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직장 생활 4년차, 돌아온 것은 적응 장애

by 김태균
나는 나중에 일본에서 살꺼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가 줄곧 해왔던 말이었습니다.

우연히 친구가 들려주었던 일본 노래(마루노우치 새디스틱)를 시작으로 일본 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왠종일 일본 드라마만 보면서 일본에 대한 동경은 커져갔고, 이후 대학생 시절 일본에서 워홀을 보내며 확신했습니다.


"일본은 정말 나랑 잘 맞는 나라야!

태어난 건 한국이어도 죽는 건 일본에서 하고 싶어!"


열정적인 일본 러버였던 저는 당연히도 일본 회사로 취업했습니다.

나름 괜찮은 상장회사의 개발자로 일하고 있으며, 연수입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 가기 싫어 연차를 쓰고, 우에노 스타벅스에 앉아 우울한 제목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쑻)

IMG_7949.HEIC 우에노 공원은 오늘도 새로운 이벤트가 준비중입니다.



그토록 동경했던 대상이 왜 저를 옥죄는 주체로 바뀌었을까요?


이유는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방식 차이이지 않나 싶습니다.

가까운 거리의 나라이지만 어찌 이리도 다를까 싶어요.

예를 들어, 상대를 위한 표현 방식도 다릅니다.


저는 지금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꽤나 외향적이고, 관계에 능숙한 사람입니다.(중・고등학교때는 전교회장을 했을 정도로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굉장히 높다고 느껴지는 여자친구임에도 가끔씩 대화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일단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연인간 성격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위해 모른척 넘어가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야할까요.


우리나라는 상대방을 위해서 솔직하게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상대방을 위해서 민감한 내용은 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이를 위한 행동이 다른거죠.


그렇기에 일본 사람의 배려가 한국인인 저에게는 회피로 느껴지거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느끼게끔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일본인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도, 음흉함을 기반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 자체가 한국과 꽤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정말로 음흉했던 사람도 간혹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제 첫 직장 상사는 정말 음흉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입이었던 제게 "다음주 X요일까지 일을 마쳐라" 라며 업무를 줍니다.

애초에 신입이 업무를 완벽하게 할 수 있지 않을터,

각 중간 단계에서 상사와 업무 진척 상황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일텐데요.

제가 상황을 공유하려 할 때마다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오라"며 답했습니다.

한 번은 17시 부터 여유가 있으니 그 때 오라고 말했으나, 17시에 자리를 찾아가자 가방을 메고 쏜살같이 퇴근하던 그였는데요.

그렇게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한채 업무의 기일 전날이 되면 그제서야 아웃풋을 확인하고 나서,

"내용이 형편없다. 기일 내에 못 끝내게 되었으니 pm에게 사과를 해라"라고 하곤 했습니다.

말 그대로 괴롭힘를 당한 것이지요.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첫 사회 생활에 1년 반 정도 겪다보니, 무한 긍정주의였던 저의 멘탈도 많이 갈려나가더라구요.

타지에서 온 제가 현재 상사와 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면,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맘 편히 누군가와 상담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상사는 평이 좋지 않아 관리직에서 물러나고 퇴사를 하며 회사 생활이 한결 나아졌었습니다.

의외에도 멘탈이 갈렸던 에피소드가 꽤나 많은데 쓰다보면 끝이 없으니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어찌됐건 일본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저는 이들의 표현 방식에 꽤나 지쳤어요.

이들이 악의를 갖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의중을 확인하는 것은 사람을 꽤나 피곤하게 만듭니다.

왜들이리 돌려돌려 말하는건지.

제발 좀 돌직구로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スクリーンショット 2025-06-27 午後12.45.32.png



일본에서 열심히 산 3년의 결과물은 적응장애


일에 지친 퇴근길 어느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더군요.

갑자기 극도의 피곤함과 우울함이 찾아왔습니다.


그전부터 전조증상은 있었어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너무 큰 압박으로 느껴지고, 눈만 마주쳐도 "아 저 사람도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겠지?"라며 망상을 하고 있더라구요.

하나의 문장을 내뱉는데도 "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말을 해야해"라는 거대한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기 검열이 너무 심해지 나머지 정신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여자친구가 전문가와 상담을 받는 것을 권해주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를 다니며 저의 모든 상황과 불만들을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더라구요.

이후 정기적으로 통원을 하며 약을 먹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약을 먹다보니 이전과 같은 망상들이 사라지고, 절친같던 우울감과도 거리감을 두게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 기술의 발전을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네요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본에서 살꺼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본에서 사는 것을 선택할려고 합니다.

푸념을 저렇게 해놓고,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배움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살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을 느끼고 갖지 못했을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 감정과 생각들이 가치 있을 만큼 좋은 건지는 딱히 모르겠어요.

오히려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고, 저를 지치게 합니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보다.."생각하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마음도 때론 굴뚝같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오기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부러지는 것은 너무 아쉬워서요.

위에서는 일본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울분을 토했지만, 저 또한 미숙했음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거든요.


단지 좋아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이곳으로 왔던 과거의 제가 안일했을 뿐이라고 느껴요.

오히려 이렇게 아픔을 느낌으로써 다른 집단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자하는 마음 없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제가 많이 어렸음을 배웠습니다.

이토록 힘들만큼 가치가 있을 배움이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요긴하게 도움이 되겠죠.


한동안 패배주의가 제게 깊게 쓰며들어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미숙함을 뼈저리게 느끼다보니 부정적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슬슬 무릎의 먼지를 털고 일어나고 싶습니다.

여기서 무너져내리기엔 앞으로 살아야할 날이 너무 많거든요.

경험하지 못한게 아직 가득한 세상입니다.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 놓고, 편하고 즐겁게 세상을 받아들여야겠습니다!

IMG_7578.HEIC 무엇보다 일본 요리를 아직 못 잃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