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못 했다. 다음 날 주변 관장님들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내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양양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처음엔 걱정이 되어 전화한줄 알았으나 곧 충격적이 사실을 들어야만했다. 전날 번개를 맞고 돌아가신 분이 나와도 몇번 인사를 나눠 알고 있던 그레이시 주짓수의 사범님이라는 것이었다. 전날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더 큰 충격을 받아 할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의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삶이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의 생명이 한없이 하찮게 느껴졌다. 양양에 가기전 가지도 있던 고민들 또한 정말 하찮다 못해 그런 고민들을 한 내가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죽음 앞에선 다 아무 소용 없는 것들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마치 죽음이라는 상자를 누군가 나에게 강제로 선물해준 것 처럼 죽음이 바로 눈앞에 놓여있는 듯 했다. 진부하고 식상하기만 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새로 알게된 단어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맞아 나는 죽어가는 중이야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야'
그 때 마침 정말 신이 있다면 신이 쓴 시나리오대로 삶이 펼쳐지듯 니체를 만났다. 니체는 얘기 했다.
"내일 죽을 것 처럼 오늘을 사랑하라","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이 두 문장은 나에게 채찍질을 해주었다.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망설이며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2막을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 곳에도 새로운 터를 잡았다. 제주의 자연을 달리고 매일같이 바다에 입수하고 제주를 배우며 이 곳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내 방 창문을 통해 바다가 윤슬을 반짝이며 존재감을 알린다.
제주도에 내려와 마음공부,명상공부를 하며 주짓수를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자 놀라운 깨달음들을 얻었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들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10년넘게 제자들을 지도하며 주짓수에 실증을 느껴서 그만두는게 아닌 생활고에 시달려 그만두는 제자들을 많이 봤다. 그럴때마다 도와줄 방법이 없어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제주도에 운영하는 체육관에 찾아오는 제자들 중에 사업실패,소중한 존재의 죽음,삶의 방향성 상실로 인한 괴로움 등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마음공부,명상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지도방향을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나는 주짓수 지도자다. 그러니 다른 것보다 주짓수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고 능숙하다. 이 도구를 통해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싶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담아 쓰여졌다.
*그레이시 주짓수란?
주짓수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앨리오 그레이시'의 철학과 기술을 이어가는 후손들의 주짓수 네트워크이다.
사실 주짓수의 창시자라는 것은 잘 못 알려진 정보이다. 주짓수라는 무술은 원래 존재했다. 앨리오 그레이시는 '그레이시 주짓수'라는 본인들의 이름을 딴 주짓수 형태를 만든 사람이다. 그레이시 주짓수의 가장 기본 뼈대가 되는 철학은
1.에너지 효율성(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상대할 수 있어야함)
2.실전성
3.자연스러운 움직임(체형,힘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다. 이러한 철학과 기술을 그대로 계승하여 따르고 있는 것이 현재 그레이시 주짓수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앨리오 그레이시의 손자 '히론그레이시','헤너그레이시'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