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엄마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동네 마트로 향하는 길이였다. 바람은 찰랑이고 햇빛이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런 대낮이었다. 5분 걸어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마트였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다. 거의 다 도착해서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 저 멀리서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지팡이를 짚고서 바닥의 무게에 의존해 발걸음을 내딛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셔야 할 정도로 허약해 보이셨다. 비틀거리며 불안한 평화를 연속적으로 반복하고 계셨다. 하지만 난 보았다. 돋보기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있음을. 태어나서 다른 사람이 걷는 모습이 그렇게나 경이롭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이상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서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멋들어진 빈티지 모자와 잘 다려진 듯한 셔츠, 펄럭이는 바지, 광나는 구두, 짙은 고동색의 지팡이까지. 21세기 최고의 신사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그 발자국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리, 자전거가 지나가는 소리,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 이 세상 모든 소리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일정하게 바닥을 찍는 박자와 옷깃 스치는 공기만이 존재했다.
어느새 초록불이 차례를 기다렸다가 빛을 내었다. 동시에, 난 그 할아버지가 내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오시는 장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꽤나 오랫동안. 대단한 것이 아닌데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저 건너편에서 걸어오실 고동색 지팡이 할아버지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