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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ug 26. 2024

사기 결혼을 당했다.

(소설) 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엄마, 손주사위 왔어"

창애의 막내딸 미경이 곧 가족이 청년을 소개한다. 창애가 예뻐하던 손녀가 두 달 후면 결혼을 한다며 예비신랑과 함께 인사를 왔다. 창애는 청년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창애의 눈빛에 청년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어낸다. 이내 창애는 눈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인다. 

축하한다는 걸까? 그저 알았다는 걸까?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창애의 표정에 가족들은 으레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창애는 다시 창문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 창애를 손녀딸이 가만히 바라본다. 


"이 아이들은 누구...?"

창애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누구긴 누구냐. 니 새끼들이지"

17살 창애에게 생긴 4명의 아이들. 정확히는 영수의 아이들. 

8년 전 결혼한 영수와 아내 사이에 4명의 아이가 생겼고, 아내는 막내를 출산하다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동네사람들이 수근수근하는 소리가 하룻밤만에 창애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사실을 알게 된 창애의 부모님은 중매쟁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사방팔방 찾으러 다녔지만 이미 줄행랑을 친지 오래였다. 

창애에게는 사기결혼을 당했다며 바닥을 치고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영수의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다. 식사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먹을 것을 찾았다. 눈에서 흘러내야 할 눈물이 이마의 땀방울로 떨어졌다. 창애는 눈물 대신 땀방울을 닦았다. 

영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영수는 창애 곁에 없었다. 자신의 아이들과 부모를 17살 꿈 많던 창애에게 맡긴 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영수에게는 아이들의 엄마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아줄 아내만 있으면 되었다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줄 그런 여자면 되었다.  

영수의 자유로움은 창애에게 구속을 가져다주었다. 시어머니와 아이들, 남편의 도박빚까지 모두 창애의 몫이었다. 창애는 온통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아니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불행을 잊을 있었다. 

결혼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신 재봉틀이 창애의 옆을 지켰다. 그러나 창애는 재봉틀을 꺼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밤마다 멍하니 재봉틀을 바라만 보았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시간조차 사라졌다. 

영수는 그렇게 창애의 첫 번째 꿈을 앗아갔다. 


창애의 노력에도 영수의 가족들에게 창애는 이방인이었다. 

아이들에겐 엄마의 자리를 빼앗아간 계모였다. 

땀과 무시, 원망으로 얼룩졌던 10대의 끝자락, 창애에게 또 다른 꿈이 하나 생겼다. 

'내 아이를 갖자'  



손주사위를 소개받은지 2년 후, 

이번엔 손녀가 증손주를 창애에게 소개해 주었다.

창애는 가만히 조그마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주름이 짙은 할머니가 낯선 듯 상대적으로 젊은 자신의 할머니 품으로 얼굴을 묻는다. 

손녀가 다시 한번 창애를 지그시 응시한다.

'할머니가 우리 아이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이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요양원의 면회가 전면 금지됐다. 

손녀딸의 아이가 창애를 다시 본 건 그 해 창애의 장례식, 사진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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