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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ug 19. 2024

새 신발은 마음만 즐겁지 오히려 큰 상처가 된다.  

(소설) 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우리 마누라 오늘은 더 예쁘네"

"......"

창애의 맞은편 창가자리의 주인이 며칠 전부터 식사도 제대로 못하더니 결국 자리에 누웠다. 요양병원에 함께 들어온 남편이 아침, 저녁으로 옆을 지키며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손을 잡으며 머리를 쓰다듬어봐도 아내는 반응이 없다. 아내의 새하얀 머리에 남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빛이 찬란함을 감춘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자신의 힘을 자랑하듯 맞은 편 창애의 눈을 맹렬히 쏘아댄다. 눈이 시린 건지 마음이 시린건지. 창애는 그저 눈을 질끈 감는다. 


"어?!"

"그때 그 뒤꿈치?"

"둘이 아는 사이인갑소?"

중매쟁이가 두 사람의 반응에 되레 당황한 듯하다. 

"얼마 전에 길에서..."

"아!!! 아..니오"

창애가 빨개진 얼굴로 잽싸게 남자의 말을 자른다. 중매쟁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남자는 그저 슬며시 미소 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아..암튼! 자. 먼저~ 여기가 제가 말씀드린 손영수씨. 보성 이 짝부터 저 짝까지가 다 영수씨네 꺼란게요. 보성에서 이 집을 모르는 사람이 읎어. 글고 지금 앉아 있어서 잘 모르겄지만, 키도 어마어마해요. 키 크지 잘생겼지 집안도 좋지. 아따~! 요새 이런 신랑감이 어딨대요? 내가 아끼고 아껴놓은 사람인디 특별히 창애씨랑 연결시켜 준건게! 잘되면 내 공이란 거 절대 잊지 마쇼-잉."

중매쟁이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는 듯 은밀히 마지막 말을 속삭이며 남자의 소개를 끝낸다. 이번엔 창애차례다.   

"여기는 지창애씨. 창애씨도 광주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집안인디, 그것보다 더 유명한 게 바로 어머니 음식 솜씨! 얼매나 맛있는지 요리법 알고 싶어서 동네 사람들이 집 앞에 줄을 쭉 서요. 그래서 창애씨 엄니를 집밥 윤선생이라고 부른단게요. 호호호. 모전녀전이라고 딸 음식솜씨도 훌륭하겄지요? 그리고 손재주가 좋아서 옷을 그렇게 잘 만들어! 아이고 새끼들 낳으면 얼마나 잘 먹이고 잘 입힐까 안 봐도 눈에 훤하네." 

중매쟁이의 호들갑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자 함께 나온 창애의 어머니가 차분히 말을 꺼낸다.   

"훤칠하니 잘생겼네요."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중매쟁이의 몇 마디가 이어진 후 두 사람은 창애와 영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하고 함께 나간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영수였다. 

"뒤꿈치는 이제 괜찮지라?"

"...네... 그.. 그땐 신발이 익숙하지 않아서..."

"새 신발이란 게 맘만 즐겁게 하지 오히려 큰 상처를 줄 때가 많아요. 그 상처가 아물 때쯤에야 비로소 내 것이 됩디다. 그 상처를 못 견디면 익숙한 것을 찾아가다 옛날에 머물게 되는 거고, 눈물을 참고 그 상처를 견디면 새 신발이 온전한 내 것으로 바뀌고"

"이제는 익숙해졌어라. 상처도 아물었고"

"축하합니다. 드디어 진짜 새신발이 생겼네요."

"근데요... 난 아직 결혼하기 싫어라. 남편도 새끼도 중요하지만 난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옷 만드는 사람이라 근사하네요. 양장점이라도 차려 블라고요?

"언젠가는? 서울에 가면 큰 양장점이 있다는데 부모님이 서울은 절대 못 보낸다고 하시고 일단 집에서 혼자 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있어라..."

"시작은 했네요?"

"시작...맞겄죠? 그냥 꿈만 꾸고 있는 건지 뭔가 시작을 하긴 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겄어요.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답답허네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거 아니겄소. 옷 만드는 창애씨. 저도 보고 싶네요. 그때도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요"

창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인다.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는 말이 고마워서인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는 말이 설레서인지 창애의 마음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그때도 만나고 싶다. 이 사람이라면 내 꿈을 응원해 줄 것 같아'

설렘은 근거 없는 확신을 가져다줬고 몇 번의 만남은 두 사람을 평생의 동반자로 만들어 놓았다. 

신혼집은 영수의 고향집에서 마련됐다.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할 창애의 새 집. 첫 발을 들이민 그 순간 창애의 눈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어온다. 

하나. 둘. 셋. 넷...?

'새 신발이란 게 맘만 즐겁지 오히려 큰 상처를 줄 때가 많아요...'

영수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엄마.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왜 다른 방을 써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밉대."

"왜? 난 할아버지가 좋은데?"

창애의 손녀, 소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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