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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ug 05. 2024

나! 양장 디자이너가 될래요.

(소설) 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밖을 자유롭게 뛰놀던 햇빛이 창을 뚫고 창애의 손에 닿는다. 네모난 공간, 작은 침대 위 창애에게는 이 빛이 밖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다. 손가락 끝을 어루만지던 햇빛이 점차 얼굴로 올라오자 창애는 자신의 손을 뻗어 애써 가려본다. 빛을 등진 손 위로 빛과 어둠이 대조되고, 창애의 손은 더욱 굴곡져 보인다.

'언젠가 본 듯한 빛이다...'



"창애야"

하늘을 가리던 손을 걷고 창애가 뒤를 바라본다. 저 멀리서 보통학교를 함께 다니는 친구 은옥이 뛰어온다. 

"여서 뭐더냐?"

"아니 그냥 햇빛이 조아가꼬, 째까 쳐다봤쟤"

부채꼴 모양의 둑길을 따라 걷다 보니 호수 위에 부서진 노란 빛의 조각들이 눈을 가린다. 창애와 은옥은 익숙한 듯 눈보단 다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흐미 나는 재봉시간만 되면 돌아블것어. 선생님은 요래 하면 되자네하믄서 뭐라 해싼디 난 뭔 말인지 하나도 몰겄다고 "

"뭐시 어렵다고 너는 맨날 그러냐. 나 봐봐 천을 딱 잡고 춤추듯 아주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면 딱! 이거시 어렵냐?"

"니나 쉽재 나는 그거시 안돼 학교만 졸업하믄 재봉이고 나발이고 쳐다도 안볼거여"

"나는 이 시간이 좋든디. 아따 천조각들이 실로 연결돼 모양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하지 않냐? 은옥아 나 크면 양장점이나 차려볼까?"

"흐미 양장점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양장은 아무나 만든대? 꿈도 야무지다. 그냥 시집가서 애기 옷이나 만들어"

"나는 싫어야. 내가 만든 옷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면 얼매나 좋겄냐. 혹시 아냐. 키 크고 예쁜 언니들이 내 옷을 입고 줄지어 걸어가면 내가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르재?"

"별 햇소리를 다듣네.... 

 아니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 했어. 니 혹시라도 양장 맹글면 나도 한벌 뽀대나게 뽑아주라. 니 덕분에 비싼 양장입고 북문 거리 한 바퀴를 쭉 돌다가 영란등 밑에 딱 서있으믄 남자들이 예쁘다고 막! 여자들이 부럽다고 막!"

"크크 영란등이 예뻐서 쳐다보는 건 아니고?"

"이 가시나가"

"암튼 그랴. 내가 해주께! 기다려보소! 나도 꿈이 있는 여자여!"



 

오늘도 북문 거리에서 양장점을 한참 구경한 뒤 주린 배를 잡고 집에 돌아온 창애의 코에 달콤한 향이 닿는다. 홀린 듯 코를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발원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내 부엌에 계시던 하얀 한복 빼입은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창애 왔냐?"

"엄마 요 냄시가 뭐대요?"

엄마가 손에 샛노란 것을 들고 환히 웃으며 창애를 반긴다. 아마 이 샛노란 것이 달콤한 향을 냈으리라. 

"이거 먹게 언능 손 씻고 와. 아부지도 모셔오고"

"와! 카스테라 아니어라? 아부지!! 아부지 어서 오란께요"


솜씨 좋은 엄마는 세상에 있는 건 뭐든 만들어낸다. 카스텔라 한 번만 먹으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친구들의 애달픈 소원에 그깟게 소원이라며 코웃음 칠 수 있는 것도 엄마 덕분이었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버렸던 창애는 앉은자리에서 카스텔라를 우걱우걱 먹어 치운다. 그런 딸아이가 귀여운 듯 부모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엄마 나도 크면 이렇게 카스텔라를 맹글 수 있겄지라?"

"우리 창애라면 가능하재. 엄마가 가르쳐줄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창래를 보던 아빠가 한마디 거든다. 

"창애야 닌 하고 싶은 거 없냐?"

"헤헤. 있긴 있는디라... 엄마! 아빠! 나 양장 맹그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 은옥이는 결혼해서 애기 옷이나 만들라고 한디 그거 말고 내 옷을 더 많은 사람이 입으면 좋겠단게요."

"하면 되재 뭐시 문제여. 나 때는 말이여. 여자들이 결혼하면 끝이었지만 너 때는 아닐 것이여. 직업도 가질 수 있을지 모르재. 신여성! 우리 창애도 가능해야"

아빠의 말에 창애가 새초롬한 표정과 몸짓을 만들어낸다. 

"헤헤 이것보쇼. 신여성 같지라?"

"그럼 엄마도 한벌 맹그라 주냐?"

"아따~ 엄마는 1년 내내 그 하얀 한복만 입음서?"

"그러니 엄마의 첫 양장은 창애가 맹글어주면 되제"

아빠의 말에 창애가 무릎을 탁 친다. 

"맞네. 엄마! 양장은 내가 지어 줄란게 그때까지는 요 한복만 입고 있어요. 아빠도 기다리쇼!"

집안 가득 웃음 소리가 퍼진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창애는 입 속으로 카스텔라를 한 조각 크게 욱여넣는다.     




은색 식판 위로 달콤한 카스텔라 한 조각이 올려있다. 창애의 눈길이 카스텔라에 머문다. 가만히 손을 뻗어 카스테라를 조각낸 뒤 입에 넣는다. 그 맛이 아니다. 가만히 식판을 밀어두는 창애

창애가 물린 밥상을 보며 멀리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별로 안 드시네. 이러다가 기운 더 떨어지시는데..."

"예전 같지 않으시긴 하지. 올해 연세가 아흔여섯이지?"

"응 여기 오신 지도 벌써 10년이나 됐네. 처음에는 여러 활동도 하고 그러시더니 요새는 부쩍 누워만 계셔"


상이 물러간 자리에 누워 창애는 가만히 창 밖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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