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처남이 죽었다.
고작 53세에 불과한 나이에 급성 심장마비로,
85세의 노모와 25세의 아들 하나를 남겨놓은 채 생을 마감했다.
어리석을 정도로 착하고 그저 순했던 성정을 지닌 처남은,
군 출신의 호랑이 같은 장인어른의 엄격한 훈육을 못이겨 결국 군 제대 후 집을 나갔고 이후 간간이 소식을 전할 뿐 사실상 남처럼 홀로 외롭게 살았다.
그 와중에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여자를 만났고,
아들을 낳은 후 집으로 찾아왔다.
뭔가 가족의 화합이 이루어질까 하던 찰나에
처남댁이 젖먹이를 남겨두고 사고로 죽는 불행이 발생했고,
처남은 장인, 장모님께 아들의 양육을 맡겨두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외가쪽 사업가 친척에게 의탁해 자립을 도모했는데,
믿었던 그 사업가 친척이 처남의 명의를 도용해 횡령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사회적 독립에 치명상을 입는 불운이 또 생겼다.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했고,
장인어른의 여러번에 걸친 경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처남의 생활은 밑빠진 독처럼 줄줄 새며 안정을 찾지 못했다.
장인, 장모께서 젖먹이 손주를 정성껏 키우는 동안
처남은 삶이 힘들어서인지,
또 연락이 끊겼고 자취를 감췄다.
급기야 장인의 사망에도 연락이 닿지않아
임종도 못 지키고, 상주의 도리도 못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장인 사망 이후 경찰의 도움으로 상봉을 한 처남은
부친의 사망에 어린 아이처럼 꺼이꺼이 한을 토해내며 끝없이 울었다.
처남은 함께 사는 여자가 있었지만,
그 여자는 아들을 거두기를 거절했고,
아들은 계속해서 할머니와 고모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했다.
그에 대해 처남은 어머니와 누나에게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연락은 유지하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 주,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처남의 이름을 대며
응급실로 실려 왔는데, 이미 사망한 것 같다는 전화였다.
119로 신고하고 병원에 데려온 사람은 함께 일하던 일용직 근로자 동료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업하다가 몸이 좋지 않다며 약국을 간 처남이 오지 않아
차에 가보니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골든 타임이 이미 한참 지나 심정지로 사망했다고 판정을 내렸다.
부고를 들으신 장모님은 까무러쳤다가 울기를 반복하셨다.
빈소에서는 '어떻게 젊은 네가 부모 먼저 갈 수가 있니,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라고
가슴을 치시면서,
내장이 끊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울부짖으셨다.
겨우겨우 하나 뿐인 누나의 정성과 도움으로 상을 치렀다.
함께 살던 여자는 전혀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 능력이 아예 없었다.
조금 마른 체형이지만 180cm가 넘던 처남은
자그마한 항아리에 담길 정도의 분골로 변해
서울 근교의 납골당 한칸에 자리를 잡고 영면에 들어갔다.
53세의 어느 인생이 이토록 불쌍할 수 있을까?
물론 주변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죽음도 적지 않겠지만,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천성이 너무도 착하고 순했던 한 인간이
이렇게 '고단한' 인생을 살다가 간 경우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정말 불쌍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안타깝다.
고단했던 처남의 인생을 진심을 다해 위로한다.
처남, 잘 가게나.
부디 저승에 가서는 편안한 안식을 취하기 바란다.
정말 애썼다.
뒤늦은 한마디 덧붙인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