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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17. 2024

옅어질까? 짙어질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

 2박 3일의 사흘 나들이. 첫날은 오후에 도착했고 셋째 날은 함께 점심을 먹고는 곧 헤어지는 일정이다.

 둘째 날이 밝아오자 이 하루를 알차게 잘 누려야 한다고 마음들이 급해졌다. 프런트에 물어 월악산 숲을 알아내었다. 승용차로 20분 거리다.


 온천욕으로 세수를 하고 휴양소 식당의 뷔페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곧바로 월악산으로 향했다. 시동생의 승용차에 여섯 명이 올라탔다. 앞 좌석의 시동생과 시매부, 뒷좌석의 50대 60대 70대 여자 네 명. 서로 불편한 중간 좌석에 앉겠다고 실랑이를 벌이지만 나이 어린 작은시누와 동서가 재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곤 꿈쩍도 않는다. 큰시누와 나는 마지못해 웃으며 편안한 자리에 계속 붙박이로 앉아 간다.


 시간을 아끼느라 건너뛴 모닝커피. 다행히 길가에 운치 있는 카페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두 번째 만난 카페 앞에 무조건 다 내렸다. 운이 좋았다. 독특한 젊은 주인장 부부가 운영하는 복합 가게였다. 분위기 있는 리넨 의류 제품들이 가게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여자들 눈길이 일제히 그곳으로 갔다. 만져 보고 꺼내 보며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태를 살펴보기도 한다.


 꽤 큰 금액의 형제들 공동 회비가 있다. 따로 회비를 거둔 적도, 그 돈을 써 본 적도 없이 오랫동안 보관해 온 돈이다. 아버님이 세상 떠나신 2002년, 어머님이 별세하신 2015년. 두 번 모두 대기업 임원이었던 장남, 남편 앞으로 꽤 많은 부의금이 들어왔다. 아버님 장례식 때 화환이 쉰여덟 개나 들어왔다고 뿌듯해하시던 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 22년 전 일이다.

 두 번 모두 남편 명의로 들어온 부의금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넉넉하고 편안하게 장례 비용으로 쓰고 남은 금액은 전액 공동기금으로 넘겼다. 천만 단위의 큰 금액이었다. 아버님 때는 용돈으로 어머님께 모두 드리고 어머님 때는 형제들 기금으로 막내 동서에게 맡겼다.

 별로 쓸 일도 없이 9년 동안 동서가 보관해 온 그 돈을 이번에는 공동 경비로 쓰기로 했다. 숙박과 하루 두 끼 식사가 제공되는 휴양소를 이용하다 보니 이번에도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고급 소재의 예쁜 라운드 윗도리 셔츠를 한 벌씩 구입하기로 했다. 한 벌 가격은 39,000원. 공동경비로 지출할 것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색상으로 넉 장의 옷을 받아 드는데 시동생이 자신의 카드로 결제를 했다. 이번 여행의 선물이라고.

 색깔만 다른 똑같은 옷을 한 벌씩 챙겨 넣으며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끼 있어 보이는 독특한 의상을 차려입은 카페 주인장의 얼굴도 환해졌다.


 따끈하게 내 온 커피는 지금껏 마셔본 어떤 다른 커피보다 풍미가 깊었다. 낯선 여행지의 분위기 있는 전원 카페에서 여섯 명의 형제들이 마시는 모닝커피. 맛도 멋도 뛰어났다. 오래 기억될 시간이다.


 다시 길을 나서 금세 도착한 6월 초의 월악산 숲. 잘 자란 무성한 잎들로 눈부신 태양을 가리고 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는 초록의 향연.

 그들과 친구 되어 크고 작은 바위들을 피해 가며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폭넓은 개울이 되어 여기저기 눈길 끄는 시원한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깊고 얕은 못을 만들며 쉬지 않고 갈 길을 간다.

 꽤 긴 깊은 숲길을 산책하는 행운을 누렸다.

