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생각] 혐오에 이름 붙이기

초연결사회에서의 혐오에 관하여

출처: freepic

당신은 '갈라치기'란 단어를 아는가? 당신이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 단어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으리라.

현재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이 갈라치기 문화가 팽배하고 있다. ○찍,○줌, ○남,○녀 등등등.... 이런 단어들을 멸칭화해서 상대편에게 돌을 던지는 중이다.


혐오에 이름 붙이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김춘수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보자. 자신이 이름을 지어 부르기 전까지 상대방은 '그'에 멈춰 있다. '그'는 명사가 아니다. 대명사, 명사의 대용품일 뿐이고 아무런 실체가 없다.

화자가 이름을 지어 부르자 상대방은 대용품에서 벗어나서 '꽃'이라는 실체를 가지게 된다.

혐오대상의 멸칭화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감은 단순히 실체가 없는 뇌의 작용이고 감정의 작용이다. 실체가 없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순간 혐오감은 하나의 실체가 된다. ​



디지털 시대 속 혐오의 캐릭터화


출처: gettyimagebank

디지털 시대가 되고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가 실제 사회를 압도할 만큼 커져 있는 지금, 혐오감이 실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커뮤니티'라는 것 자체가 실체와 허구 사이에 있는 모호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서의 관계는 디지털 안에서의 관계다. 실제로 만나지 않고 누구인지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커뮤니티 안에서 실제 사회를 작동시키는 유의미한 담론을 형성한다.

즉,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기도 하고 현실이 가상을 꾸미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호한 경계에서 혐오감 또한 발을 걸치게 된다. 그러므로 혐오감의 명칭을 붙이면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혐오감 자체의 실체에 혼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혐오감을 가지는 상대가 있으니 별명을 붙이든 말든 정체성은 이미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실체와 '멸칭화된 혐오'는 분명히 다르다. 실체와 다르게 멸칭화된 혐오는 혐오라는 주관된 감정을 통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한다.'

커뮤니티에서의 멸칭화된 혐오표현을 처음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뜻을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존재하는지 실제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대상에게 이 멸칭을 꼬리표처럼 붙일 것이다.

출처: <거침없이 하이킥>

문제는 꼬리표를 붙이는 게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꼰대'라는 단어를 보자. 원래 뜻은 '자신만의 인식으로 강압적으로 상대방을 가르치려고만 드는 나이 든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단어를 지나치게 사용한다는 사례도 존재한다. 실제로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무언가 가르쳐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때에도 상대를 '꼰대'로 규정지어버리는 것이다.

혐오표현을 알맞게 써도 문제는 있다. 예를 들어 '○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아마도 '억척스럽게 자기 아이만 챙기는 아줌마'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건 분명 이상하다. 당신이 무언가를 비난할 거라면 그 존재를 떠올려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이 그 혐오 단어를 부르는 순간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건 '아줌마'다. 즉 당신의 혐오라는 감정이 '캐릭터화'된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게 쉬울까? 인상적인 캐릭터나 심볼을 떠올리는 게 쉬울까?



지금 사회는...


출처: 서울아트가이드

지금 사회는 너무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미러링'이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행동을 거울처럼 똑같이 반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거울은 평평한 거울이 아니라 오목 거울이나 볼록 거울이다. 알맞게 반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 왜곡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왜곡은 초연결사회인 지금에서 우리, '호모모빌리쿠스'라는 신인류에게 실체보다 더 실체처럼 다가온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더 많은 사람을 결속시키는 것처럼.

커뮤니티 속 사람들은 '캐릭터화된 혐오'라는 텐트를 치고 그 심볼 밑에 모여서 혐오를 더 굳게 결속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 캐릭터화된 혐오는 진실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건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너무 사적인 에디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