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가야 했던 꼬마이야기
국민학교 2학년, 8살 무렵부터 일하러 나가신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그만 손으로 바닥을 쓸고 밥을 지어놓고, 저녁이 되면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7살까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 앞에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그날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실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떠난 후, 나는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아침, 스스로 눈을 뜨고 학교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가 깨워주는 따뜻한 모닝콜 같은 건 나에게는 사치였다.
세월이 흘러 성장하면서, 내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아빠’라는 존재가 사실은 내 주민등록등본 위에 빨간 줄로 남겨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결국 내 손을 놓고 돌아섰다.
왜였을까. 내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엄마의 손 안에서만 놀지 않아서? 아니면,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짐이었던 걸까?
엄마를 떠올리면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늘 큰 목소리로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으셨고, 나는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살가운 애정은커녕, “너는 혼자 우유병을 물려주면 잘 먹고, 혼자 알아서 잠들던 애였어.”라는 엄마의 농담조차도 차갑게 느껴졌다.
어느 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를 낳으려고 한 게 아니었어.”
“네가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난 후부터였을까.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도 싫어졌다. 그래서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은 무슨 대학이야! 공부도 못하는데 실업계 가서 돈이나 빨리 벌어!"
엄마의 말속에는 늘 ‘돈’이 있었다. 나는 늘 돈에 치이며 자랐고, 지금까지도 ‘짠순이’라는 말을 듣는다. 돈을 아낀다며 비웃는 그 말이 너무 싫다. 내가 사는 건 다 싼 것일 거라고, 나는 늘 아끼기만 하는 사람일 거라고 쉽게 단정 짓는 시선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들은 늘 ‘안 돼’였다.
"피아노 배우고 싶어." 안 돼.
"미술 학원 다니고 싶어." 안 돼.
내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너는 안 돼’라는 말을 반복하던 사람이었다.
내 동생은 달랐다. 엄마는 동생에게는 모든 것을 허락했다. 나는 언제나 "언니니까 양보해!" "언니가 되어서 동생 좀 도와줘!" 같은 말들에 지쳐갔다. 언니라는 이유로 참아야 했고, 양보해야 했고, 책임을 져야 했다. 나는 꿈도, 희망도 없이 점점 작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나는 어른이 되었어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다 못할 거야."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들이 내 안에 깊이 박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그리고 엄마는 ‘나르시시스트’였다.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늘 남들에게 치이고,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조금만 무시당해도 가슴이 무너졌고, 혼자서 끙끙 앓다 끝내는 스스로를 탓하며 울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다. 단지 ‘K-장녀’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삶.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전쟁통 속에서 자란 사람 같지만, 나는 1980년대에 태어났다.
요즘은 아동심리학도 발달했고, 오은영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부모들도 아이를 키우며 더 많이 고민한다. 아동학대라는 개념도 자리 잡았다. 만약 내 어린 시절에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나도 조금은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아빠만이라도 내 곁에서 내편을 들어주었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그렇게도 불러보고 싶었던 단어, ‘아빠’.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단어.
그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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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가스라이팅 : 상황을 조작하여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하여 정신적으로 황폐+지배하여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
-자존감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나르시시스트 :남에게는 센스 만점, 자기 사람은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하는 , 공감능력 없고,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타인을 믿지 못하는 그런 내가 제일 제일 잘났어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