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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pr 05. 2024

[책리뷰]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집의 의미를 생각하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나는 집을 친애한 적이 있을까?'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은 작가의 지나온 집에 대한 기록이 담긴 책이다. 

기억이 시작된 최초의 집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유학생 시절의 집, 경제적으로 독립한 첫 집, 현재의 집까지 다양한 집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다른 지역, 다른 동네, 다른 집에 이르는 동안 생각이 변하고 삶은 달라졌다. 


'집이 그녀를 변화시킨 걸까, 변한 그녀가 집을 달라지게 한 걸까?'

 

책 속에서 나는 2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최초의 집

나의 기억이 시작된 최초의 집은 아래에 상가가 딸린 한 동짜리 아파트였다. 주상복합아파트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상가는 시장에 가까운 형태였고,  세대수는 140세대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설로 열리는 시장 덕분에 주민들은 단지에서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아파트였다.

한 동짜리 이 아파트에는 놀이터도 하나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온 뒤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레 놀이터로 모였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소위 머리가 컸다고 말할 나이에 이르기 전까지 

모두가 함께 모여 놀았다. 사실 이름도 모른 채 놀았던 아이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소꿉놀이라도 한다 치면 엄마, 아빠 역할부터 아이에 이르끼까지 족히 10명이 넘었다.  당시 5살이었던 나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항상 쌍둥이 막내 역할을 맡았다. 


여자아이들이 많았던 덕분에 고무줄놀이도 곧잘 했다. 몇 주 전보다 실력이 늘면 나름의 뿌듯함도 있었다. 

다만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는 고무줄놀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대신 평평한 아스팔트가 깔린 주차장이 놀이의 적합지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대의 차가 드나드는 주차장이었지만 아이들은 으레 차를 피할 줄 알았다. 차도 으레 아이들을 피할 줄 알았다. 주민과 아이들은 공존했다. 


주차장에서 놀아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긴 위험해"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미취학 아이들이 가방만 놓고 나가도 엄마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들끼리만 차가 지나는 주차장을 지나 상가를 향해도 엄마들은 염려하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안전하게 놀았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내 아이에겐 기억이 시작된 최초의 집이다. 나의 최초의 집이 그렇듯, 이곳도 130여 세대가 사는, 상가가 딸린 주상복합아파트이다. 놀이터는 한 개뿐이며, 놀이터 앞으로는 주차장이 있다. 나의 최초의 집과 아이의 최초의 집은 전혀 다른 곳이지만 어딘가 닮아있다. 

그러나 최초의 집을 대하는 나와 아이의 모습은 다르다. 내가 홀로 동네를 뛰어다녔던 5~6살, 아이는 단 한 번도 엄마가 없이 놀이터를 가본 적이 없다. 공동현관문을 나서는 동시에 나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차 조심해!"   


이곳의 아이들은 홀로 뛰어놀지 않는다. 엄마들이 없이 아이들끼리 모여 노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아이가 "태권도에서 혼자 집에 올 수 있을 것 같아! 나 길 알아!"

그러나 7살이 혼자 집에 오는 모습은 이 동네에서는 흔히 목격되는 모습은 아니다. 

차가 위험해서, 사람이 위험해서, 아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므로 등등 

아이의 최초의 집에는 내가 만났던 자유는 없는 듯하다. 

아이는 이 최초의 집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엄마=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엄마를 장소 그 자체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 집을 떠올려보니 엄마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구분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에는 왠지 모르게 집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왔어도, 엄마가 없는 집은 어딘가 허전했다. 그리고 전화를 건다 

"엄마 어디야?" 


'집에 엄마가 있다'는 곧 내가 쉴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집에 대한 기억이 애틋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결혼을 해 독립해 나온 지금도 엄마=집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통한다.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엄마가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비어있는 느낌이다. 아빠가 없을 땐 다소 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그 감정을 따라 전화를 건다

"엄마 어디야?"


나의 아이에게도 엄마는 곧 집인 듯하다. 

내가 잠시 외출하던 날, 태권도에서 돌아와 아빠와 집에 들어서면 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아직 밤에 혼자 자지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거실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 침대에 들어가서 혼자서 자봐"했더니 

"엄마와 떨어져 멀리 있는 느낌이야"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25평 남짓한 집에서 물리적 거리야 몇 발자국 거리뿐이지만 

아이에게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이 순간, 

집은 정불안함을 안겨주는 공간이 되기도 하나보다. 


먼 훗날 아이에게 엄마가 있는 집은 어떤 기억이 될까?

친애하는 나의 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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