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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Sep 02. 2024

나의 두 번째 꿈

(소설)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엄마 내가 누군지 알겠어?"

"미선"

창애의 대답에 막내딸 미경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내가 미선이야?"

창애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대답을 대신한다. 

"미선이는 엄마 큰딸이고, 난 미경이잖아"

미경이는 한숨을 내쉬며 창애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치매로 삶의 대부분을 잊은 엄마가 자신을 잊은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막내딸은 뒷전이고 5년이 넘도록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큰딸만 기다리는 것 같아 섭섭함이 슬그머니 차올랐다. 

"오지도 않는 미선이는 뭐더러 찾아? 난 그만 갈라요."

반응 없는 엄마의 모습에 더 약이 오른다. 짧은 인사를 던지고 미경이 병실을 나선다. 

     


"넌 계모라고 티 내냐? 우리 귀한 종손 학교 댕겨왔으면 재깍재깍 먹을 거 챙겨줘야지 뭐더냐?

 배 곪아 디져브라고 그러는 거지? 니 새끼 아니라고"

부엌청소를 하느라 첫째 아이의 간식이 조금 늦어지자 시어머니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 손자를 끔찍이도 아끼는 시어머니는 오늘도 창애를 들들 볶는다. 

8식구를 챙기느라 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며느리의 노고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 없었다. 그저 굼뜬 계모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창애는 다급히 주전부리를 준비해 공부하는 첫째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둔다. 

"자, 이거 먹고 혀라"

"......."

"미안허다. 부엌 청소하다 본께 쪼가 늦었어. 배 많이 고팠쟤?"

"됐응게 나가요."

겨울 동장군보다 차가운 반응이 창애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그래.. 이따 부르면 밥 묵으러 나와"

방문을 닫자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다시 시작됐다.

"아니 니가 집에서 하는 게 뭐 있다고 애를 굶기길 굶겨. 간식 내오는 게 그리 어렵냐? 애도 못 낳는 게 있는 새끼라고 잘 키워야쟤. 대체 니가 하는 게 뭐여."

시어머니의 가시 돋친 말들에 창애가 입술을 꾹 깨문다. 그때 집에 들어온 영수가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남편을 보고 창애도 황급히 들어가 남편의 옷을 챙긴다. 

"아니 니는... 됐다. 그만하자."

영수가 또 한숨을 쉬고 입었던 옷을 던져둔 채 방을 나선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창애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미 네 명의 아이가 있는 영수는 더 이상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다. 창애 역시 갑자기 생긴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아이를 가져야겠단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창애는 점차 자신의 편이 갖고 싶어졌다.

'아이만 생긴다면 나도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어' 

 그러나 영수가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탓에 애는 점점 늦어졌다. 창애도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혹시 애를 갖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드디어 창애에게도 자신의 편이 생겼다. 

창애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는 유일한 사람. 이 집에서 창애를 보며 유일하게 웃어주는 사람. 

이름은 미선이로 지었다.

미선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창애는 잊고 있던 미싱이 떠올랐다. 

"엄니가 옷 만들어줄게"

드르륵드르륵 창애의 마음에 오랜만에 행복이 피어났다. 



  

"언니. 엄마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가시기 전에 한번 얼굴이라도 봐야지"

"지난번에 봤잖아. 멀쩡하시더만"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이번엔 진짜 가실 것 같아 물도 못 자시고"

"늙으면 원래 물먹는 것도 힘들어. 넌 내가 거기까지 가는 게 쉬운 것 같니? 나도 이제 나이 들어서 가기도 힘들다야. "

"그래도 가시기 전엔 봐야지."

"아이고. 가시면 이야기해"

핸드폰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엄마 자식농사 참 잘 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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