 숙소와 가까운 동네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콩국수도 시원하고 고소했다.


 오후에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냉방시설과 놀이기구가 잘 갖추어진 실내 체육시설을 이용했다. 이용객은 아무도 없이 우리들 뿐이었다. 떠들썩 갑자기 웃음소리 요란해진 탁구대 주변. 최신식 개인용 고급 탁구채와 공까지 준비해 온 큰시누 부부는 오랜 구력과 개인레슨 수강을 증명이라도 하듯 긴 포물선을 그으며 소리도 경쾌하게 핑퐁 핑퐁 공을 주고받았다. 내가 끼인 팀은 통통 바닥으로 굴러다니는 공을 주우러 다니기 바쁘고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는 스매싱에 웃음 폭포 터뜨리느라 운동량이 훨씬 더 많았다.


 햇살이 약해진 저녁나절, 숙소 뒤의 둘레길을 걷고 온천욕으로 땀을 씻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친 시간, 놓칠 수 없는 코스, 지하 노래방으로 갔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 구닥다리 노래밖에 모르는 우리들. 제일 어린 동서의 활약과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으로 그나마 분위기는 살아났다.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어두침침한 곳에서 노래 제목과 번호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50분이 후딱 지나갔다.


 남녀로 나뉘어 방으로 돌아와 담소를 즐기는 시간.  슬그머니 방을 나와 서늘한 여름밤 정원 속 벤치에 나앉았다.

 5년 전, 남편과 같이 왔던 때라고 해서 별다르게 애틋했던 추억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함께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냥 함께하지 못했을 뿐이다. 1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조용한 밤이 깊어갔다.

 방으로 들어와 네 명 나란히 깔아 놓은 이부자리 속으로 들었다. 모두 평안한 잠을 청하며 불을 껐다.


 희미해진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전신을 드러내며 한발 한발 다가오는 손님이 있다. 애써 외면하는 나의 냉대를 피해 조심스레 얼굴을 숨기고 있었던 녀석, 슬픔이다. 햇빛 속에서 애써 쌓아 올렸던 단단한 방어벽을 어둠 속에서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한순간에 허물어뜨린다. 그 힘이 막강하다.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 정면으로 똑바로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코까지 꽉 막힌다. 코로 숨쉬기를 포기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입이 금세 바싹 마른다. 살며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센서 작동으로 갑자기 환해지는 방안. 잠을 설치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감을 갖지 않게 하려는 배려로 모두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다시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베개를 옮겨 머리 방향을 정반대 쪽으로 바꾸었다. 꽉 막힌 코로 힘들어진 호흡을 조심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카페인에 약한 탓에 평소에는 삼가던 커피를 너무나 맛있게 마신 모닝커피 대가까지 톡톡히 치렀다. 거의 날밤을 새었다.


 이튿날이 밝았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왔던 시동생 부부는 부산, 마산에 사는 누나랑 자형을 태우고 창원에 있는 처가로 향하고 나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수안보 버스 터미널에서 동서울행 시외버스를 탔다. 2시간 20분 거리. 집은 잘 있었다.


 그날밤, 넥타이까지 갖춘 깔끔한 양복 차림의 키 크고 잘생긴 매너 킴, 남편이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나는 담박 허리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그리고 정말 미안해."

 남편은 무심히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뭘 그런 걸 갖고 울고 그래?"

 내가 크게 울면서 말했다.

 "자기가 죽어 버렸잖아!!"


 꿈이었다.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혼자 울며 그 꿈을 되돌아보다 다시 잠드는 나의 집.

 남편과 함께 일구어 온 이 공간이 새삼 슬프고도 다정했다.


 이 마음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점점 더 옅어질까? 더 짙어질까?

 흐르는 시간과 진행되는 노화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만나게 될 감사와 안타까움과 슬픔의 감정들. 그들을 품어 안고 조용히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 내 마음속 깊은 강물 한 줄기. 싸아하니 마음을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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