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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pr 12. 2024

당신의 삶은 어떤 색입니까?

(책리뷰) 기사단장 죽이기_무라카미 하루키

우리는 눈앞의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이런 질문을 하고는 한다.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빨강, 파랑, 노랑, 보라...


질문을 들은 상대방은 

자신의 기분, 외모, 현재의 정서 등을 담아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질문을 한 가지 더 던져보면 어떨까? 

"당신의 삶은 어떤 색입니까? 




 「기사단장 죽이기는」 2017년 국내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잇는 독특한 세계관으로 주목받았던 전작들처럼, 이번 작품에도 초현실적인 하루키만의 상상력이 섬세하게 잘 녹아들었다. 

 소설의 내용은 초상화 작가인 주인공이 아내와 이별한 후, 대학 동기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집에서 잠시 살면서 겪은 기묘한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은 우연히 집 안에서 '아마다 도모히코'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작품을 발견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제1막 중 한 장면을 아스카 시대로 번안해 그린 그림이었다. 제1막은 방탕한 젊은 귀족 '돈 조반니'가 기사장의 딸 '존 안나'를 범하려다 기사장과 결투를 벌이고, 기사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으로 그림은 결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놓았다. 짙은 색감, 강렬한 감정 표현, 이 그림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이 그림에는 분명 예사롭지 않은 종류의 힘이 넘친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사실이다. 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호소하고, 그 상상력을 다른 세계로 이끄는 듯한 어떤 암시가 달려있다.    <기사단장 죽이기 中>


당시 주인공은 한 남자로부터 초상화 제작을 제안받은 상태였다. 남성의 이름은 와타루 멘시키(免色 渉). '색을 면하다'라는 뜻이 담긴 한자 멘시키와 건넌다는 뜻이 담기 '와타루'가 조합된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과 의문의 남성, 와타루 멘시키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두 소재는 주인공이 내면의 틀을 깨뜨리고 적극적인 주체로 변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 


주인공의 그림과 삶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잘 그리긴 하나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초상화처럼, 그의 결혼생활 역시 잘 꾸려나가기는 했으나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동생이 죽은 이후, 평생 동생을 그리워하며 살지만 그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내와 이별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덤덤했다. 


그러나 짙은 색감, 강렬한 감정 표현,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마주하며 주인공은 점차 변화한다. 단조로웠던 주인공의 그림에 강렬함이 새겨지고 생명력이 피어난다. 뭔가 특별한 게 생긴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이 변화를 드러내는 수단이라면, 멘시키는 주인공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인물이다.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전까지 무채색에 가까웠던 주인공의 삶이 '색을 면하고, 무채색의 길을 건너' 색채를 띄게 되는 촉매제가 되어준 것이다. 


이 책을 초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체험에만 주목한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단조로웠던 주인공의 삶과 감정이 점차 강렬해지고 생명력을 얻으며 색이 입혀지는 과정으로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내 삶의 색은 무엇일까?' 

'혹시 나 역시 감정은 감추고 단조로움에 빠진 무채색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을 듯하다. 

'당신의 삶은 무슨 색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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