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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pr 02. 2024

어른 아이

01.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20살 적 내가 본 28살의 그녀는 어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사주고 선물을 주는 넓은 아량을 가졌더랬다. 언제나 주머니 가볍던 학생으로선 감히 가질 수 없는 그릇의 크기였다. 얻어먹은 것에 대한 답례는 그런 어른을 향한 존경과 동경으로 대신했다. 아마 그녀도 기브 앤 테이크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 테니 너무 뻔뻔스러운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28살이 되면 나도 그런 그릇을 가질 수 있겠지.. ' 내심 기대를 했다. '나도 그땐 멋진 직장인이 되어 후배를 위해 척척 밥을 사줘야지' 다짐을 했다. 그 시간을 고대하며 고된 스펙 쌓기도 참고 견뎠다. 전쟁 같던 영어 단어와 문법 외우기도 곧 다시 오지 않을 추억의 고통이 되리라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리고 드디어 28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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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난 내가 꿈꾸던 어른은 되지 못했다.

후배를 위해 턱턱 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카드 한 장 내미는 손길에 덜덜 떨림과 불편한 표정을 감추는 스킬만 늘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진로는 고민 중이었고 월급은 어디로 간지 모른 채 가벼운 주머니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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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5살

난 지금도 진로를 고민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가벼운 주머니에 괴로운 하루를 보낸다. 장바구니에 골라뒀던 옷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정은 내일로 미룬다. 커피 한잔에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오늘 이걸 아끼면 내일 더 행복할까... 자책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서 빙글빙글 돌고만 있다. 그렇게 15년째 돌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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