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그린델발트
2018년 대학교 3학년 첫 혼자 자유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나라는 스위스였다. 취준, 스펙, 대외활동, 학점 등 세속적 책임들 속에서 20년된 6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면서, 아무것도 안해도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무언가를 해도 답답함에 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삶의 기준에서 스위스는 무슨 꿈과 환상의 나라 같았다.
푸른 하늘에 초록 동산, 그림으로나 그리던 지붕 있는 주택, 그리고 자유롭게 풀 뜯는 동물들이라니. 그런 곳이 21세기에 존재한다고?
그래서 처음 스위스 그린델발트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급이었다. 이런 데가 실존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서울을 도망쳐 나와 스위스 거지라도 했을텐데, 라는 철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델발트라는 마을은 보통 융프라우 요흐라는 설산 꼭대기에 가기 위해 들리는 곳이다. 스위스는 모든 게 말도 안되게 비싸서 그렇지 교통은 정말 편리하고 쉬웠다. 그 대신 관광지를 가려면 기차를 많이 타야하긴 하다. 그 기찻값이 비싸서인지, 아니면 그 과정조차 낭만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지루하기보다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기에 바빴다.
나에겐 감격도 가격도 에베레스트였던 융프라우 요흐. 여름에 갔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눈이 소복했다. 재밌게도 융프라우 요흐에 도착하면 익숙한 컵라면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동신항운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 덕분에 한국인이면 6프랑짜리 바우처 쿠폰을 받을 수 있는데, 보통 그 바우처로 이 컵라면을 먹는다. 마치 '나 여기 왔다감' 표식처럼. 1만원짜리 컵라면이라... 자리값 두둑히 하는 예쁜 카페라 생각하면 된다.
인생 처음으로 간 설산 융프라우 요흐도 물론 너무 좋았지만, 그린델발트는 그저 살아있는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특히 가성비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는데도 뷰가 이렇게 환상적이었다. 무료 조식에 오렌지 주스는 오렌지 알이 한올 한올 느껴지는 듯 했고, 치즈는 옆집에서 갓 만들어 나온 것처럼 신선했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6박7일의 스위스 여행 동안 단한번도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진 못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철부지 20대 초반인 나에게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곳이 스위스였다.
이때부터였을까. 주변에서 아무리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에 왜 가?"라고 질문해도, 자연이 지배한 나라들로의 여행을 고집하게 된 것이.
놀랍게도 그린델발트 숙소에는 여러 한국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역시 치밀한 서칭의 민족) 샤워하러 가는 길에 섬세하고 빽빽하게 충전되고 있는 휴대전화와 보조베터리를 보고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이건 누가봐도 한국인의 작품이다' 싶었기 때문. 머나먼 타국에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조용하지만 확실했다.
"혹시 충전 필요하시면 한 꼭지 쓰셔도 되어요!"
그들의 조건 없는 선의에 너무 감사했고, 이게 뭐라고 애국심까지 들었다. 나도 저런 한국인이 되어야지.
스위스라고 풀 뜯는 소와 동화책 집들만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액티비티도 많다. 그 중 많이들 즐기는 것이 바로 '피르스트 펀 패키지'. 피르스트는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린델발트에서 더 산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경치도 치명적이게 아름답지만 액티비티도 상당히 즐겁다. 하긴 이런 풍경을 앞에선바둑을 둬도 행복하겠지.
나는 마운틴 카트를 타보았는데, 스피드가 있는 짜릿한 액티비티는 아니었지만 시원하고 건강한 산바람을 맞으며 소도 보고 로컬들도 보는 맛이 있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아는가. 저주에 걸려 늙어버린 소피가 움직이는 성을 잠시 강가에 멈춰두고 빨래를 말리며,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한순간에 젊음을 잃은 소피가 강을 보면서 행복한 생각만을 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었다. 잔잔한 일상 속에 그 어떤 자극적 영상보다 도파민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꼬마 마법사 마르클과 카루시파. 나도 피르스트 언덕에 앉아 소피를 흉내내려 해보았다. 물론 내 옆엔 아무도 없었지만. 아 그렇구나. 아름다운 것은 나눌 사람이 있어야 더욱 아름답구나.
그린델발트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인터라켄에서 생애 첫 패러글라이딩을 도전했다.
누군가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주제를 꺼내면 내 대답은 항상 "하늘을 나는 능력"이었다. 거의 집착의 수준이었다. 그 이룰 수 없는 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이 아닌가 싶다.
"분더쉔"
독일어로 아름답다는 뜻이란다. 패러글라이딩을 태워준 미스터에게 배운 말이다. 다음 생에는 새로 태어나고 싶으시단다. 나도 신난 마음에 "Me too"라고 대답했다.
다음 생엔 스위스 거지보다 스위스 독수리로 태어나도 나쁘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